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민주언론시민연합 노동조합이 출범한 지 3개월이 지났다. 활동가 대다수가 20·30대인 민언련은 사무처 상근 노동자 12명 가운데 사무처장과 협동사무처장을 제외한 10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MZ세대 중심으로 노조 탈피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과 다른 양상이다.

민언련 노조는 지난해 10월 25일 총회를 거쳐 고은지 활동가와 조선희 활동가를 초대 노조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노조는 창립선언문을 통해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한 노동조건 ▲투명하고 수평적인 의사결정구조 ▲시민사회 활동가 및 미디어 노동자들과 연대 등을 노조 설립 목표로 제시했다.

노조가 생긴 이후 내부에 어떠한 변화가 생겼는지 묻기 위해 20일 노조위원장과 집행위원, 조합원을 만났다. 고은지 노조위원장은 2019년 4월 민언련에 입사했으며, 집행위원을 맡은 김봄빛나래 활동가는 2020년 5월에 입사해 미디어팀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왕석현 활동가는 지난해 10월 18일 입사해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20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실 인근 카페에서 (왼쪽부터) 왕석현 조합원, 김봄빛나래 집행위원, 고은지 노조위원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사진촬영시에만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사진=미디어스)

Q. 민언련 노조가 설립된 지 3달이 지났다

김봄빛나래 노조가 생기기 전에는 비상근 대표님들과 마주하거나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노조가 생긴 뒤 오히려 ‘축하한다’며 식사자리를 따로 가졌다.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비상근자인 대표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서 큰 변화를 느낀다. 반면 한 가지 조심스러운 부분은 과거에는 개인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던 부분이 이제는 노조 집행위원으로서의 발언으로 읽힐까봐 조심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Q. 노조 설립 이후 교섭상황과 요구사항이 궁금하다

고은지 지난해 12월 예비교섭을 진행했으며 1월 13일 본교섭 1차 회의가 이뤄졌다. 앞으로 본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요구사항은 조합원들에게 꼭 바꾸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었고 4가지로 추려졌다. 첫 번째는 ‘성실교섭 의무’로 사측과 노조 모두 각자의 위치를 확인하고 교섭에 응해달라고 요청했다. 두 번째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로 기존 취업규칙에 미흡한 부분을 보강하려고 한다. 세 번째는 ‘의사소통체계 개선’이다. 상근자가 사무처장뿐이라 대표와의 소통이 어려웠는데 이를 개선해야만 한다는 의견이 모였다. 마지막은 ‘근로조건 개선’이다.

Q. 노조를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 과정이 궁금하다

고은지 노조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뒤 같은 팀이었던 김봄빛나래, 조선희 활동가에게 제안하니 흔쾌히 같이하겠다고 말했다. 노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공부만 5개월이 걸렸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노동조합 설립신고문서를 보고, 관련 책을 사서 봤다. 다른 노조의 규약을 받아 살펴본 다음 공통으로 필요한 게 뭔지 우리 상황에 맞게 만들었다. 각자 사비로 10만 원씩 모아 노무사에게 자문을 구하는 등 초기 조직 비용으로 썼다. 이후 개별로 활동가들에게 참여 여부를 물었고 활동가 전원이 함께하겠다고 해서 종로구청에 신고했다.

김봄빛나래 근무시간에 논의할 수 없으니 출근 전이나 점심 시간, 퇴근 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주말에는 온라인 줌으로 공부하고 평일에는 퇴근 후 정신없이 노무사를 찾아가니, 가끔 김밥을 사주시기도 했다.

왕석현 처음 노조 제의를 받았을 때 설립취지에 공감해서 응하게 됐다. 노조 설립 목적이 투쟁이 아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동료를 지키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첫 직장이다 보니 부모님께 물어봤는데 되레 ‘그 조직에 노조가 없는 게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Q. 창립선언문에 ‘오래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김봄빛나래 2020년 5월에 입사했는데 지금까지 5명이 나갔다.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들이 소진돼 나가는 걸 보면서 부채의식이 생겼다. 내가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한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민언련에서 오래 일하고 싶어졌는데 이를 위해선 노동조건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은지 민언련의 장점 중 하나가 활동가 10명 중 9명이 20, 30대라는 것이다. 문제는 중간다리 선배가 없다는 점. 내가 올해 4년 차로 민언련에서 제일 오래된 활동가다. 허리 역할이 없는 단체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나니 오래 일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고자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됐다.

Q.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빨리 소진되는 이유가 궁금하다

김봄빛나래 시민단체를 선택했을 때 애초에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버렸다. 대신 활동가로서 사회에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진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도 밥 먹고사는 노동자다. 먹고 살 정도의 월급이 보장돼야 하고, 근로시간 준수 등 노동조건을 챙겨야 하는데 활동가들이 그걸 못했다.

고은지 활동가인지 노동자인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 자주 노출된 탓이다. 한번은 행사 시간 때문에 1시간 일찍 출근한 적이 있다. 법정 근로시간 8시간에 따라 1시간 일찍 퇴근했는데, 나중에 상사가 회원캠프에서 “요즘 활동가들은 활동가성이 부족해 1시간씩 일찍 퇴근한다”고 말하더라. 이처럼 활동가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아, 노동자로서 노동조건에 대해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정당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시민단체의 어려운 상황을 뻔히 아는데 월급을 더 달라고 말해도 될까’, ‘사람을 더 뽑아달라고 말해도 되나’ 등 숱한 자기검열을 하다보니 요구하지 못하고 활동가들이 소진된 채 이곳을 떠나고 있었다.

Q. 시민단체 노조는 생소한 점이 없지 않다

김봄빛나래 반대로 ‘시민단체인데 왜 노조가 없나’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활동 중 하나가 언론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일이다. 대전MBC 아나운서 성차별 문제에 함께 싸웠고 청주방송 고 이재학PD 편에 섰으며 방송작가 해고 문제 등에 연대하는 등 의미있는 활동을 해왔다. 돌이켜보니 노동조건이 중요하다고 외치는데 정작 우리의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왜 이야기를 하지 못하나 고민이 컸다. 누군가의 노동조건에 목소리를 높이려면 우리의 노동조건에 대해 더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은지 활동가들을 갈아가면서 외치는 활동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린 시민단체 활동가이기 전에 월급을 받는 노동자다. 보통 시민단체 활동가는 노동자라는 인식이 없기 때문에 ‘왜 시민단체에 노동조합이 생겨’라는 의문이 나오는 것 같다. 나도 민언련에 들어오기 전에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줄 알았다.

Q. 시민단체 노조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김봄빛나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익명으로 글을 쓰는 게시판을 보면 공감되는 글이 많다. ‘노동단체 활동가로 일하는 내가 주 52시간 노동에 대한 투쟁 글을 쓰고 있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밤 10시’, ‘인권단체에 인권이 없고, 평화단체에 평화가 없고, 노동단체에 노동만 남아있다’ 등이다. 이처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사회 부조리에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작 내부는 참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왕석현 사회 문제를 풀어가는 시민단체도 결국은 하나의 조직이다. 내부에서 사소한 문제들이 축적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게 노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단체들이 외부에 '우리 단체는 노조가 있어'라고 알렸을 때 더 모범적인 단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은지 노조 설립 이후 언론 인터뷰 요청이 오면 거절하지 않고 최대한 나가는 이유다. 우리는 민언련에 문제가 있어서 노조를 만든 게 아니다. 내가 일하는 곳과 동료들이 좋아서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자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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