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자 한겨레 8면
중국의 북한이탈주민 강제북송 문제가 모든 신문 지면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3월 2일 중국 대사관 앞에서 11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던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실신해 병원에 이송됐다. 3월 4일 배우 차인표씨 등 연예인 수십 여명이 탈북동포 위로 공연을 벌였다. 같은 날 촛불집회엔 무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위원장이 참석하여 자신에게 참가 독려 이메일을 보낸 ‘탈북여성 1호 박사’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 등을 찾아 위로했다. 안철수 원장이 학교행사를 제외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월 6일 안철수재단 발표 기자회견 후 처음이다.

도룡뇽엔 시위하면서 탈북자엔 시위하지 않느냐는 비아냥

중국 공안에 억류된 북한이탈주민들이 지난 2월 13일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 요청을 해온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게 문제의 발단이다. 한국 정부는 사건 초 기존의 ‘조용한 외교’ 기조를 고수했으나 2월 19일부터 중국에 난민협약, 고문방지협약을 지키라고 촉구하면서 강공으로 돌아섰다. 북한이탈주민 강제북송 문제는 명백한 인권문제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도 관심이 많다. 미 의회에서 3월 1일 관련 청문회를 하는가 하면, 탈북자 북송 반대 온라인 서명에도 100여개국 1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그런 가운데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이를 진보세력을 공격하는 빌미로 삼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나 희망버스 등의 문제에선 촛불을 들던 개혁시민들이 이 문제는 외면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천성산 도룡뇽을 위해서도 시위하던 이들이 이 문제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물론 보수언론의 행태는 사태의 결을 섬세하게 따져보지 않고 이 문제를 감정적인 차원으로 이동해 진보세력의 정당성을 무시하려는 것이다. 다른 많은 문제가 그렇듯 이 문제에도 원칙적인 차원과 현실적인 난관이 있다. 인권문제란 보편적인 원칙이 있는가 하면, 한국 중국 북한 세 정부의 줄다리기가 있다. 중국은 북한과의 갈등을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간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정치화·국제화시키지 않으면서 북한이탈주민들의 한국행을 돕기 위해 노력한 것이 사실이다. 진보언론들의 보도를 보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중관계가 악화되면서 북한이탈주민이 중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오기가 더 힘들어졌고 강제북송이 늘어났다 주장하기도 한다. 생각해 볼만한 가설이다. 보수언론들의 보도는 이 영역에 대해선 전혀 논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감정적이고 선동적이라 볼 수 있다.

▲ 5일자 조선일보 1면

진보진영이 '탈북자' 문제에 수세에 몰리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관한 한 진보언론의 보도가 수세에 몰려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북한이탈주민 문제가 명확한 인권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인권감수성이 훨씬 발달한 진보진영이 이 문제에 관한 한 번번이 이슈선점을 보수언론에게 빼앗기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강제북송이 늘어났다는 말도 사실일 수는 있지만 2천년대 중반 이후 매년 6백여명 가량의 북한이탈주민이 국내 입국한 반면 중국이 강제북송시키는 숫자는 매년 4천~5천 정도로 추산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아주 마음에 와닿는 반론은 아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이탈주민 문제에 관한 ‘조용한 외교’ 정책을 폐기하는 것이 오히려 북한이탈주민들의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진보언론들의 우려는 타당하다. 그러나 정부가 조용하게 대응한다고 해서 시민사회 모두가 침묵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진보언론 역시 정부의 ‘조용한 외교’ 기조는 지지하면서도 북한이탈주민들의 삶에 훨씬 더 관심을 가진 심층보도를 할 수 있다. 많은 북한이탈주민들은 한국 사회에서 진보진영보다는 보수진영이 자신들의 삶에 관심이 많다고 느끼고 있다. 보수언론의 공세가 지나치게 선동적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어필하고 보수진영에게 정당성을 공급하는 까닭이 그러하다. 아닌 말로 진보언론이 이 사안이 터지고 나서가 아니라 평소에 북한이탈주민의 이동경로에 관심을 가졌고, 중국을 경유한 이탈주민의 감소를 논거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판할 수 있었다면, 보수언론의 선동이 먹혔을 것인가.

사실 담론으로만 본다면 보수진영은 뉴라이트 일각에서 북한과 우리를 하나의 민족으로 묶어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등 북한문제에 소극적이다. 반면 진보진영은 내부에 다양한 결은 있지만 민족문제·인권문제의 차원에서 북한문제에 적극적인 편이다. 이 적극성이 더 이상 북한정권과의 관계회복에만 매달리는 적극성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진보언론과 진보세력 모두 진정성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민족의 차원에서든, 인권의 차원에서든, 사회문제의 차원에서든, 북한이탈주민 문제는 진보언론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진보언론이 평소에 그들의 삶에 더한 관심을 가질 때에야, ‘건수’를 잡고 공격해오는 보수언론의 선전선동에 한국 사회가 덜 요동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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