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 쯤 일까, ‘요즘 젊은 것들이란….’의 고전적 투덜거림의 새로운 버전이 나온 것에 씁쓸한 감상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인터넷이 한참 보급되던 시기였으므로 이와 관련한 여러 부작용이 사회적 차원에서 지적되던 시기였던 것이다. 국적불명의 언어로 이루어진 신조어의 등장, 맥락을 해체하는 개그 코드의 유행, 특정인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집단적인 인신공격 등은 당시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걱정을 안겨주었다.

▲ 인터넷은 전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정보의 바다다. 사진은 인터넷 상의 주요 IP주소를 연결해 구현한 인터넷 지도. 출처: (CC)The Opte Project at wikipedia.org

'요즘 젊은 것들이란...' 고전적 투덜거림의 씁쓸함

이제 10년이 지났는데도 이런 식의 걱정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건들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가 그렇다. 이들은 소위 ‘국물녀’ 사건의 예를 들며 인터넷과 SNS의 부작용을 새삼스럽게 지적한다. 사실을 확인하지 않는 마녀사냥과 일방적인 매도가 사회적 혼란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사건은 나경원, 이상득 의원 등에 의해 ‘나는 꼼수다’ 등의 기존과 다른 매체가 부정확한 사실을 유포하여 자신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하고 있으니 참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물녀 사건의 개요를 잠시 설명하자면 이렇다. 한 어린이가 화상을 입은 자극적인 사진에 ‘한 여성이 뜨거운 된장국을 아이의 몸에 엎었으나 이후 조치 없이 그냥 돌아갔다’는 설명이 붙으면서 SNS 등의 인터넷 공간에서 이 사건에 대한 걱정과 해당 여성에 대한 비난이 들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CCTV를 확인해보니 오히려 화상을 입은 것은 해당 여성이었으며 이는 그 어린이가 된장국을 손에 들고 있는 여성에게 전력으로 질주하다 일어난 사고인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것이다. 즉, 사리분별 못하는 네티즌들이 제대로 사실을 확인해보지도 않고 마녀사냥을 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은 인터넷 공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형태로 이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 되었다. 소위 네티즌들의 일부가 특정인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할 만큼의 과도한 행위를 하기도 한다는 것은 우려할만한 일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을 일반화해서 인터넷과 SNS가 우리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도구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사로 쓰는 언론

첫 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문제는 언론 그 자체가 인터넷과 SNS를 통한 부적절한 여론이 형성되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이 자신들이 그렇게나 강조하는 사실 확인을 정확히 해서 기사를 쓰면 이러한 해악이 훨씬 덜해질 텐데 언론은 인터넷과 SNS에 나도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반드시 사실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로 기사화 한다. 이로 인해 100명이 알 얘기를 1000명이 알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제 와서 이러한 사태의 원인을 인터넷과 SNS에서만 찾고 있으니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문제는 인터넷 공간을 악용한 사건이 생겼을 때 다짜고짜 인터넷 그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 보다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을 벽돌로 폭행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폭행을 했다는 그 사실 자체이다. 이런 경우 그 누구도 이 폭행의 원인을 벽돌의 존재에서 찾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이 되면 인터넷, 또는 SNS라는 도구 그 자체가 문제가 된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면 ‘인터넷, SNS 공간에서는 정보의 전달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어떤 사실이 잘못 알려졌을 때 이를 정정하는 것이 매우 어려우므로 공간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반론으로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박이 내가 강조하고 싶은 세 번째 문제이다. 우리가 인터넷과 SNS에 대한 심오한 철학을 논해야 한다면 이런 문제에 대해 깊은 논의를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조금 다른 맥락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

인터넷과 SNS의 해악을 논하는 프레임 자체가 문제다

상황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이렇게 한 번 말해보자. 인터넷과 SNS가 갖는 위력을 과거에는 언론이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그리고 지금 인터넷과 SNS 공간에서 나타나는 여러 부작용들에 맞먹는 정도의 사건들이 언론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하지 않았는가? 차라리 SNS는 사회적으로 기득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다수의 대중이 관여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과거의 언론권력이라는 것은 대중이 전혀 관여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들의 편의에 맞는 방식으로 이용되어온 것이 아니었던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인터넷과 SNS의 해악을 논하자는 이 프레임 자체가 기득권에 관여하는 언론권력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터넷과 SNS의 주된 이용자가 비교적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유권자라는 사실을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즉, 보수언론의 이러한 프레임 짜기는 진보적 성향을 가진 유권자들이 인터넷과 SNS를 이용해 쉽게 잘못된 정보를 취득하고, 이를 신봉하며, 이것을 통해 남들을 괴롭히는 데에 취미를 붙였고, 이것이 정치적 영역에까지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 현상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광주 동구의 그 사건도 결국, 수단의 문제는 아니다

물론, 인터넷과 SNS의 힘을 그저 긍정하고 이용하기만 하려는 소위 민주세력이 이 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는 얘길 하려는 것은 아니다. 민주통합당 공천 과정에서 모바일투표와 관련한 비극적 사건에서도 잘 나타났듯이 결국 발전된 기술은 그 자체가 긍정적 영향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의식에 따라 순기능을 발휘하기도 하고 역기능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만일 광주 동구의 그 사건에서 관계자들이 모바일투표제도를 과열된 조직 동원의 수단으로 사고하지 않고 일반 시민이 쉽게 공천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기본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이용하려고 했다면 사람이 죽는 비극적 사건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터넷과 SNS, 모바일투표 등의 새로운 기술적 요소들은 그것이 존재하는 공간의 정치, 사회적 문화의 영향력 하에 이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이 그렇게도 걱정해마지 않는, 이것으로 인한 부작용들이 근본적으로 해소되려면 무엇보다도 정치, 사회적 문제들이 해소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기술들을 과거의 방식에 맞게 사용해서 상대를 짓누를까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상호 소통이 가능한 공적영역의 확대와 정치에 대한 폭넓은 시민 참여라는, 우리 정치의 소중한 가치를 쟁취하고자 하는 도구로 활용하려는 노력들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나서서 해야 할 주체들 중 가장 중요한 부류가 언론과 정치인들일 것인데 헛물들만 켜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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