▲ 곽노현 서울특별시교육감 자료사진 ⓒ연합뉴스
2월 25일부터 3월 7일까지 불과 12일 동안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한국일보·한겨레·경향신문에 나온 기사만 추려 봐도 50개가 넘는다. 1,2심 재판 관련 보도를 빼고도 그렇다. 이 기간 동안 6개 언론사 합쳐 6건의 비판사설이 나왔고 기자 칼럼도 3개나 나왔다. 2월 28일에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가 사설에서 비판했고 2월 28일에는 한국일보 여론독자부장 김진각이 칼럼을 썼으며 3월 1일엔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동아일보는 최예나 기자 칼럼으로 비판했다. 3월 3일에는 한겨레가 보수언론과는 다른 결이지만 사설로 비판했다. 3월 5일엔 조선일보 김연주 기자 칼럼이 나왔고 3월 7일엔 동아일보 사설이 <민주당도 집권하면 곽노현 닮을 건가>라며 곽노현을 민주당과 엮어서 조롱했다. 대체 이 12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중동과 곽노현의 서울시교육청, 한겨레와 경향 등이 주요 ‘선수’로 등장하는 이 이야기는 불현듯 참여정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별 것 아닌 얘기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의혹을 확산시키는 보수언론이 있고, 이에 대해 그때그때 대처하면 문제를 더 키울까봐 함부로 보도하지 못하는 진보언론이 있다. 공격에 흔들리는 조직을 건사하지 못해 실수를 범하는 주인공이 있고 그 실수로 다시 논란을 키워 공격에 활용하는 보수언론이 있으며 급기야 주인공의 실수를 지적해야만 하는 진보언론의 고뇌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꼼수나 그 팬들처럼 진보언론이 주인공을 무조건 서포트해야 한다 주장할 것인가? 아니면 주인공을 좀 더 영악하고 교활한 인물로 교체하는 것이 답인가? 그게 아니면 또 다른 방법이 있는가? ‘곽노현 문제’는 이처럼 참여정부라는 과거를 우리에게 불러오면서 한편으로는 미래의 개혁정권의 과제까지 호출해낸다.

▲ 2월 25일 동아일보 12면

별 것 아닌 것 같았던 문제들이 태풍이 되다

애초에 문제가 되었던 사안은 세 가지 정도였다. 첫째는 시교육청이 공립고 교사로 특별 채용한 세 사람의 교사에 대한 논란으로, 2월 25일 동아일보 보도에서 처음 지적되었다. 둘째는 비서실 계약직 공무원을 7급에서 6급으로 승진시키고 5급 계약직 두 자리를 더 만들어 채용하려고 했던 일인데, 2월 27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보도에서 처음 비판되었다(경향신문은 같은 내용을 ‘2기 참모진 개편’으로 보도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교육청에 파견 나와 있는 교사들의 파견기간을 연장하고 추가 파견을 결정했던 일이다. 파견기간 연장에 대한 비판은 2월 28일 동아일보에서부터 나타나고, 그후 추가 파견이 결정되자 3월 3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비판하기 시작했다. 보수언론은 곽노현이 교육청에 채용하는 비서실 계약직과 파견교사들에 대해 줄곧 ‘전교조 출신’이란 딱지를 붙여가며 공격했다.

그리고 이 문제들로부터 다른 문제들이 꼬리를 물고 나오기 시작했다. 공립고 교사 특별채용에 대해선 교과부가 시정을 지시하더니, 급기야 취소결정을 내렸고 이에 서울시교육청이 반발하면서 법정으로 가게 되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교과부와 서울시교육청의 갈등은 언론에 꼬박꼬박 보도되었다. 그리고 보수언론들의 융단폭격에 견디다 못한 곽노현은 2월29일 기자회견을 가지고 문제가 된 사안 중에서 비서실 계약직 공무원 승진 건만을 철회했는데, 이 기자회견에 대해서도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이때엔 기자회견이 있었기 때문에 진보언론들도 기사를 냈고 보수언론들의 주장에 대항하는 논변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편 사태가 진행되는 가운데 곽노현은 총무과장을 경질하기도 했고 논란 초기부터 꾸준히 교육감을 비판한 이점희 서울시교육청 일반직 공무원 노동조합 위원장의 업무용 이메일을 차단하거나 삭제했는데 이런 행동들이 또 보도되고 비판되었다.

애초 문제가 된 세 가지 사안에 대해선 동아일보가 치고 나가면 조선일보 등 다른 보수언론이 받아 안는 보도행태가 반복되었다. 중앙일보는 처음에는 뒤늦게 기사만 받아쓰다 뒤늦게 사설을 통한 비판대열에 합류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이 시점에선 문제의 논란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보수언론과는 달리 서울시교육청의 일부 행정에 대한 논란이 중앙일간지에서 받아 안을 사안이 아니라며 품위를 지켰을 수도 있고, 논란에 반박해봤자 오히려 판만 커지고 곽노현과 서울시교육청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2월 26일자 경향신문 디지털뉴스팀 기사는 특별채용 교사 3인 논란에 대해 소개하면서 나름의 해명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지면에는 실리지 않고 인터넷판에만 실렸단 사실 자체가 진보언론의 고민을 보여주는 듯하다. 한겨레는 2월 29일 기자회견 이후에야 논란에 합류했다.

즉, 한겨레나 경향신문은 이 문제거리들이 보도가치가 있다 보지 않았고, 보수언론의 융단폭격에도 불구하고 곽노현이 잘 버텨주면 자연소멸되리라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곽노현이 자신의 결정을 일부 철회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논란이 커지자 할 수 없이 논란을 중계하고 보수언론의 주장을 일부 논박하는 보도를 시작했다. 또 보도가 시작된 후엔 진행된 사건의 성격에 따라 진보언론 역시 일부 사안은 비판하는 보도를 하게 된다. 이는 개혁적 시민들이 진보언론에 불만을 가지는 어떤 전형적인 보도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진보언론이 이와 다르게 어떤 방식으로 사태에 접근했어야 했느냐고 묻는다면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보은과 특혜가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먼저 기본적으로 문제가 된 세 가지 사안에 대해선 곽노현과 서울시교육청에 큰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된다. 1심 유죄판결을 받은 곽노현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것이야 보수언론의 재량이지만, 이왕 사퇴를 하지 않겠단 교육감이 업무를 위해 노력하는 것까지 폄하하는 것은 심하다. 사퇴를 하지 않을 거면 조용히 숨만 쉬다 가라는 게 그들 비판의 요지인데, 그럴러면 뭐하러 법정투쟁을 해가며 교육청에 출근한단 말인가.

특별채용 교사 3명의 문제는 논점이 두 가지로 구별된다. 하나는 해직교사를 복직시키는 문제, 다른 하나는 사립학교 교사를 공립학교 교사로 채용하는 문제다. 세 명 중 두 명은 사립학교에서 해직되었고, 이를 공립학교 교사로 채용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교육청의 주장은 이 사안이 규정으로도 문제가 없고 전례도 있다는 것이다. 교과부의 얘기는 좀 다른데, 애초에 이 문제가 보수언론의 융단폭격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가지 않았을 거란 점에서 그들의 보도는 치사하다. 다만 해직된 게 아니라 자사형 사립고로 전환될 때 스스로 사직하고 나선 다른 한 명의 교사의 경우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겨레도 논란에 대한 기사를 내면서 이 점을 지적하였다.

비서직 채용과 파견교사 연장 및 충원 문제는 이것보다도 더욱 문제될 것이 없다. 부정변증법이란 아이디로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서울시교육청의 한 파견교사의 글을 보면, 교육감 비서는 어디서나 6급인데 곽노현의 비서들이 한시적으로 7급인 상태로 있었던 상황이라 한다. 또, 교사가 교육청에 파견가는 것에 대해 한국일보까지 “보은 인사, 측근 챙기기 인사”라 비판하였지만 교사 입장에선 교육청 파견이 결코 좋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담임수당이 날아가 월급이 줄고, 수업을 안하기에 성과급도 기대할 수 없으며, 퇴근 시간은 4시 30분에서 6시로 늦춰지고, 방학이 없어서 1년 내내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보은이나 특혜와 같은 단어는 청와대 비서관이나 되어야 성립하는 말일텐데, 사실은 청와대 비서관이라도 측근을 임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중앙일보 3월 6일자 기사는 곽노현 재판 당시 탄원서를 내거나 구명운동을 한 6명의 교사들이 파견되었음을 문제삼았지만, 당시 구명운동에 나선 교사는 수천명이고 탄원서를 쓴 교사는 수백명이니 애초에 문제를 삼을 수도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문제제기인 것이다.

▲ 6일 중앙일보 10면

곽노현이 논란에 대처하는 방식은 미숙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제기에 관한 보수언론 보도에 거듭 등장하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점희 서울시교육청 일반직 공무원 노동조합 위원장이다. 그는 논란 초기부터 곽노현 교육감을 꾸준히 비판해 왔는데, 조선일보 등은 교총의 비판과 함께 그녀의 비판을 꾸준히 기사화했다. 그런데 조중동 모두 서울시교육청 일반직 공무원 노동조합이 서울시 교육청 내 4개의 노조 중 하나란 점은 소개하지 않았고, 마치 그가 서울시교육청 공무원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취급했다. 이런 보도 역시 독자의 오해를 고의적으로 유발하는 매우 질나쁜 왜곡이라 할 수 있다.

교육부 출입기자들의 말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교육청엔 4개의 노조가 있다. 서울특별시교육청 공무원 노동조합, 전국(민주)공무원 노동조합 서울특별시교육청지부, 전국기능직공무원노동조합 서울특별시교육청지부, 그리고 문제의 서울시교육청 일반직 공무원 노동조합이다. 조선일보는 이점희의 주장을 그대로 소개하여, 서울시교육청 일반직 공무원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현재 1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교과부 출입기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조합은 조합원 300명에서 600명 사이의 규모로 추정되며 4개의 노동조합 중 3번째 규모에 해당한다. 아무리 많이 쳐줘도 서울시교육청 공무원의 20%도 대의하지 못한다.

이점희에 대한 이메일 검열, 차단, 삭제조치 등이 보수언론에 보도되는 방식에도 문제가 많았다. 보수언론들은 검열, 차단, 삭제된 이메일이 서울시교육청 내에서 사용하는 업무용 이메일이란 점을 제목에선 명시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이메일 검열’은 황당무계한 탄압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부정변증법의 지적처럼 업무용 이메일은 공무에만 쓸 수 있고 노동조합 위원장은 조합원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만 공무이기 때문에, 전체 공무원에게 개인정견을 메일로 보내는 행위는 규정위반으로 당연히 처벌될 수 있다.

그러나 규정상으론 그렇더라도 이 부분에선 곽노현이 논란에 대처하는 방식이 미숙했다는 게 교육부 기자들의 지적이다. 분명히 규정은 그렇지만, 다른 노동조합 위원장들도 조합원 뿐만이 아닌 전체 공무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이 그간의 관행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4개 노조위원장 모두에게 규정을 지키라고 제재를 가한 것도 아니고 이점희만을 제재한 것은 충분히 문제가 될만 했다는 것이 그들의 평가다. 실제로 이메일 차단 및 삭제조치가 보도된 이후 서울시교육청 공무원들의 곽노현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고 한다. 보수언론이 흔들 때는 내부구성원들의 지지라도 받아야 하는데, 그 점에서 곽노현은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이 제기한 문제 자체는 그릇되었을지라도 이에 대한 미숙한 대처가 ‘곽노현식 개혁’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시각도 있다. 어떤 교육부 출입기자는 “경기도교육감 김상곤이 비서실에 측근은 한 두명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밑에 내려 보내 일을 도모한다면 곽노현은 비서실에 측근만 둔다. 그 측근들이 보수적인 공무원들을 불신하며 자기들끼리만 일을 추진하려니 양자 간에 골이 커진다. 그래서 비서들 직급이 낮아 무시당한다 보고 직급을 올리려고도 하는데, 그래서야 일이 해결이 되겠는가. 그러다보니 더더욱 비서실 측근정치에 집착하게 되고 일은 더 안 되게 된다.”고 비판한다. 보수언론의 문제제기는 그르더라도 그런 문제들이 조중동에 꾸준히 흘러나오고 공무원들에게도 비판의 대상이 되는 데엔 그러한 맥락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곽노현이 필요 이상으로 물어뜯기는 데엔 1심 유죄판결로 도덕성과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 크다. 조중동도 잔뜩 악을 품고 대기하고 있고 공무원들도 의구심을 담은 눈초리로 쳐다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 악조건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지혜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슬프게도 곽노현은 “이대로는 개혁이 안 된다. 그가 사퇴하고 새로 선거를 하는 것이 진보개혁세력에게 나은 선택이다.”고 주장한 어떤 이들의 예언이 옳았음을 인정하게 된다.

조중동은 왜 서울시교육감 비판에 열을 올리나

따라서 ‘곽노현 논란’은 그대로 개혁정치의 어려움, 내지는 딜레마를 보여주는 상황이다. 하지만 다른 부분도 존재한다. 아무리 그래도 중앙일간지 몇이서 일개 지방교육감의 일거수일투족을 물고 늘어졌다는 게 너무나도 이상하다. 초반에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비판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중동은 왜 서울시 ‘진보’ 교육감 비판에 사활을 거는 것일까.

언론사의 한 관계자는 “박원순을 검증하며 정국을 전환하려고 잔뜩 날을 세우고 있었는데 강용석 때문에 이슈가 날아가니 대신 동원된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다분히 정치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언론경영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다른 중앙일간지와는 달리, 조중동의 구독자들은 특히 강남주민이 많다. 이 구독자들은 자기 동네 ‘진보’ 교육감을 비판하는 것을 굉장히 즐긴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교육 문제는 공적 담론이기 이전에 자원분배 원칙과 기준을 둘러싼 사적 쟁투의 장이다. 정치적 신념을 불문하고 대다수 학부모들은 교육 문제에 있어 보수적인데, 그것은 이것이 사적인 이해다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다툼의 핵심에는 8학군으로의 진입경쟁이 있다. 교육 문제에 관해 조중동이 유별나게 몰입하는 것은 구매력이 높고 여론주도력이 강한 이 지역 독자들에게 다가서는 유력한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중동이 곽노현 교육감의 문제에 과몰입하는 것은 독자층의 요구에 부합하면서 교육 이슈에 대한 보수적 집중력을 행사하는 일타쌍피의 묘수가 된다. 그렇게 해서 독자층을 붙들게 되면 물적 기반을 유지할 수 있고 다시 그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순환구조 및 재생산 구조가 작동한다. 더 큰 문제는, 진보언론의 경우는 교육문제에 있어 이 모델에 대응하는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데에 있다.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진보적 학부모단체들이 셧다운제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진보언론이 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독자층의 요구에 부합하는 보도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커져만 간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