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차기 대선이 가까워오면서 기존 세 개로 쪼개진 미디어 부처의 통합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방송·통신 융합환경과 글로벌 OTT 국내 진입에 따른 '산업진흥 중심 ICT 통합기구' 논의가 주를 이루지만, 이는 방송·영상 미디어의 가치와 비전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통합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가주도형 행정론과 산업논리에 기반한 정보통신 기술분야 중심의 미디어 거버넌스 통합은 국내 방송·영상 미디어 산업의 진흥을 이끌어내지 못할 뿐더러 미디어 공공성 전반의 후퇴를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전문적인 연구와 조사를 통해 미디어정책 거버넌스와 방향을 설정하는 작업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8일 한국미디어정책학회와 민주당 조승래·한준호, 국민의힘 김영식·황보승희 의원 주최로 열린 '방송혁신기구 설립·운용 방안' 토론회 (사진=한국방송협회)

"ICT 중심 통합? 신기술만능주의식 논의"

8일 한국미디어정책학회와 민주당 조승래·한준호, 국민의힘 김영식·황보승희 의원이 공동 주최한 '방송혁신기구 설립·운용 방안'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현재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 논의가 '미디어'를 고민하지 않았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홍 교수는 "지금 진행되는 미디어 거버넌스 통합논의는 신기술집착적, 국가중심적 진흥 논의로 ICT 이름만 붙이면 다 묶는 것 같다"며 미디어 거버넌스 통합이 필요한 이유를 사실상 망각한 논의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홍 교수는 그동안 미디어 학계에서 논의된 거버넌스 통합 필요성을 ▲미디어 책무성(자율성+설명책임)을 기반으로 한 공공성 접근 ▲국가중심 규제 논리 탈피를 통한 사업자의 혁신과 공적가치 유인 ▲포괄적 미디어 규제체계 ▲공·민영 서비스의 지위·책무 분리 ▲공정경쟁 중심의 사후규제 체계 마련 등으로 설명했다.

홍 교수는 "이런 부분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그냥 산업육성 측면에서, ICT 통신기술 차원에서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결국 플랫폼 사업자 국제 진출이나 통신기반 신산업 경쟁력을 위한 '끼워팔기 상품' 정도로 (거버넌스 개편을)취급하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이어 홍 교수는 "대부분 통합 정책의 목표를 'ICT 산업을 국가발전의 동력으로'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미래창조과학부 출범 때 많이 쓰던 표현"이라며 "미디어 거버넌스 통합의 최종 목적이 과연 그런 것인지 상당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진흥정책에 대한 접근 자체를 달리하고, 미디어의 공적 가치와 국내 콘텐츠 산업 기반 보호를 고민하는 방향의 거버넌스 통합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진흥이 곧 산업 진흥이란 논리 아래 국가가 주도하는 '발전행정론'적 관점에서 탈피하고 여러 이해관계자를 조정, 이들을 협동적으로 조직해 시민에게 봉사하도록 하는 '신공공서비스 행정론'적 관점의 접근을 강조했다.

홍 교수는 "미디어의 증가와 온라인 미디어의 등장은 새로운 공론장이 생겨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현실은 공론장의 확대가 아니라 각론장의 각축"이라며 행정이 미디어 공공성의 공간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접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 기여와 같은 미디어의 공적 가치는 잘 안보이고, 산업적 가치는 구체적이다. 그러나 그동안 공영방송이 수행한 역할은 앞으로도 필요하다"며 "지속적인 공공 가치의 확인과 발굴 노력이 필요한 것인데 우리는 공영방송이 있어왔으니까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산업논리에서 벗어나 비전을 갖춘 미디어 거버넌스 통합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국미디어정책학회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예를 들어 글로벌 OTT 산업의 국내진입을 기점으로 기술발전과 산업진흥 논리의 경쟁만 고민한다면 지역방송의 가치나 국내 콘텐츠 산업 기반은 어떻게 되냐는 게 홍 교수의 문제의식이다.

지난해 지역MBC 16개사는 501억 원의 적자를, 지역민방은 41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향후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지역방송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역분권, 지역권력 감시와 시민참여 등의 필요성은 여전하다. 그러나 시장경쟁의 논리로 지역방송이 알아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스스로 가치를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라는 설명이다.

국내 콘텐츠 기반 역시 흔들릴 수 있다. 홍 교수는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 글로벌 OTT 국내 진입으로 국내 제작사의 물적 기반이 개선되었다는 시각이 있지만 이는 상위 소수 제작사로 자본이 몰리는 현실을 외면한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OTT 사업자 진입은 주로 드라마 분야에 한정되는데, 이를 기준으로 볼 때 상위 3개 제작사가 드라마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제작기반 전반이 개선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느냐는 얘기다.

2017년 기준으로 전체 외주제작사는 631개다. 그 중 237개는 연매출 1억 원 미만, 2015개는 1~10억 원 수준이다. 154개가 10억~100억 원, 35개가 100억 원 이상 연매출을 올렸다.

홍 교수는 "글로벌 OTT는 '체리피커'(Cherry Picker)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이라는 인재를 넷플릭스가 발굴했다고 하지만, 국내에서 가능성 있게 10년 동안 잘 준비한 체리를 넷플릭스가 따먹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라며 "제작시스템에 있어서도 기획과 제작을 분리하지 않고 감독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국적 제작 특성을 기획PD를 강조하는 글로벌 제작시스템이 약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적 특성을 잃지 않도록 콘텐츠 산업 제작 기반을 강화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홍 교수는 "ICT 중심으로 디바이스 영역까지 거버넌스가 통합되면 산업규모로만 볼 때 통신분야와 방송분야는 규모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며 "과연 방송·영상에 대한 충분한 관심과 이해가 통합 이후에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을지 굉장히 우려된다"고 했다.

글로벌 OTT (사진=연합뉴스)

신산업 등장하면 '그때그때마다'…"중장기적 비전 부재가 더 문제"

홍 교수는 영국과 프랑스의 미디어 정책 추진을 사례로 들며 "뭐가 발전인지 모르는데 일단 지원하겠다고 한다. 중장기적으로 방송·영상분야 발전 비전이 부재한 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국은 방송·영산산업에 대해 '다원주의'와 '다양성'을 진흥정책의 원칙으로 두고 있다. 영국 문화미디어체육부는(DCMS, (Department for Culture, Media and Sport)는 산하에 창의산업위원회 등 42개 관련조직을 통해 정책을 추진한다. 영국의 방송통신규제기구 오프콤(OFCOM)은 공공미디어서비스 보고서, 공공서비스 확장을 위한 의제발굴 보고서, 규제정책 평가, 방송영상 산업에 대한 시장영향력 조사, R&D·교육분야 투자 등을 이행하고 있다.

일례로 올해 오프콤(Ofcom)은 영국 정부에 공영미디어 중심의 미디어법 개정을 주문했다. 오프콤은 공공서비스미디어(PSM, public service media)의 미래를 예측하는 보고서인 '스몰스크린:빅디베이트(Small Screen:Big Debate)'를 발간해 ▲공영방송에서 PSM으로 전환 ▲모든 주요 플랫폼에서 라이브·주문형 PSM의 중요성 확보 ▲PSM 노출 증대를 위한 제공업체·플랫폼의 역할 등을 강조했다. 해당 보고서가 만들어지는데 전문가, 100명 이상의 이해관계자, 4000명 이상의 설문응답자 등의 참여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오프콤의 전국 규모 포럼 '스몰스크린 : 빅디베이트(Small Screen : Big Debate)'는 <공공 서비스 미디어의 미래에 관한 대정부 제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프랑스는 문화부 산하에 CNC(국립 영화 및 애니메이션 센터)를 두고 영상미디어 전반에 대한 지원사업과 법안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디어정책을 연구하고 의제를 발굴하는 행정부 내 '싱크탱크'인 셈이다. 홍 교수 설명에 따르면 CNC는 지원책을 '자동지원'과 '선별지원'으로 구분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제작사에는 자동지원을, 신진 작가와 독립제작사 등에 선별지원을 통해 '나눠먹기식'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론자인 이헌율 고려대 교수는 "앞으로 있어야 할 방송비전을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많은 지원정책을 봐도 콘텐츠 영역에 케이스바이케이스로 지엽적 지원이 이뤄졌다"며 "언제나 일방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이다. 미디어는 융합시대를 맞았고, 다른 사회영역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이런 점을 감안해 거버넌스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대호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정책기획과장은 "거버넌스 논의가 이어질텐데, 논의 과정에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며 "그때그때 상황에 필요한 제도와 기구를 도입하다보니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때마다 정부부처 내, 사회에서 갈등이 생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편적·통합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장 과장은 "미디어정책 결정이라는 건 산업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며 "결정 과정이 얼마나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이뤄지는지가 정책의 정당성을 결정한다"고 덧붙였다.

장대호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정책기획과장(왼쪽), 주정민 전남대 교수 (한국미디어정책학회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주정민 전남대 교수는 거버넌스 개편 논의 이전에 방송·영상 미디어 정책의 핵심과제와 우선순위부터 정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주 교수는 ▲글로벌 OTT 확산에 대한 대응 ▲한류콘텐츠 육성 ▲방송의 공적영역과 공공성 확보 등으로 우선순위를 제시했다.

주 교수는 "우리는 OTT 규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역외적용 논란 등으로 불가능했다. OTT 육성 대응도 규모의 경제, 글로벌 자본 작동으로 한계를 가져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라며 "지상파·PP, 유료방송 플랫폼이 담당해 온 방송·영상 미디어 생태계의 활성화 측면에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주 교수는 "실시간 방송은 양질의 정보, 공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 민주주의에 기여하고 있다. 유튜브 가짜뉴스 같은 것들을 검열해 퇴출한다고 되는가?"라며 "전통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확산시키고 그 영향력을 커지게 하는 쪽으로 정책이 가야한다. 미디어 생태계가 붕괴되면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나 인식이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수단이 목적을 엎을 순 없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정보통신방송미디어 수석전문위원은 "예를 들어 고속도로에 차가 달리고 있다. 고속도로를 까는 건 국토교통부, 차에 대한 건 산업부 소관"이라면서 "수단이 목적을 엎을 수 없다. IPTV를 생각해보면 목적은 결국 '영상'이고, IP는 영상을 위한 전송수단에 불과하다. 인터넷으로 전송한다고 이걸 묶어 ICT와 미디어정책이 같이 가는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건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안 수석전문위원은 "우리는 디지털 경제시대에 살고 있고, 기반은 정보통신기술이다. 5G,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양자과학이 다 포함돼 있다"며 "이를 활성화해 모든 산업에 융복합화시키는 것인데 여기에 미디어만 그냥 붙여서 한다는 건 결국 한 지붕 두 가족 하겠단 얘기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정보통신방송미디어 수석전문위원 (한국미디어정책학회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안 수석전문위원은 이날 자신이 구상 중인 미디어거버넌스 개편안을 설명했다. 원칙은 방송과 정보통신에 대한 행정영역의 분리다. 방통위의 방송진흥 정책,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미디어 정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진흥정책관 소관 전체 업무를 하나로 묶어 신설부처 '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를 설치한다. 방통위의 이용자보호·경쟁관계·시장조사 업무 중 통신 관련 업무, 통신규제 업무 등은 과기정통부로 옮긴다. OTT 등 방송·통신 융합 영상콘텐츠 관련 이용자보호 업무는 방통위에 둔다. 방통위의 명칭은 '미디어위원회'로 변경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 업무를 과기정통부로 옮긴다. 방송심의 부분은 미디어위원회 내 행정위원회 형태의 심의기구를 별도로 신설한다. 통신심의는 과기정통부 내에 윤리위원회를 꾸려 담당하게 한다.

현재 각 부처에 분산돼 있는 미디어 공공기관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부 산하에 일부 통합을 거쳐 두게 된다. 콘텐츠 산업 지원 부문은 콘텐츠진흥원과 전파진흥원을 통합해 '미디어콘텐츠진흥원'으로, 광고 영역은 언론진흥재단과 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를 통합해 '언론진흥광고공사'를 둔다. 방송·영상 미디어정책 전반에 대한 통합적 전문연구기관인 '방송영상정책연구원'을 신설한다는 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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