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2017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현 국민의힘 의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검·경·군이 자신의 비서와 배우자에 대한 통신조회를 했다며 '사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조선일보·중앙일보·문화일보 등 주요 보수언론은 통신조회는 수사의 수단일 뿐 특정인 사찰로 보기 어렵다는 '팩트체크'성 기사를 게재했다. 현재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통신조회 논란을 다루는 논조와 많이 다르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얘기다.

홍 대표가 '사찰' 의혹을 제기한 검찰청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당시 지검장은 윤석열 현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다. 서울중앙지검은 홍준표 대표 주장을 '사찰이 아니다'라는 입장으로 반박했다.

2017년 10월 9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정부 통신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연합뉴스)

보수언론 '팩트체크' 당한 홍준표의 '통신 사찰'

2017년 10월 홍 대표는 자신의 수행비서와 배우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통신조회가 있었다며 '문재인 정부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대통령 선거 기간부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까지 검찰, 경찰, 육군본부 등에서 비서와 배우자에 대한 통신조회를 했다는 내용이다. 홍준표 대표는 수행비서의 휴대전화가 '사정당국으로부터 조회를 당했다'며 정부의 사찰을 주장했다.

하지만 홍 대표의 주장은 주요 보수언론들로부터 반박됐다. 수사기관이 수사 대상자가 통화한 상대방이 누구인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전화번호 정도를 확인한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의 통신조회는 '통신자료'와 '통신사실확인자료'로 구분된다. '통신자료'는 수사기관이 수사 대상자의 인적사항을 이동통신사에게 요청해 제공받은 자료를 말한다. 이용자 이름, 주민번호, 주소, 가입 및 해지 일자, 전화번호, ID 등 이통사 가입정보로 법원의 허가(영장) 없이 제공받을 수 있다. 홍 대표가 주장하는 사찰은 통신자료 조회를 말한다.

'통신사실확인자료'는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법원의 허가가 필요한 정보를 말한다. 상대방 전화번호, 통화 일시와 시간, 인터넷 로그기록, IP 주소, 발신기지국 위치추적 자료 등이 해당된다.

조선일보는 2017년 10월 11일 기사 <[팩트체크]홍준표가 말한 '통신조회'는 번호 주인 확인>에서 "홍 대표 측과 해당 통신조회를 했던 기관들 설명을 들어보면 사찰이라고 하기엔 무리란 지적이 많다"며 "홍 대표 전화의 통화 내역을 들여다본 게 아니라, 다른 수사를 하다가 혐의자가 통화한 상대방이 누구인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소유주를 확인한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통신자료조회는 법원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 이 때문에 연간 천만 건을 넘을 정도로 많이 이뤄지고 있다"며 "결론적으로 통신자료조회는 통신 수사의 한 수단일 뿐 특정인을 겨냥한 사찰로 단정 짓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고 썼다. 이어 조선일보는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 통신자료조회가 남발될 경우 통신비밀·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은 있다"며 "법조계에선 '정치권이 사찰 공방으로 몰고 가기보다 남용 가능성을 막는 방안을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 2017년 10월 11일 <홍준표가 말한 '통신조회'는 번호 주인 확인>

같은 날 중앙일보는 기사<홍준표가 주장한 '정부의 통신 사찰' 알고보니…>에서 "홍 대표가 당한 '통신조회'는 홍 대표의 통화 내역을 들여다 본 게 아니라 다른 수사를 진행하던 사정 당국이 혐의자가 통화한 상대방이 누구인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소유주를 확인하는 일반적인 '통신자료조회'인 것으로 확인돼 '사찰' 주장은 무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문화일보는 2017년 10월 13일 <[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 정치사찰 논란 빚은 '통신조회'>에서 "홍 대표 주장대로 홍 대표 비서의 통화내역을 조사한 게 아니라 어떤 범죄피의자 A 씨와 통화한 여러 전화번호의 ‘주인’이 누군지 찾다가 그중 한 명이 홍 대표 비서로 확인된 것뿐"이라며 "검사 출신인 홍 대표가 통신자료조회와 통신사실확인을 구분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일보는 "통신자료조회를 특정인을 겨냥한 사찰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남발될 경우 통신비밀·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이 때문에 최근 통신자료조회를 두고 ‘남용 가능성을 막을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제도적 방안 마련은 국회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오마이뉴스 <[팩트체크] 홍준표 "통신조회 당해, 정치 사찰" 사실일까>(10월 9일), 한국일보 <정치사찰이라더니… 현 정부 출범 전 통신조회가 더 많아>(10월 9일), 아시아경제 <'정치사찰' 주장한 홍준표… 잇따른 오발탄>(10월 10일), 아주경제 <"나도 정치사찰 당했소" 홍준표 자백과 자뻑 사이>(10월 10일), 경향신문 <하루만에 옹색해진 한국당발 '정치사찰' 의혹>(10월 10일), 헤럴드경제 <홍준표가 내놓은 정치사찰 근거...대부분 ‘朴 정부때’>(10월 10일), 국민일보 <홍준표 사찰 주장, 오버였나>(10월 11일) 등의 비판적 보도가 이어졌다.

기자 통신조회 사실에 '언론 사찰' 나아간 언론

공수처 통신조회 논란은 지난 5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인 김준우 변호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수처로부터 통신조회를 당했다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이후 참여연대 출신으로 현 정부여당을 비판해 온 김경율 회계사가 공수처로부터 통신조회를 당했다고 밝히면서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이후 각 언론사 기자들이 공수처로부터 통신조회된 사실이 있는지 확인에 나섰다. 현재까지 60여명의 언론인이 공수처 통신조회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주요 보수언론 중심으로 '언론 사찰'이란 보도가 이어졌다.

<공수처, TV조선 기자들 사찰 의혹>(조선일보 12월 11일)
<수사권 이용해 언론 사찰 의혹 공수처, 존재 이유 뭔가>(조선일보 12월 13일 사설)
<공수처, 비판적 언론 상대로 마구잡이 조회…재갈 물리나>(문화일보 12월 13일)
<공수처, 신문기자들·변호사 통신자료도 뒤졌다>(12월 14일 조선일보)
<언론사찰 정황도 드러난 공수처, 폐지 당위성 더 커졌다>(문화일보 12월 14일 사설)
<기자들 통화기록 통째로 턴 공수처>(12월 15일 조선일보)
<'고발 사주 수사' 비판에… 공수처, 본지 기자 6명 12차례 조회>(12월 15일 조선일보)
<비판 보도 기자들 무더기 전화 뒷조사, 수사권 이용한 범죄>(12월 15일 조선일보 사설)
<공수처, 기자들 통신자료 조회 본지 기자 3명도 11차례 당했다>(12월 15일 중앙일보)
<이젠 언론사찰 의혹까지 받는 공수처>(12월 15일)
<공수처, 고발사주 수사와 무관한 기자 통신자료까지 조회>(12월 16일 동아일보)
<공수처, 野담당 기자도 통신조회… 법조계 "저인망식 과잉수사>(12월 16일 동아일보)
<기자들 통신자료 마구 뒤진 공수처, 언론사찰 아니면 뭔가>(12월 17일 조선일보 사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홍준표 '사찰' 의혹 제기

홍 대표는 자신의 수행비서가 2016년 말부터 2017년 8월까지 6차례에 걸쳐 사정기관으로부터 통신 사찰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2016년 12월 경남 양산경찰서, 2017년 2월 경남지방경찰청, 3월 서울중앙지검, 4월 경남지방경찰청, 8월 서울중앙지검·육군본부 등이다.

홍 대표의 사찰 주장에 서울중앙지검은 기자들에게 "수사대상자와 여러차례 통화한 전화번호가입자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다 그 중 1명의 이름이 손모 씨(홍 대표 수행비서)라는 사실만 확인했다"며 "홍 대표 비서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고, 구체적인 통화내역 확인을 한 바 없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석열 현 대선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공수처로부터 통신조회를 받은 사실을 근거로 공수처 폐지를 주장하는 등 '사찰' 공세를 벌이고 있다.

윤 후보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불과 며칠 전 '언론 사찰'이 논란이 되더니 이제는 '정치 사찰'까지 했다니 충격"이라며 "이 정도면 공수처의 존폐를 검토해야 할 상황이 아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공수처가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공포 사회를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시계를 20세기로 거꾸로 돌리고 있다"며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 대한 사찰은 국민에 대한 사찰이기도 하다. 정권교체로 공수처의 폭주를 막겠다"고 했다. 그러나 2019년 7월부터 지난 3월까지 윤 후보가 검찰총장을 지내던 시기 검찰의 통신조회 건수는 300만건에 달한다. (관련기사▶윤석열의 자가당착, 검찰총장 당시 국민사찰 300만 건?)

2018년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사진=연합뉴스)

공수처, 비판보도 기자·가족 통신조회 '사찰' 논란 확산

하지만 지난 21일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알려진 TV조선 기자와 그의 가족에 대한 통신조회는 공수처가 수사권을 남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공수처가 TV조선 기자에 대한 통신사실확인자료 영장을 발부 받아 조회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수처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공수처 황제조사' 보도(4월 1일자)를 한 TV조선 기자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상대로 통신조회를 했다. 공수처의 TV조선 기자와 가족의 통신조회는 '이성윤 황제조사' 보도의 취재방식을 둘러싼 논란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6월 3일 TV조선은 공수처 수사관 2명이 '이성윤 황제조사' 보도의 CCTV 영상 입수 경위를 파악하고 다녔다고 보도했다. 고위공직자를 수사 대상으로 삼는 공수처가 비판보도를 한 기자의 '뒷조사'를 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공수처는 "수사기관만 보유하고 있어야 할 수사 자료인 CCTV 영상이 부당한 경로로 유출됐다는 첩보 확인을 위해 CCTV 관리자를 대상으로 탐문 등 사실확인 절차를 진행한 사실이 있다"며 "당시 신원미상의 여성이 위법한 방식으로 관련 동영상을 확보했다는 사건 관계인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내사한 혐의는 수원지검 수사팀의 공무상비밀누설로, 공수처는 내사 중 기자의 취재 관련 정보를 인지하게 됐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후 TV조선 기자가 '범죄 피해를 당했으니 CCTV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의 취재윤리 위반 의혹이 제기됐다. TV조선 측은 위법하게 취재한 적이 없고, 이 사건의 본질은 언론자유 침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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