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까운 친구가 부친상을 당해서 서울까지 문상을 다녀왔다. 오래전 읽은 책의 내용 가운데 20대는 결혼식장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30대는 아이 돌잔치에서 그리고 40~50대는 장례식장에서 친구들을 만난다는 말이 있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조문을 마친 후 자연스럽게 동창회가 되었다.

지방에서 올라간 나는 그렇다 치고 서울에서 사는 친구들도 자주 만나지 못했는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밀린 얘기를 나누기에 바빴다. 친구들의 직업군을 보자면 교사가 단연 많았는데, 그들은 “3월에 진짜 끔찍했지?” “나는 죽는 줄 알았다”며 마치 사선에서 돌아온 장병들처럼 잔인한 3월을 무사히 넘긴 것을 공훈처럼 챙겼다. 신학기라서 교사가 바쁜건 당연하다 싶었는데, 가까운 친구들이 사선을 넘나들 정도로 숨 가쁘게 살고 있는 건 몰랐었다. 하기야 그들이 개편을 앞둔 내 처지를 알기나 할까.

잔인한 봄날, 방송사 개편 속 '얼굴 하나'

방송사마다 봄 개편이 한창이다. 개편을 앞두고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일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감기처럼 몸에 익을 법도 하건만, 프로그램 개편이 교사 친구들의 ‘끔찍한 신학기’처럼 계절 앓이를 한다. 지방 방송사는 본사의 편성 방침에 따라 큰 변화를 겪을 수도 있고, 자체 방송의 경우라도 기획의도에 따라 변화의 폭이 그때 그때 다르므로 개편 후 한 3~4개월 지나서 정착될 무렵부터 개편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형적으로 겪는 변화의 양상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개편을 앞두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미안하게도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주 잠깐씩 방송국에 나와 작업을 했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친해질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중이다. 일테면 명함첩에서 찾아야 할 사람이거나 두어사람 거쳐서 연락처를 구할 정도만큼의 사이였다고나 할까.

▲ 김사은 PD가 제작하는 원음방송 라디오프로그램 '원음의 소리' 홈페이지

그러니까 그 친구는 성우지망생이었다. 내가 모 예술대학에 출강했을 때 한 학기정도 잠깐 얼굴을 마주쳤을 수도 있는데 솔직히 기억에 없는, 성실하기는 했으나 평범한 학생이었을 것이다. 우리 방송국에서도 짧은 스팟이나 광고를 녹음하러 오곤 했는데,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봄 개편을 앞두고 그 친구를 섭외할까 하여 연락처를 수소문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너무 황당하였다.

“그 친구…… 작년 가을에 세상을 떠났대요”
“아니, 작년 가을까지 박피디랑 작업했잖아”
“간암이었대요. 저희들도 몰랐어요. 몇 년간 소리없이 투병했나봐요.”

제자들을 통해 들려온 소식도 똑 같았다.

“그 오빠가요, 방송을 되게 하고 싶어 했거든요. 투병하면서도 방송은 끝까지 하고 싶어했어요.”
“그럼, 학교 다닐 때도 이미 병을 앓고 있었단 말야?”
“예. 그런가봐요. 저희들도 오빠가 죽고 난 후에 그 사실을 알았어요”

그렇게 방송을 하고 싶어하던 청년은 스물여덟을 일기로 조용히 잊혀져갔다. 그는 조용히 세상을 다녀갔지만 나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그는 대학에 다닐 때도 병을 앓고 있었고 방송 일을 할 때도 회생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방송국을 드나들 때 편안하고 맑은 표정이었고 마이크 앞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그와 두어번 스팟을 녹음했을 때도 PD의 의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겸손했고 성실했던 그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뭔가 울컥 솟구치는 게 있었다. 혹시 그 친구에게 상처를 준 일은 없었는가, 그가 방송국 한 구석에서 불편하게 있지는 않았을까, 방송하면서 불쾌하게 한 일은 없었을까? 만일 나로 인해 그 친구가 가슴 한 구석에 원망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면 나는 정말 무서운 죄를 지었을 것이다. 가슴 한 구석에 캥기는 일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 친구의 명복을 빌었다.

방송국의 수많은 인연들 "머무는 동안 상처주지 말자"

방송국을 스쳐가는 인연이 참으로 많다. 메인 MC, 요일별 출연자들, 리포터, 작가 등 수많은 방송 스탭이나 또는 방송 지망자들은 방송을 하고 싶어서 방송국에 왔다가 어떤 이는 남고 어떤 이는 떠난다. 기획의도와 진행자가 딱 맞아 떨어져서 프로그램이 뜨면 다행이지만 시류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프로그램을 창출해야 할 수도 있고 진행자 스스로 프로그램을 떠날 때도 있다. 고비 고비 만남과 헤어짐이 모두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서로 인연을 잘 맺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책임자로서 맺고 끊음을 결단해야 하는 아픔도 크다.

다시 개편을 앞두고 ‘너무나 방송을 하고 싶어했던’ 스물여덟 청년의 짧은 방송사를 돌아보며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의 마음을 비교해본다. 가는 사람, 아름다운 뒷모습으로 절차탁마하여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길 바라고, 오는 사람 앞 날이 창창하여 방송사에 도움되고 개인적으로도 승승장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르기를, 오는 사람 누구든 그가 스튜디오에 머무는 동안 상처주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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