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노보를 읽으면서 불현듯 전 한국PD연합회 회장이었던 정호식 현 MBC시사교양국장의 바람을 읽는다. 2005년, 당시 한국프로듀서연합회 회장으로서 만남. 그리고 더불어 함께 투쟁했던 한국지상파의 공공성 확대투쟁 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정호식 국장과 함께 방송발전기금 개선을 위한 싸움, 지금 SBS드라마 <온에어>에서 생생하게 그려지는 드라마제작과정에서 드러나는 스타권력화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작업, 한국방송광고공사가 한국의 미디어공공성에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지에 대한 공론화를 통한 민영미디어렙 저지투쟁 등, 그와 함께 했던 굵직한 싸움을 기억해 본다.

적어도 정호식 전 회장과 함께 한 경험은 미디어공공성 강화를 위한 경험이었고, 공영방송 구성원에 대한 신뢰요 믿음을 공고히 하는 과정이었다. 그런 그가 소위, MBC의 정신 MBC의 전통이라는 권력과 자본에 대한 투철한 견제와 감시의 최일선인 시사교양국장이 되었고, 시사교양국장으로서 MBC노보에 자신의 비전을 표현했다.

▲ MBC 시사교양국 정호식 국장 ⓒ문화방송노보
정호식 국장은 시사교양국은 매출보다는 공영성, 회사안보 등으로 평가받도록 해야 하며 시사교양국이 회사 내에서 정당하고 합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시사교양국의 기능으로 견제와 비판 및 아젠다 세팅, 유익한 정보, 감동, 시사교양‘다운’프로그램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지금도 힘든 여건이긴 하지만 카메라맨에게, 작가에게, 모든 스텝들에게 정성을 조금만 더 쏟아보자는 제안을 하였다. 그리고 가을을 목표로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을 고려중이라면서 공영성 있는 교양 프로그램, 사람 품이 좀 덜 들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 있으면 많이 내줬으면 하는 바람을 덧붙였다. -MBC노보, 134호, 2008. 4. 11.

위의 기사를 읽으면서 손가락은 자연스레 정호식 국장의 이메일 주소를 찾게 되고, 미디어공공성이 전반적인 위기 국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지금, MBC 시사교양국이 이 땅의 없는 자들을 위해서, 이 땅에서 만연한 몰상식 몰합리 몰이성 몰염치의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을 적어 보낸다.

정호식 MBC 시사교양국장께

저는 연론연대에서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양문석입니다. 가을 개편 때 공영성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MBC노조의 노보를 접하고 이렇게 한가할 듯 한 일요일 오후 나름대로 치열하게 모니터하고 있는 제 입장에서 반드시 제안하고픈 프로그램이 있어 전자편지를 적어 봅니다.

공영성. 이는 공공성의 하위의 개념으로서 공익성과 더불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공영방송의 핵심 방향입니다. 하지만 신문 또한 최소한의 공공성 개념이 있어야 하나, 자사의 소설을 비판하고 신정아 누드사진 게재를 두고 비판했다하여, 신문법으로서 최소한 신문의 공공성을 확보하려고 제도과정에 핵심역할을 했다하여, 선거과정에서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던 한 국회의원 후보를 사실도 아닌 소설성 기사로 날려버리는 문화일보와 조선일보를 보면서, 한국 사회에서 결정적인 민주주의 성숙의 시기 때마다 특정정치세력의 기관지로서 또는 충견으로서 여론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수구보수신문사들의 작태를 더 이상 눈 뜨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지상파 방송사의 보도나 시사교양프로그램들이 상대적으로 이들보다 상식과 합리, 이성과 염치를 갖추고 있다고 하나 비판의 시선을 포기할 수도 없는 지경입니다. 특정한 정치집단과 대자본의 위세에 무릎꿇고 애원하는 신문사와 방송사의 작태 또한 국민들에게 범죄행위임을 고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언제든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여론조작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고자 하는 이들이 이명박 정부와 짜고 제도 자체를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신문이 보도전문채널과 종합편성채널을 소유 및 겸영할 수 없도록, 헌법재판소마저 그 필요성을 인정한,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금지 조항을 도려내려고 합니다.

이 편지를 쓰는 중에도 한겨레신문 미디어 담당기자가 총선 이후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정책에 대한 질의를 합니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끊임없이 흘리며 분위기를 잡고 있는 교차소유 허용에 대한 시민사회의 입장을 질의하고 어떻게 대응할 지 물어봅니다. 공공성 영역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신문은 겨우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정도밖에 없습니다. 반면, 지상파에서는 KBS의 미디어포커스 정도가 ‘미디어공공성’이라는 화두를 두고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 경향신문 4월11일자 1면.
미디어공공성? 이렇게 설명 해 보죠. 술집과 매매춘이 난무하는 거리에 그 나마 몇 개 안되는 공립 도서관을 없애려는 기도가 있다면 정호식 국장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국의 방송은 이를 지키기 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장르의 프로그램으로 공립 도서관이 왜 필요한지, 이것이 거리를 들락거리는 국민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지를 집중적으로 보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립 도서관에 간혹 끼어있는 불량 도서를 고발하고 수거할 것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적어도 정 국장께서는 이에 동의할 것으로 믿습니다.

공공성이라는 바로 공적 영역에 있어야 할 것들을 지켜내는 것이고, 이를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종종 지상파가 욕 들어 먹는 이유는 공립 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는 불량 도서와 같은 몇몇 프로그램들 때문이지만, 지상파를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이유는 지상파가 불량 신문과 불량 유료방송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공립 도서관이기 때문입니다.

공립 도서관을 유지 강화하자는데 이명박 정부와 이명박계 신문사들은 ‘좌파정책’ 운운하며 이데올로기 공세를 가합니다. 공립도서관은 이데올로기의 영역이 아니라 상식과 합리, 이성과 염치의 영역입니다. 저들은 우파정책을 주창하는 집단이 아니라 ‘몰상식과 몰합리, 몰이성과 몰염치’로 무장한 집단 이기주의자들일 뿐입니다. 이들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 이들의 주장이 왜 잘못되었는지, 이들의 주장이 왜 여론조작인지를 알려주는 교재가 필요합니다. 공립 도서관으로서 지상파를 공립답게 하는 것은 바로 불량 신문 불량 방송의 불량성을 깨우치게 할 수 있는 책들을 전시하고 강독할 수 있는 공간, 토론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KBS의 미디어포커스’와 같은, 이전 MBC가 했던 ‘미디어비평’과 같은 프로그램입니다.

최소한의 정상적인 논쟁의 장을 열어내는 것이 지상파이자 공영방송인 MBC 시사교양국이 담당해야 할 역사적 과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개념의 미디어비평을 담을 수 있는 프로그램 준비위 또는 프로그램 개발팀을 안팎으로 구성해서 준비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제안합니다.

이데올로기 투쟁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상식과 합리, 이성과 염치의 복원을 위해서 함께 하자는 것입니다. 공립도서관을 지키고자 함께 하자는 것이고, 혹여 공립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불량 신문과 불량 방송을 제거하자고 함께 하자는 것입니다. 정국장의 결단과 시사교양국의 결의를 기대합니다.

연대해서 이길래? 이탈해서 질래?
제1전선은 교차소유허용반대투쟁이다 <MBC노보 2008. 4. 11일자 기고문>

예측한 대로 한나라당과 그 아류 정당 및 무소속을 합하면 299석 중 200석에 육박하는 의석이 보수진영에 쏠렸다. 선거 개표를 발표하는 시각, 몇몇 지인들이 ‘우리 국민들 해도 너무 하네’하는 문자를 비롯해서 ‘이제 끝나는 건가’하는 실망하는 표현들이 난무하다.

하지만 이렇게 실망할 필요가 없다. 국민들은 ‘무능한’ 진보개혁진영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내린 것이고, 이는 곧 능력 있는 진보개혁진영으로 새로운 판을 짠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들로부터 새로운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 때 열린우리당이나 이번 총선의 한나라당이 그들 스스로 ‘잘해서’ 얻은 표가 아니라 상대방이 ‘못해서’ 얻은 표라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대부분의 거대여당은 교만함과 오만함으로서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부정과 비리 그리고 무능으로 자멸하는 역사를 우리는 쭉 보아왔다. 여기서 우리는 희망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 몇 년 후의 희망을 노래하기에는 너무나 긴급한 사안들이 즐비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 고비를 넘김으로써 새로운 사회진보와 사회 공공성을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후의 상황이 기대되기도 한다.

미디어영역에서만 살펴보아도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 허용 및 KBS 2 MBC 민영화 물결이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엄청난 물결이 치밀어 들 것이다. 이미 선거 전부터 ‘좌파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조중동을 비롯한 이명박계 신문들은 방송과 신문의 겸업금지를 들먹여 왔다. 여론독과점보다는 미디어산업의 활성화라는 논리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현혹해 왔고, 이들 신문들은 이번 총선에서조차 이명박계 신문 한나라당 기관지로서 그들의 선전역량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이제부터 논공행상이 본격화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에서부터 한나라당의 과반의석 확보에 기여한 공을 정부와 여당은 외면할 수 없는 처지다. 이명박계 신문의 대표선수 조중동에게 뭘 줄 수 있을까?

1차 예상 시나리오는 교차소유허용을 통해서 신문과 방송의 겸업금지 규정을 푸는 것이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틈나는 대로 제한적 신문방송 겸업허용을 흘리고 있다. ‘제한적’이라는 표현은 유인촌 장관의 말장난.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에 조중동 소유의 보도전문채널과 종합편성채널이 등장하게 될 경우 한국의 여론독과점 현상, 즉 필요할 때마다 여론을 조작해서 특정정치세력이나 집단을 유리하게 만드는 행위는 불 보듯 뻔한 이치. 교차소유를 허용한다는 것 자체가 전일적인 여론조작행위를 제도적으로 합법화시켜준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아도 조중동은 여론의 조작하거나 왜곡하는 능력이 탁월했고, 그 조작과 왜곡의 피해자가 대통령이 될 때도 있었고 당내 경선 중인 후보가 될 때도 있었다. 노동자 농민 등 이 땅의 소외계층들은 말 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지상파마저도 조중동의 집중적이고 집요한 공격에 의해 저널리즘의 기본방향을 상실하고 조중동의 아류와 같은 논조를 드러내는 경우 허다했다. 김중배 사장 시절 조중동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던 곳이 MBC요, 정연주 사장이 KBS 사장으로 취임하자 MBC를 향해 집요하게 물어뜯던 조중동의 야수같은 이빨이 KBS로 집중되었던 것도 일찍이 우리는 목격해 왔다.

그런데 이들이 종합편성채널을 갖는다고 하면 이는 곧 또 하나의 지상파가 될 것이다. 이미 케이블TV 가입가구가 1,400만을 훌쩍 넘어섰고, 위성방송 Skylife도 이미 200만 가입가구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IPTV가 등장하면 순식간에 1,800만 전체 가구 수를 유료방송시장이 장악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소위 말하는 유력 일간지가 없는 지상파와 달리 유력일간지를 장착한 조중동 계열의 종합편성채널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것이 1개가 되든 2개가 되든 그 이상이든 상관없이. 그래서 유인촌 장관의 ‘제한적’이라는 표현은 말장난이 되는 것이다.

또한 조중동이 맘만 먹으면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의 실정을 공덕으로 대체할 수도 있고, 이후 각종 선거에서 그들이 미는 정당과 후보의 공과를 떠나 매번 당선시킬 수도 있는 여론조작의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한 ‘희망’, 무능한 진보개혁세력이 아니라 능력있는 진보개혁세력으로 새로운 정치판을 짠다고 해도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일본과 같은 수구보수세력의 나라가 될 가능성마저 열어준다는 점에서 기필코 교차소유허용은 저지시켜야 하는 것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전문채널을 운영하기 위한 자본이 지금 지상파나 YTN처럼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지 그들은 기존의 보도인력을 이용해서 보도전문채널의 내용을 상당부분 채울 수 있다. 그리고 종합편성채널을 운영하더라도, 미국 등 외국에서 킬러 프로그램을 사 오고, 외주제작사들을 통해서 저가의 국내제작프로그램을 구매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자체제작보다는 외주제작사 및 해외로부터 프로그램 구매를 통해서 편성을 할 수 있고, 핵심영역인 보도프로그램만 자체 제작한다면 지금의 지상파 3사의 예산과 비교해서 10분1 미만으로 충분히 종합편성채널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일각에서 나오는, ‘종편채널을 그들이 운영해보라지...망하고 말 걸’하는 주장이 결코 설득력이 없는 이유다.

2차 예상시나리오는 MBC민영화다. 저들은 결코 KBS 2와 MBC 민영화를 동시에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MBC만 민영화를 추진함으로써 MBC민영화 저지투쟁이 KBS와 연대할 수 있는 고리를 끊을려고 할 것이다. 또한 국민과 시민사회로부터 MBC를 고립시키려 할 것이다. 고립된 MBC는 노조를 중심으로 치열한 투쟁을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고립이라는 것 자체는 이미 더 이상 승리의 조건이 아니라 패배의 조건에 가깝다는 사실이 치명적이다.

적어도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KBS2와 MBC 민영화를 공식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다. 하지만 교차소유 허용은 이미 공공연히 밝혀왔던 사안이다. 이는 곧 교차소유허용을 먼저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정치적 보은을 넘어 영구집권을 위한 여론형성과정의 훼손과 왜곡 그리고 조작을 제도화하려는 쪽과 훼손과 왜곡 그리고 조작을 저지하려는 쪽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한 판 싸움이 다가오고 있다. 그 일차 전선은 바로 교차소유허용이냐 금지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교차소유 허용을 저지하려는 쪽에는 조중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들이 동참할 것이고, 지상파와 보도전문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YTN이나 MBN 등도 함께 싸울 수 있는 이유가 분명하다. 더하여 시민사회의 양심적인 세력들이 대거 함께 어깨를 걸 수 있다.

하지만 MBC민영화 반대투쟁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저들은 MBC와 국민들을 분리하고 MBC를 고립하려는 선전선동에 집중하는 전술을 채택할 것이다. 예를 들어 MBC가 그 동안 ‘잘 했나 못 했나’는 선전프레임을 짜고 잘 못했던 사례들을 끄집어냄으로써 다른 지상파나 신문사 그리고 시민사회가 결합하는 명분을 최대한 약화시킬 것이다.

지금 바로 이 시간 MBC구성원들은 결단해야 한다. 교차소유허용반대 전선에서 연대함으로써 민영화로 불길이 확산되는 것을 저지할 것인가? 아니면 교차소유허용반대 전선에서 이탈함으로써 저들의 MBC 고립전술에 말려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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