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정인숙 칼럼] KBS가 제25대 김의철 사장 취임과 함께 ‘공영미디어 독립선언’을 했다. KBS의 다음 세 가지 선언은 KBS의 미래는 물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너무나 중요한 비전이다.

첫째, KBS는 국민을 위해 존립하는 공영미디어로서 일체의 정치적 간섭이나 상업적 압력을 배제한다.
둘째, KBS는 발전된 민주주의와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 세계를 선도하는 미디어 기술을 가진 대한민국의 대표 공영미디어로서 KBS의 토대가 되는 규범과 제도들을 이에 걸맞게 전면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노력한다.
셋째, KBS는 허위 정보가 넘치는 이 시대에 ‘정보의 최종 확인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여 국민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미디어가 될 것이다.

정치적 독립은 물론 상업적 압력을 배제하고, 규범과 제도를 전면 개혁하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미디어가 되겠다는 각오가 읽힌다. KBS 사장 취임사에서 정치적 독립이나 공정성이라는 키워드는 으레 언급되는 진부한 어휘였다.

(사진=KBS)

2003년 4월 28일 취임한 정연주 사장은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강조하며 ‘국민의 방송’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약속했다. 2009년 11월 24일 취임한 김인규 사장은 확실한 공영방송을 만들겠다고 했다. 2012년 11월 23일 취임한 길환영 사장 역시 국가기간방송으로서 KBS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겠다고 했다. 2018년 4월 9일 취임한 양승동 사장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그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취임하는 사장마다 내세운 것이 KBS의 정체성 확립이고 정치적 독립이었기에 이번 KBS의 정치적 독립선언 역시 비장하지만 사실상 그다지 새로운 것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의철 신임사장의 독립선언에 주목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무한경쟁의 미디어산업구조 속에서 기로에 서 있는 KBS의 현 좌표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비교적 정확하게 인식한 독립선언이라는 점에서다. “KBS의 길은 다릅니다. 상업 미디어들과 차별화되는 길, KBS만의 품격을 잃지 않고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신뢰를 드리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길입니다”라고 밝힌 부분에서 그러한 진정성이 읽힌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 플랜이 없다 보니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든다. “국회나 정부, 광고주들과 같은 현실적 힘을 가진 주요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공영미디어로서의 독립성을 확보해나가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어떻게 그렇게 하겠다는 것인지와 닿지 않는다. 지켜볼 일이다.

데이터 기반 경영 역시 캐치프레이즈로 신선하나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감으로 예측하는 것이 아닌 데이터로 뒷받침되는 ‘데이터 기반 경영’을 하겠습니다. 어떤 콘텐츠를 제작하고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우리 안의 비효율적인 것은 무엇이고, 버려야 할 관행과 시스템은 무엇인지, 데이터를 축적하고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정하겠습니다”라고 강조한 약속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것인가?

10일 사장 취임식에 참석한 임원진과 김의철 사장 (사진=KBS)

야심차게 발표한 ‘공영미디어 독립선언’이 이벤트성 취임 선언으로 끝나지 않고 제대로 이행되려면 무엇보다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정치권의 협조이다. KBS의 거리두기 의지가 실현될 수 있도록, 간섭하지 말고 압박하지 말고 협력해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정치권의 당리당략이 KBS의 개혁과 방송의 독립성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KBS의 정치적 독립, 상업적 독립이 실체적 결과로서 나타나려면 제도가 보완되어야 한다. “KBS는 이사회 구성, 예산 결산 심사, 수신료 결정 구조 등 거버넌스 전반에서 정치권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 한계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그 한계를 핑계 삼아 독립성을 지키지 못한다는 지적을 피해 나가는 변명을 해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변명을 거두겠습니다.” 취임사의 각오는 단단해 보이지만 현실은 거버넌스 전반에서 정치권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기 어려운 구조인데 어떻게 한단 말인가.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개혁은 어렵다. 이 역시 정치권의 기득권 포기가 있어야 할 일이다. “다시 정치권이 공영방송 이사·사장 선임 과정에 개입해 언론장악 논란을 되풀이하고 개혁은 말로만 그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PD저널, 2021.7.21.)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두 가지의 과제가 선결되기 위한 구체적 플랜이 후속타로 발표되어야 한다. 아마도 야심찬 공영미디어 독립선언과 함께 이미 준비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거듭 논란이 되고 있는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이 신임 김의철 사장 재임 기간 중 성사되어 부디 KBS의 역사가 새롭게 쓰이기를 기대한다.

* 정인숙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35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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