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대선 여론조사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관훈저널 12월호에 게재된 ‘불신받는 대선 여론조사’ 특별좌담에서 언론, 학계,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선거 여론조사와 관련 보도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 논의했다.

한겨레 정치부 야당반장 김미나 기자는 “언론의 여론조사 보도의 가장 큰 문제는 제목”이라며 “오차범위 내에 있는 두 후보를 굳이 줄 세우려는 제목은 지양해야 함에도 이를 인용하고 있으며 주관적인 표현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능하면 어떤 캠페인을 해서라도 여론조사 기사의 질을 좀 더 높일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 관심이 아주 높은 만큼 자정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2021년 11월 5일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클럽에서 열린 관훈저널 특별좌담회.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춘석 한국리서치 전무,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김미나 한겨레 정치부 야당 반장,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내영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위원장 (사진=관훈저널)

김 기자는 2016년 12월 언론현업 5단체가 만든 ‘선거 여론조사 보도준칙’을 소개했다. 보도준칙에는 속보 경쟁 자제, 조사범위 내 결과 보도, 무응답 고려, 주관적 표현 자제, 전문용어에 대한 해설 등 여론조사 기사 오독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들이 포함돼 있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전무는 “보도준칙을 선포한 이후에도 언론의 선거 여론조사 보도 문제가 크게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오차를 고려하지 않은 순위 위주의 경마식 보도, 전국 조사임에도 지역별 분석이나 세대별 분석 등 하위 계층 분석결과를 강조하는 보도, 조사회사·조사방법·조사 시점·설문 문항 등이 다른데도 조사결과나 추세를 무분별하게 비교하는 보도, 비과학적이거나 과장된 조사결과 해석 등이 여전하다”고 밝혔다.

또한 김 전무는 부실한 게이트키핑을 원인으로 거론했다. “언론이 신뢰할만한 조사결과와 그렇지 않은 결과를 구분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아 일조하고 있으며, 이는 클릭 수나 댓글로 기사 가치를 평가하는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무분별한 여론조사 결과 인용 보도

여론조사 결과 보도는 주목도가 높아 대다수 언론에서 조사결과를 무분별하게 인용하고 있다. 김 전무는 언론과 정치권이 선거 여론조사를 지나치게 많이 활용해, 여론조사 신뢰도를 낮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사의 경영환경이 어려워져 과거 복수의 중앙언론사에서 시행했던 여론조사 전문기자제가 폐지됐고, 그로 인해 여론조사 회사의 공신력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조사를 시행하거나 조사결과를 인용하는 기사가 양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매체 입맛에 맞는 조사결과나 자극적인 조사결과를 선택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허락돼 있고 매체들이 스스로 의뢰기관이 돼 조사를 의뢰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체계적으로 종합해 보도할 수 있는 인력과 의지가 있는 매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여론조사 보도 문제는) 예측 가능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언론사 의도에 맞춘 여론조사, 결과만 궁금해하는 독자

김미나 기자는 “새로운 인물을 띄우는 용도로 언론사의 여론조사 의뢰가 어느 정도 이용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무분별하게 조사되는 양자 대결은 군소 후보를 배제하고 주요 후보를 밀어주는 정치적 개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결과에만 집중된 관심이 여론조사 불신론을 키웠다고 밝혔다. 김 기자는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벌였는지에 대한 관심을 의도적으로 또는 게을러서 엄밀히 보도하지 않은 책임이 언론에 있고, 그렇게 편집된 여론조사 결과는 널뛰기 행태를 보여 수용자에게 신뢰를 줄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언론은 ‘자세한 조사결과는 조사를 의뢰한 해당 언론사나 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라’고 하지만 참고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며 “포털에 걸리는 기사를 중심으로 여론 추이를 확인하고픈 유권자, 그 필요성에 정확히 부합하는 손쉬운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 재료를 수급하는 여론조사업체의 공생 관계가 여론조사 불신 세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전무는 전화면접 방식은 요건을 갖춘 조사로, ARS(자동응답방식)는 조사답지 않은 조사로 분류한 뒤 “언론과 정치권 등에서 조사다운 조사와 그렇지 않은 조사를 구분하지 않으면서 무비판적으로 중계하거나 이해타산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측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등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공인해주고 있는 현실이 주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내영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위원장은 “선거 여론조사의 근본적인 한계와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결과를 무분별하게 공표·보도하니까 불신의 주요 원인이 되는 것”이라며 “조사방법을 고려하지 않고 ARS조사와 전화면접조사의 결과를 단순 비교하거나 오차범위 내 조사결과임에도 그에 대한 언급 없이 순위를 발표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유권자는 여론조사 결과를 절대적 수치로 받아들이기보다 조사방법·설문내용 등 여러 정보를 추가로 확인해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ARS보다 전화면접 조사결과 인용해야

김춘석 전무는 ARS 조사와 관련해 과학적 표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응답자로 참여하는 조사라며 활용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ARS 조사에서 널뛰기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용권만 취득한 연구소 등에서 ARS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하면 여론형성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기자는 ARS 조사의 경우, 적극 지지층의 응답이 좀 더 많이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종희 교수는 “소규모의 ARS업체들이 늘었고 이들의 의뢰기관은 공중파나 신문매체가 아닌 인터넷, 유튜브 채널 등으로 특정 조사업체와 신생 언론이 지속적인 계약관계를 맺는 모습이 관측됐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언론이 여론조사 결과가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조사기관 조사결과의 타당성을 확인하는 역할수행으로 여론조사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내영 위원장은 “언론사 등에서 보도준칙을 지키고 오차범위 내 결과의 보도 시 표현에 유의해 유권자들에게 오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언론은 선거 여론조사의 주요 의뢰자이자 전달자로 여론조사의 옥석을 가리는 전문성을 갖추는 것은 물론 보도방식이 선거 공론장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지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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