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당원게시판을 폐쇄, 내년부터 실명제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선후보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 등이 올라오자 이뤄진 조치다. 지난 대선에서 인터넷 실명제 폐지를 공약했던 민주당이 제도적으로 위헌 판정이 난 인터넷실명제를 자당 홈페이지 적용했다. 국회에 인터넷준실명제 법안이 발의돼 관련 상임위원회의 논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상황이다.

당내 지지자 갈등 이유로 게시판 닫아

민주당은 6일 당 홈페이지 권리당원 게시판을 연말까지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고용진 민주당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비공개 최고위원회 후 기자들과 만나 "금년 말까지는 시스템을 정비하고 책임감 있는 실명 형태로 건전한 비판의 장, 공론의 장이 되도록 운영하겠다"며 내년 1월 1일 당원게시판을 다시 연다고 밝혔다.

고 대변인은 "지금 권리당원 게시판은 완전히 공론장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일종의 말의 배설구 같이 돼 있다"며 "서로 욕설을 뱉고 후보에게 사퇴하라고 하는 게 현재 당에 도움이 안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앞서 지난 1일 민주당은 권리당원게시판 운영 잠정 중단을 결정했다. 민주당은 "지난 경선 기간동안 당원게시판은 당원 간 분쟁 자중, 분위기 환기를 위해 '잠시 멈춤' 기간을 운영한 바 있다. 해당 조치 이후 문제가 개선되는 것으로 보였으나, 최근 게시판 내 당원간의 분쟁이 또 다시 과열되고 있다"며 "갈수록 과열되는 분쟁과 추가로 발생하는 법적 갈등 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고 공지했다.

민주당 선대위 총괄특보단장인 안민석 의원은 지난 1일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새아침' 인터뷰에서 "반이재명분들이 그동안 당 홈페이지 게시판 상당 부분 지배해왔다"며 "이분들이 이재명 후보에 대해 거칠게 공격하니까 이건 도움이 안 되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일단 폐쇄한 상태"라고 말했다. 지난 8월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지지자 갈등이 고조되자 이틀간 당원게시판이 폐쇄된 바 있다.

민주당 5선 중진 이상민 의원은 6일 페이스북에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내년부터라니, 그것도 실명제로?"라며 "참 기가 막힐 일이다. 표현의 자유가 최대한 발현되어야 할 당원게시판에 왜 실명제로 통제하려고 하나"라고 공개 비판에 나섰다. 이 의원은 "지도부의 결정은 민주적 가치를 얕잡아 보는 것이다. 매우 퇴행적"이라며 "하루빨리 무조건 재개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오른쪽)와 윤호중 원내대표, 의원들이 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7년 민주당 대선 공약 '실명제 완전 폐지'… "실명제·폐쇄, 극단적 방법 택해야 했나"

지난 2017년 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온라인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인터넷 실명제 완전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문 후보 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에 공직선거법·게임산업법 등 개별법에 규정된 인터넷 실명제 규정을 없애겠다는 내용이 있다. 지난 2012년 인터넷실명제, 즉 '본인확인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있었지만 개별법에서는 규제조항이 잔존해 있는 상태였다.

지난 1월 헌재는 선거운동 기간 중 언론사 홈페이지 등에 정당이나 후보자 관련 글을 올릴 때 실명을 확인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조항(제82조의6)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정치적 의사표현이 가장 긴요한 선거운동 기간 중 인터넷 언론사 홈페이지 게시판 등 이용자로 하여금 실명확인을 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익명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했다.

이어 헌재는 정치적 익명표현을 규제할 경우 정치적 보복의 우려 때문에 일반 국민이 자기검열 아래 비판적 표현을 자제하게 된다며 "인터넷이 형성한 '사상의 자유시장'에서의 다양한 의견 교환을 억제하는 것이고, 국민의 의사표현 자체가 위축될 수 있으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자유로운 여론 형성이 방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권리당원게시판은 이름,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 인증 등의 절차를 거쳐 가입해야만 접속할 수 있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한국의 주요 포털 등이 간접적인 본인확인 절차를 거친 후 이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사실상 '준실명제'가 시행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또한 이번 당원게시판 실명제 조치에 대해 민주당이 자당 홈페이지 운영방식을 결정하는 건 자유이지만 정치적 유불리를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한 건 유감이라는 전문가 지적이 나온다. 사단법인 '오픈넷'의 손지원 변호사는 7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실명제를 운영해 허위사실 유포를 막고,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는 목적이겠지만 소수 권리당원의 목소리가 위축될 수 있다"며 "다른 당원들에게 공격을 받는다거나, 정치적 보복을 두려워하게되는 부작용이 있다"고 말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선거에 도움되지 않는 게시물이 올라오니 그런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본다. 어쨌든 본인들이 운영하는 게시판에 어떤 정책을 적용할 것인지는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면서도 "대선을 앞두고 있고, 당원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최대한 보장할 필요가 있다면 실명제 말고 방법이 없는 것인가 굉장히 아쉽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다양한 방법과 이용규칙이 있을 수 있는데 실명제, 그에 앞선 폐쇄 같은 것들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결정이다. 통제하는 방식으로 그런 결정을 했다"며 "의사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건강한 토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술적 조치, 게시판 운영 전담자의 관리와 요청 등 고민할 수 있는 여러 조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손 변호사와 김 위원장은 추후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민주당의 기조가 바뀌는 것 아닌지 우려했다.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이 발의한 인터넷 준실명제 법안은 지난 9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를 통과해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손 변호사는 "민주당조차 이런 식으로 당원게시판을 운영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면, 앞으로 인터넷 실명제 기조 자체가 바뀔 수 있다"며 "실명제를 지지하고 표현의 자유 병폐를 막는다는 식으로 변한다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국회에서 인터넷 실명제를 확대하려는 얘기가 있었다"며 "이번 결정이 법과 제도에 대한 민주당 태도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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