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선거판은 이제 코믹해지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고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구매하는 사진을 올리면서 한심한 수준의 논쟁이 언론 지상을 뒤덮게 된 덕분이다.

윤석열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그 지지층을 만족시킬 수 있는 카드로 여겨졌을 것이다. 실제 언론이 ‘이대남’이라 부르는 유권자층의 환호는 상당하다. 하지만 후보 본인이 직접 ‘여성가족부 폐지’를 거론하는 것은 이준석 대표와 함께하는 최악의 방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선의 선택은 이준석 대표와 보수혁신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면서 젠더 갈등 문제와는 선을 긋는 거였다. 더불어민주당이 자당 소속 성범죄 전력자들에 온정적 태도였던 것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말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비판이 가능하다. 정권의 태도를 비판하되 젠더갈등 그 자체는 주변화시키는 게 정답이다.

윤석열 후보가 선택한 길은 이와는 완전히 반대이다. 이준석 대표와 불필요한 갈등을 벌이며 ‘윤핵관’들을 감싼 덕에 보수혁신이라는 의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 영향으로 지지율이 급락하자 이준석 대표와 뒤늦게 급히 화해를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20대 일부 유권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엔 부족하다. 그러니 젠더갈등 활용이라는 ‘극약처방’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런데 그것도 근거는 갖춰야 한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만 내놓는 것은 나라를 운영하겠다고 나선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경선 기간에는 분명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한다고 했다.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 최소한의 설명이 없다. 중간에 신지예 씨를 영입한 행보도 더더욱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이준석 제압’ 용도였던 거란 걸 인정하게 된 셈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방식의 정치를 ‘포퓰리즘’으로 부르기로 이미 합의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8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마트에 가서 멸치와 콩을 구매하는 퍼포먼스는 퇴행적 정치의 일면이다. 우리 사회에서 ‘멸공’을 말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는가? 아니다. 군 부대나 하다못해 예비군 훈련장에라도 가보라.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삭제된 것은 그 회사에 따질 일이다. 뭐 못할 말이라고 멸치와 콩을 활용한, 자기들끼리만 즐거운 암호 주고받기에 몰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트럼프 시대에 그를 지지했던 ‘큐어논’들도 자기들끼리만 알아듣는 어떤 코드를 활용한 의사소통 방식을 선호했다. 전능한 외계인들에 지배당하는 민주당이 어린이들을 납치하고 있다는 망상을 반기득권 정서와 결합해 집단적 향유의 방식으로 공유한 영향이다. 이런 황당한 얘길 대놓고 말하기는 어려우니 우회적으로 자기들끼리만 믿는 바를 공유하는 거다.

‘멸치와 콩’이라는 상징에도 비슷한 배경이 있다. 결국 문재인 정권의 정치는 전체주의이며 북한이나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체제를 지향한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그런데 ‘멸공 챌린지’에 나서는 정치인들이 진심으로 이런 얘길 믿을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멸공통일을 진지하게 부르짖지는 못하는 것이다. 가령 “멸치와 콩을 좀 샀기로서니…”라는 이준석 대표의 반응을 보라.

중요한 것은 이게 21세기에 퇴행적 정치 구도가 기능하는 전형적 방식이라는 점이다. 페미니즘을 악마로 규정하고 사회적 갈등의 진원지로 지목하면서 실제로는 젠더 기득권의 재확인을 모색하는 흐름이 대표적이다. 21세기에 남성이 여성보다 근본적으로 우월하다고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니 스스로가 ‘피해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양당체제의 한 축인 여당도 이런 상황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닷페이스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이 만드는 콘텐츠에 이재명 후보가 출연하는 문제를 두고 내부에서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보도는 황당하다. 닷페이스라는 유튜브 채널은 페미니즘 이슈만 다루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논란에 휩싸인 것은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가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기준을 설정하고 닷페이스가 만든 콘텐츠 중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이슈와 관계된 것들을 모아 ‘증거’라며 들이미는 인터넷 일각의 문화가 반영된 것이다.

이것은 ‘의심스러운 점’을 모아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고 사회에서 배제하려 했던 과거 반공주의 캠페인의 젠더적 버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나마 반공주의는 북한의 존재라는 체제적 쟁점에 의한 측면이 있으나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는 그렇지도 않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필요를 인정한다.

반공주의를 활용한 정치는 독재, 즉 전체주의를 정당화하는 방편으로 활용되었다. 페미니즘에 대해 반공주의적 방식을 활용하길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 한편에선 ‘멸공’과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이 광경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또 이러한 부당한 정치 행태에 맞서기보다는 오로지 표가 되는 일만 하자는 여당 후보 주변의 목소리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정치적 메시지는 일관돼야 한다. ‘멸공’이나 ‘독재 반대’, ‘민주주의’나 ‘개혁’을 외치고 싶다면 반공주의가 안티-페미니즘의 탈을 쓰고 부활하며 근본적 문제해결의 길을 봉쇄하는 21세기적 퇴행을 정면으로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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