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국회는 사회적 합의를 우리한테 맡겨 놨습니까? 대한민국은 사회적 합의로 세웠습니까? 개신교는 사회적 합의하고 교회 세웠습니까? 우리는 사회적 합의하고 태어나고, 사랑하고, 일하고, 밥먹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십시오"

100일간의 국회 정기회가 종료되는 9일, 차별금지법(평등법) 연내 제정을 촉구해 온 시민들이 법안을 단 한차례도 논의하지 않은 거대양당을 규탄하기 위해 국회 앞에 섰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사회적 합의, 성소수자 차별, 기업 자유 등을 내세우며 차별금지법을 방치했다고 질타했다.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평등에 합의한 사회, 평등을 외면한 국회' 기자회견 (사진=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시민사회는 이날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들은 100일 동안 평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끊임없이 드러내고 확인했다. 그러나 이 모든 행동에도 불구하고 정기국회가 한 유일한 행위는 국민동의 청원 심사기한을 만장일치로 미룬 것"이라고 비판했다.

21대 국회에서 총 4건의 차별금지법이 발의됐지만 한 차례의 심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제도를 통해 10만 명의 동의를 얻은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로 회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법사위는 지난 달 9일 만장일치로 차별금지법 심사기한을 21대 국회 마지막날인 2024년 5월 29일로 연장했다.

국회 정기회 100일 동안 시민사회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30일 동안의 도보행진, 13일의 온라인 농성, 30km 오체투지와 1인 시위, 각계각층의 릴레이 기자회견과 성명 발표, 국회 앞 24시간 농성 등을 진행했다.

지난달 29일 한겨레 발표한 '대선 D-100' 여론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7명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찬성(71.2%)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정치 성향을 진보라고 밝힌 응답자의 84.6%, 보수라고 답한 응답자의 62%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찬성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차별금지법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얘기다.(전국 18세 이상 남녀 1027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날 기자회견에서 밍갱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는 "지난 19대 대선 당시 보편적 인권을 주장하고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크나큰 분노로 자리잡은 한 마디는 문재인 대통령의 '나중에'였다"며 "이 한 마디를 잇는 20대 대선후보의 얼토당토 않는 발언이 있었다. 바로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다했죠?' 발언"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지난 7일 강연을 위해 서울대를 방문했다. 현장에서 성소수자 청년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호소하며 입장을 요구하자 이 후보는 "다했죠?"라고 말한 뒤 강연실로 곧장 이동했다. 밍갱 활동가는 "우리는 '나중에' 이후 오는 것은 차별금지법 제정이 아니라 '다했죠'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밍갱 활동가는 여성 노동자에게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면접과정에서 이뤄진 성차별적 발언에 대해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불이익 입증을 어렵다는 이유로 불기소를 결정하고 있고, 직장 내 성폭력 문제는 법적 '노동자' 지위가 없으면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차별금지법은 성차별적 괴롭힘을 효과적으로 규율할 수 있게 할 것"이라며 "우리는 더이상 '나중에'에 속지 않는다"고 했다.

한겨레 11월 29일 <10명중 7명 “차별금지법 찬성”…“종부세 유지·강화” 52%-“완화” 41%> 갈무리

소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는 "사회적 합의와 시간이 필요하다느니, '다했냐'면서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 그 '나중에' 타령이 전부 다 차별"이라며 "HIV 감염인,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 이루 말하지 못할 수많은 절실한 외침을 외면하는 것, 그게 차별과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소주 활동가는 "민주당은 강령을 안 지키나. 국민의힘은 윤리강령을 왜 만들었냐"고 따져 물었다. 민주당 강령에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고 특권과 차별, 그리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안전을 보장하며, 어떠한 차이도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든다'고 명시돼 있다. 국민의힘 윤리강령에는 '우리는 인권을 보장하고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를 위해 헌신한다'고 돼 있다.

고운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는 "사실 이재명 후보가 맞는 말을 했다. 우리는 정말 다 했다"며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정말 다 하고 있으니 국회는 일을 하라. 지금까지 사람들이 소리치고, 걷고, 밤을 지새우는 동안 국회는 뭐를 했냐"고 따져 물었다.

고운 활동가는 "2021년의 대선 후보라면 '모두를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더 이상 미루지 않고 모든 이의 존재가 합의의 대상으로 치부되지 않도록 먼저 나서서 노력하겠다' 정도의 대답은 해야하는 것 아닌가"라며 "우리는 다 했다. 이제 국회도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출생등록을 할 수 없어 학교에 갈 수 없는 아동이 있다면 우리에게 아직 교육권은 없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고졸이거나 특정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고용에서 차별당하고 있다면 우리에겐 아직 노동권이 없는 것"이라며 "인권을 인권이게 하는 출발선이 차별금지법"이라고 강조했다.

미류 활동가는 국민의힘을 향해 "여당 탓만 하면 정치하기 편한가. 하지만 인권에 대한 책무는 야당이라고 면제될 수 없다"며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국민들 상당수도 차별금지법을 찬성한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민주당을 향해서는 "다수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이재명표 입법'이나 하겠다며 임시회를 소집하는 것이 우습지도 않는가"라며 "대한민국표 입법, 인권표 입법도 아니고, 차별금지법이 빠져 있는 이 상황을 국민들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정의당은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논의를 위한 임시회 소집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이은주 정의당 원내수석 부대표는 "국민 80%가 동의하는 차별금지법을 연내 제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가지고 임시회 소집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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