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좀비 미디어’로 불리는 라디오 지원 방안으로 혁신지원전담TF, 목적기금, 청취율 조사 기구, 킬러콘텐츠 투자 등이 제안됐다.

29일 한국언론정보학회와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 주최한 ‘라디오 지속가능성과 미래 혁신 성장을 위한 정책 방안’ 세미나가 열렸다. 발제를 맡은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는 “한국에서 라디오는 계획적으로 고사된 것으로 한국의 방송정책은 지나치게 신규 미디어 중심으로 기울어져 있어 라디오가 주변부 서비스로 취급돼 왔다”고 지적했다.

29일 열린 한국언론정보학회와 정필모 의원이 공동 주최한 '라디오 지속가능성과 미래 혁신 성장을 위한 정책 방안' 세미나 (사진제공=한국방송협회)

정 교수는 한국에 비해 라디오 도달률이 월등히 높은 영국의 사례를 들어 라디오 활성화 방안을 제시했다. BBC는 라디오를 공적서비스 영역으로 간주해 전체 예산의 5분의 1을 라디오 및 음성 서비스 제작과 운영에 투자하고 있다. 팟캐스트가 방송사 밖에서 별도의 오디오 콘텐츠로 성장한 한국과 달리, 영국은 팟캐스트 이용자의 36%가 BBC가 제공하는 웹사이트나 앱을 이용하고 있었다.

이는 라디오 활성화 정책 때문이다. 영국은 1996년 방송법 제정 이후 ‘디지털 라디오 워킹그룹’을 결성해 디지털 라디오 확산을 위한 거버넌스 구조를 구축했다. 또한 DAB기술에 기반을 둔 디지털 전환 계획을 수립한 결과 라디오 이용 점유율이 크게 올라갔다. 2004년 오프콤 주도로 ‘라디오 혁신’을 목표로 하는 공개 협의가 진행됐으며 최소규제 원칙이 도입됐다. 2010년 디지털 경제법에 ‘디지털 라디오 실천계획’을 규정해 디지털 라디오의 개선과 홍보를 담당하는 산업협력 기구인 '디지털 라디오 UK'를 설치했다.

한국에도 라디오 중심의 정책과 기구 필요

정준희 교수는 “라디오는 죽지 않았지만, 굳이 되살리려는 노력 없이 알아서 살아남다가 사멸해갈 정도의 전파로 취급해왔기에 일명 ‘좀비 미디어’로 불렸다”며 “라디오에 대한 현재적 수요나 잠재적 수요가 사라지지 않았으니 라디오 정책에 대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현행 방송법 시행령을 통해 ‘라디오 혁신 지원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진흥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라디오 정책 입안을 선도하는 진흥기구는 디지털 라디오 전환 방안, 주파수 정책, 광고 제도 개선 등을 포함한 재정 충당 정책 등을 검토하는 역할을 한다.

정 교수는 오디오 콘텐츠를 지원하는 목적기금 마련을 제안했다. 정 교수는 “지금처럼 영상물 위주 기금에 라디오를 끼워 넣는 게 아닌 오디오 콘텐츠만을 위한 목적기금이 필요하고 이를 관리하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올해 10월 영국 디지털 문화부 보고서를 살펴보니, 대부분 라디오만 다루는 게 아닌 ‘라디오&오디오’로 분류하고 있었다”며 “영국은 라디오와 오디오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정 교수가 제안한 오디오 콘텐츠 진흥기구 설치에 대해 공감을 나타냈다. 김 소장은 “영국의 ACF는 오디오 제작사들과 라디오 방송사들이 연합해 만든 단체로, 영국 정부 디지털 문화부에서 기금을 준다”며 “초등학생 신체 움직임 강화, 재즈 관련 다큐멘터리 시리즈 등 라디오 콘텐츠로 상상할 수 없었던 다양한 콘텐츠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오디오 콘텐츠의 제작을 투자하고 진흥하는 기구 및 기금을 만든 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은 "방송통신위원회가 라디오 방송정책 연구위원회를 만들어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입법적으로 해결할 부분이 있다면 국회 내에서도 라디오 지원 특별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제대로 된 라디오 청취율 데이터부터 마련해야

제대로 된 라디오 진흥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데이터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준희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청취율 등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곳은 한국리서치 청취율 조사가 유일하지만, 수도권 조사에 국한돼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공 받기에는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팟캐스트를 포함한 멀티플랫폼 라디오 서비스 이용 행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별도의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영섭 경희 사이버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라디오 이용률이 15~17%, 신문 이용률이 13%인데 신문에 대한 지원금이나 정책을 보면 라디오가 상당 부분 방치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제대로 된 라디오 이용률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성제 한국방송협회장은 “라디오를 라디오 플랫폼에 한정 짓지 말고 오디오 콘텐츠 영역으로 키워야 한다”며 “정부는 다른 오디오 콘텐츠와 똑같이 라디오를 대접해달라. 지상파라서 받는 규제와 제한을 풀고 다른 오디오 콘텐츠와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심영섭 교수는 ‘최소규제’ 방향을 강조했다. 심 교수는 “TBS 성공사례로 알 수 있듯 지역·계층마다 욕구가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다”며 “라디오 매체 지원을 위한 목적기금 신설, 기존 기금 중 일정 비율을 라디오에 활용할 수 있게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상파라서 받는 라디오 규제 "완화해야"

최상훈 방송협회 정책협력부장은 “TV매체와 라디오는 다른 특성이 있지만 동일한 규제를 받고 있다”며 차별규제 완화를 강조했다. 최 부장은 "라디오만큼 활력이 필요한 시장이 없는데 필요 없는 규제부터 덜어내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폭을 넓혀야 한다"며 "방송 진행자가 직접 광고 문언을 언급할 수 있는 ‘라이브 리드’를 도입하거나 음악프로그램에 타이틀 스폰서를 도입하거나 디지털 매체에 허용되는 광고금지 품목을 풀어달라"고 말했다.

또한 라디오 관련 정책 중 ‘음악저작권 이슈’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부장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면, 저작권업체는 방송이 아닌 전송 기준으로 보고 높은 음악저작권 요율을 적용한다”며 “라디오 발전을 위해 합리적 수준에서 저작권 처리가 가능하도록 정책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소현 방송통신위원회 지상파방송정책과 사무관은 “올해 라디오 통합플랫폼 구축 사업을 추진했지만, 예산 배정의 문턱을 넘지 못해 아쉽다”며 “토론회에서 라디오를 위한 진흥기금 신설이나 법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는데 방통위도 이에 필요성을 느껴 정책연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라디오를 위한 별도의 법이 필요하고 진흥기구가 설립돼야 한다는 내용이 정책연구에 포함돼 있어, 내년에는 이를 어떻게 만들지 검토해보고자 한다”고 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