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1980년 계엄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받았던 전태일 열사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가 41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딸인 전순옥 전 의원은 “전두환 씨가 살아있을 때 무죄 선고가 확정됐으면 좋았을 거다. 본인이 얼마나 무고한 사람의 삶을 뺏어갔는지, 한 번도 사과한 적 없이 판결난 게 아쉽다”고 밝혔다.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홍순욱 부장판사는 21일 계엄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던 이소선 여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홍 판사는 “1980년 5월 대학생들 시국 농성과 노동자들 집회에 참석한 행위는 시기와 동기, 목적, 대상, 수단, 결과 등에 비춰 볼 때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형법 20조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고 이소선 여사 (자료사진=KBS)

고 이소선 여사의 딸이자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전 의원은 22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어머니가 금속노조원 600명과 함께 근로자 복직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1980년 12월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군사재판을 받고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서울 구치소에 수감됐었다”고 설명했다.

전순옥 전 의원은 “어머니가 근로자 복직 구호를 외친 당시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노동자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노동자 인권은 말살된 상태에서 군부독재가 들어오면서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탄압 받았던 때”라며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그 속에 어떤 분노가 폭발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고, 금속노동자 중심으로 농성이 처음 열렸다”고 말했다.

이소선 여사는 1980년 5월 4일 고려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청계피복노조가 결성된 경위를 설명하고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 등을 주제로 연설했다. 5월 9일 서울 영등포구 노총 회관에서 금속노조원들과 “노동 3권을 보장하라, 민정을 이양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에 전두환 신군부는 불법 집회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이 여사를 계엄 포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 여사는 1980년 12월 6일 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며 6일 뒤 확정판결을 받았다.

전순옥 전 의원은 “군법 회의는 1심이 끝나고 2심을 열 수 없다. 2심 청구를 못 한 상태에서 바로 감옥으로 송치됐다"면서 "저희 측의 요청이 아닌 검찰 측의 요청으로 41년 만에 재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검찰은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서 정한 특별재심 조항에 근거해 재심을 청구했다. 검찰은 “1979년 12·12 군사반란 뒤 신군부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저지른 일련의 행위는 헌정 질서 파괴 범죄에 해당한다”며 “헌정 질서 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는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고 재심청구 이유를 설명했다.

21일 재판부는 검찰 의견을 수용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여사의 아들인 전태삼 씨는 판결 뒤 기자회견에서 “계엄군이 왜 어머니를 전국에 지명수배해서 감금하고 군사재판을 했는지에 대한 한마디 언급도 없이 1분여 만에 선고가 끝나 아쉽다”며 “5·18 계엄군이 전국 계엄령 포고령 1호로 어머니를 검거하고 수감해 군사재판을 한 역사적 만행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순옥 전 의원은 “1980년 5월 18일부터 11월 초까지 전국에 어머니에 대한 지명수배가 내려졌다. 어머니는 고려대학교 집회에서 어떻게 박정희 정권이 노동자들을 탄압했는지,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인데 군부 독재는 체포령을 내렸고, 어머니에게 지명수배가 내려진 6~7개월 동안 집안은 쑥대밭이었다”고 말했다.

전 전 의원은 “당시 전 서른 되기 직전이었고 여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한 지 얼마 안 됐다. 새벽 4시 저희 집에 군인들이 총을 들고 들어와 장롱 문을 열고 이불을 군홧발로 밟고 다니며 집을 홀딱 뒤집어놨다”면서 “당시 통근버스를 기다리던 동생을 승용차에 태워 까만 보자기로 얼굴을 씌우고 잡아갔다. 그날 저녁 중앙정보부에서 전화와서 너희 동생을 잡아놨으니 엄마 어딨냐고 부르라고 했고, 동생을 고문했다”고 말했다.

이소선 씨를 체포한 뒤에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전 전 의원은 “어머니가 체포된 뒤에 중앙정보부에서 전화와 ‘도망다니는 이들의 정보를 주면 어머니를 석방시키겠다. 아니면 너희 엄마는 죄가 많아 20년은 감옥에서 살아야 돼’라고 말했고, 전 ‘20년 동안 감옥에 갇힐 죄를 지은 거라면 제가 정보를 준다고 어머니를 석방하는 건 옳지 않은 게 아니냐. 알지도 못하지만 그렇게는 못 한다’고 말했다. 저희 어머니는 재판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전 전 의원은 “전두환 씨가 살아있을 때 무죄 선고가 확정됐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있다”며 “본인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야 한다. 얼마나 나쁜 짓으로 무고한 사람들의 삶을 뺏어갔는지, 사과 없이 판결이 난 게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올바른 판결이) 나온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학생이었던 4명의 민주운동가들의 재심이 남아있다”며 “수많은 이름 없는 노동자와 학생들이 감옥에 갇혀있고 수많은 고통을 당했다. 억울함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과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인식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 전 의원은 현재의 노동환경에 대해 “양대 노총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어느 정도 기득권이나 권리가 보장됐다고 보지만, 이보다 많은 수의 비조직화된 노동자들이 많다”며 “1970년대 봤던 노동 참상과 현재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별반 차이가 없다. 대기업에 직속고용이 안되고 하청 기업 관계이다 보니 인권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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