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청암 송건호 선생의 20주기를 맞아, 언론 불신 환경을 해소하기 위한 공론장이 열렸다. 언론인들은 ‘역사의식’과 ‘사회과학적 의식’에 기반한 보도를 통해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청암 송건호 선생은 1953년 대한통신사 외신기자로 언론 생활을 시작했다. 197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한 그는 광고탄압을 못이긴 동아일보가 기자들의 대량 해직을 예고하자 책임을 느끼고 사임했다. 그는 1984년 해직기자들과 함께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결성하고 초대 의장을 지냈으며 1985년 기관지 월간 <말>을 창간했다. 그는 1988년 한겨레신문 초대 사장 및 회장을 역임했다. 2001년 그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당시 얻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청암언론문화재단, 민주언론시민연합, 한겨레는 1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청암 송건호 선생 20주기 세미나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박용규 상지대 미디어광고영상교수는 “송건호의 삶을 되돌아보며 떠올랐던 단어가 ‘지행합일(知行合一)'과 '일이관지(一以貫之)'”라며 “왕양명은 지행합일은 ‘사욕(私慾)’ 때문에 안 된다고 설명한다. 권력에 대한 욕망 같은 사욕은 지금 보수언론뿐 아니라 진보언론인에게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송건호 선생처럼 일이관지와 지행합일로 사는 것은 어렵지만,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청암 송건호 선생 20주기 세미나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 세미나에서 발제중인 방용규 상지대 교수

박 교수는 “매체 환경의 변화 속에 언론 불신을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은 없지만 기성 언론이 송건호 선생의 본질적인 가치 중 일부라도 실천하고자 한다면 (언론 불신) 위기 극복의 단서가 있을 것”이라며 “최소한 기성 언론인들이 권력을 향한 욕망이나 이익에 대한 집착을 되돌아보고 역사 인식과 사회과학적 의식을 쌓기 위한 기본적인 노력이 언론 불신 극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기본적으로 언론에 대한 송건호 사상은 언론의 독립을 주장하며, 민주언론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며 “송건호 선생은 사상과 윤리가 부재한 기술자화된 언론인을 비판했다. 송건호 선생은 언론인이 기능화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사의식’과 ‘사회과학적 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권태호 한겨레 저널리즘 실장은 “객관 보도만을 얘기하면서 옳고 그름을 묻지 않고 본 것만 쓰는 보도는 언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송건호 선생은 ‘진실을 전달하려면 고도의 주관적 보도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관적 보도는 자기 맘대로 쓰라는 게 아니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실장은 “송건호 선생은 독립을 얘기했다”며 “지금은 물리적인 권력이 압제적이지는 않지만 많은 가치 중에 어떤 걸 택해야 하는 혼란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모든 정치·사회 세력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실장은 “어떤 특정 세력에 영합하지 않더라도 추구하는 가치가 없다면 언론의 역할은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며 “언론이 무엇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가치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 가치에 충실하다면 언론인의 최소한의 역할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권 실장은 “100번의 칼럼을 쓰는 것보다 사실관계가 실체적인 진실을 전하는, 명확한 한 번의 보도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며 “기자들은 주장하기보다 추구하는 가치를 보여주는 기사를 쓰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내가 옳다고 판단해 취재한 것이 틀릴 수 있다는 여지를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청암 송건호 선생 20주기 세미나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 세미나 포스터

박상규 셜록 대표는 “최근 뉴미디어에서 몸담고 새로운 도전했던 젊은 기자들은 기존의 매체로 이직을 많이 한다”며 “언론 불신 시대에서 비판의 중심에 있던 매체는 기존의 매체인데, ‘왜 젊은 기자들은 다시 돌아갈까’하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2000년대에 들어와 언론 컨퍼런스들이 많이 개최됐고, 내용을 들여다보면 많은 문제 인식이 담겨 있다. 어느 때보다 활발한 논의가 시작됐지만 공허함을 느꼈다”며 “모두 변화를 바라고 있지만, 정작 송건호 선생이 얘기했던 ‘역사인식’과 ‘사회과학적 의식’을 갖는 언론인, 언론의 사회적 책임 등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황우석 사태’, ‘국정농단’, ‘고발사주’ 등의 보도들은 새로운 방식을 잘 도입해서 박수와 환호를 받았던 것이 아니라 언론의 기본 역할을 잘했기 때문”이라며 “TV, 라디오, OTT가 도입돼도 언론의 기본 역할은 달라지지 않았다. 독자들은 언론인이 힘들게 취재해 숨겨진 진실을 찾고, 사회에 영향을 줬던 보도에 박수를 보냈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새로운 걸 좇느라 잃어버렸던 정신과 원칙을 바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논의해야 할 것은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언론이 지켜야 할 시대 정신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1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청암 송건호 선생 20주기 세미나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 세미나

언론 불신을 해결하기 위해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언론 전체가 희화화되고 있는 현실은 (언론 불신) 문제를 풀기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며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오늘의 언론 문제 중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 PD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정치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대통령도 두 차례나 약속했었다”면서 “그런 약속이 헌신짝처럼 버려졌지만, 언론 운동진영에서조차 이런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 PD는 “이런 모습들은 언론 전체를 희화화시켰고, 국민들에게 공영방송은 늘 흔들리는 모습으로 비쳤다”며 “오늘날의 언론 불신 현실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밝혔다. 최 PD는 “오늘날에는 언론운동 진영과 정치세력이 동일시되는 것 같다”며 “정치화되다 보니 비판의식이 약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언론사 채용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로 한혜정 한성대신문 부장기자는 “일부 언론사에서 NCS(국가직무능력표준) 방식의 문제를 출제하기 시작했다”며 “이 방식으로 송건호 선생이 이야기하고 있는 폭넓은 '역사의식'과 '사회과학적 의식'의 언론인을 채용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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