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미국 육군 소령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는 우주의 지적 생명체를 찾는 ‘리마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실종된 아버지 클리포드(토미 리 존스)를 영웅으로 생각하고 그를 따라 우주비행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먼 우주에서 날아온 에너지파에 의해 지구의 전기기반 시설이 파괴된다. ‘써지’로 불리는 이 현상은 클리포드가 실종된 해왕성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고, 로이는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우주사령부의 명령을 받아 우주로 떠난다.

써지 현상으로 파괴된 우주정거장에서 추락하는 로이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오프닝과 달리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애드 아스트라>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작품이 아니다. 영화사에 차곡차곡 누적된 명작들의 유물을 발굴하고 갈고 닦아 새롭게 빛을 더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새로움에 대한 강박은 때로 소재주의 함정으로 작품을 끌고 가기도 하는데, 명작의 재조합에서 오는 독특하고 완성도 높은 고전미가 오히려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일단 천문학적 스케일의 야심 찬 모험이라는 스토리 진행의 측면에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지구에서 달, 목성으로 향하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여정은 지구를 떠나 달과 화성을 지나 해왕성으로 향하는 <애드 아스트라>의 궤도와 맞닿아있다. 우주에서 생각지 못한 사고로 시작해 관계성을 통한 존재론적 고찰로 이어지는 주제 의식은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의 중력권 안에 들어간다. 우주 영화를 제외한다면 특별한 임무를 받고 미지의 장소로 향한다는 점에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도 빼놓을 순 없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 스틸 이미지

뛰어넘기(Beyond)가 아니라 향하는(Toward) 우주여행

<애드 아스트라>가 앞선 영화들과 다른 것은 방향성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지구에서 우주로, <그래비티>는 우주에서 지구로 향한다. 로이만 지구를 떠나 지구로 돌아온다. 이 방향성의 차이는 단순히 출발점과 도착점이 어디냐, 편도냐 왕복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제 의식의 차이로 이어진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미스테리한 구조물인 모노리스와의 접촉을 통해 한계를 뛰어넘기(beyond) 위한 여행이다. 이때의 한계는 특정 개체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의 한계다. 개인사 등이 일체 배제되고 목성으로 향하는 임무를 완수하려는 수행자의 모습에 가까운 캐릭터들도 이런 연출 방향의 연장선이다.

반면 <애드 아스트라>는 제목을 철저히 따른다. 로마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쓴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d)>의 구절 'sic itur ad astra(별들을 향해 나아가라)' 또는 서양속담 Per aspera ad astra'(역경을 헤치고 별을 향하여)처럼 별을 향하는(toward) 여행이다. 이때 로이가 향하는 별은 표면상은 해왕성이지만 실제로는 그의 내면에서 찾지 못한 혹은 혹은 숨겨놓은 어떤 별이다.

해왕성이자 로이의 별로 먼저 도착한 사람은 당연하게도 로이의 아버지인 클리포드다. 부자 관계라서가 아니라 둘은 과정보다 목적을 우선한다는 점에서 무척 닮았다. 로이는 달에서 화성으로 향하는 중 조난 신호를 듣는다. 당연히 구조를 하러 가자는 선장과 달리 로이는 그냥 무시하자고 말한다. 또한, 화성에서 해왕성으로 향하는 로켓을 탈취하기 위해 로이는 승무원들을 살해한다. 로이가 의도를 갖고 살인을 하진 않았지만, 지적생명체 탐구를 위해 동료들을 살해한 클리포드의 행적과 정확히 일치한다.

해왕성으로 향하는 비밀임무를 받고 도착까지 변수를 없애야 한다는 명분도 있겠지만 로이 역시 애초에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를 느끼는 사람이다. 늘 훈련 중이라며 아내인 이브(리브 타일러)를 방치하다시피하고, 추락사고가 벌어진 시작 장면의 우주정거장에서 “여기 있으면 편안하다. 우주가 나의 공간”이라고 말할 정도로 관계에 무관심하다. 다수의 사람과 있을 때도 눈은 늘 출구를 바라본다는 로이가 유일하게 진심을 털어놓는 대상은 심리상태를 감정하기 위한 컴퓨터뿐이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 스틸 이미지

클리포드도 다르지 않다. 해왕성까지 온 아들에게 “난 아내에게도 너에게도 관심이 없다”고 무심히 고백하고, 무한한 우주를 놔두고 지구에 처박혀 인생을 낭비한다며 가족을 버리고 먼저 해왕성에 도착한 그가 발견한 건 무(無)였다. 본인은 신의 일을 하고 있다며 인간은 불가능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16년 동안 탐사를 해도 외계에서 생명체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렇게 모두와의 관계를 끊고 맹목(盲目)적으로 우주탐사에 몰두한 클리포드는 결국 시력을 잃은 채 지구에 크나큰 위협만 가하는 불필요한 존재가 된다.

마지막으로 자식 된 도리를 하려는 걸까. 로이는 이런 클리포드에게 함께 돌아가자고 말한다. 사실 해왕성까지의 로이의 여정을 복기하면 그가 우주에 남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아내와는 소원해진 상태고 달에서는 부품을 탈취하기 위한 우주 해적들과 총격전이 벌어져 동료를 잃었다. 우주에서 인간을 위한 실험대상이 된 유인원들의 분노에 위험에 빠지기도 하고 화성에 도착해서는 사령부의 음모를 알게 된다. 인간 때문에 발생하는 진절머리 나는 지구의 문제들이 우주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오죽하면 동료가 유인원에게 목숨을 잃었지만 외레 유인원들의 분노를 이해한다고 했을까.

그럼에도 로이는 지구로의 귀환을 택한다. 이 결정은 <그래비티>의 라이언 박사와는 다르다. 하나뿐인 딸을 교통사고로 잃은 라이언 박사는 로이처럼 적막한 우주에서 안정을 찾는 사람이다. 하지만 뜻밖의 사고로 우주미아가 되고 생을 포기하려 할 때 맷의 환영을 보고 우연히 연결된 이누이트아난강과 교신을 주고받는다. 이 과정에서 고독한 줄만 알았던 삶에서 그녀를 중력처럼 붙들어두고 있던 미약하지만 끈끈한 관계를 발견하고, 다시 한번 희망을 되살려 귀환 우주선을 찾아 나서 끝내 두 발로 대지에 우뚝 선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 스틸 이미지

우주(Space)에서 새로운 우주(Universe)로

물론 로이도 아버지의 동료이자 자신을 감시하러 온 프루이트(도날드 서덜랜드)에게 도움을 받고, 화성의 책임자이자 아버지가 죽인 우주인의 자녀 헬렌(루스네가)의 돌발적인 호의로 로켓을 타고 해왕성까지 올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역시 관계에 의한 구원이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관계의 종착지는 결국 무(無)였다. 넓디넓은 우주에 유일한 지적생명체가 인류라는 궁극의 허무. 마치 인생의 마지막이 결국 죽음으로 귀결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로이의 귀환을 돕는 추진력은 어떤 관계로도 막을 수 없는 궁극적 허무를 겸허히 인정하는 태도다. 로이는 말한다. “아버지가 연구한 우주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멋진 겉모습 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도 미움도 빛도 어둠도. 그는 없는 것만 찾았고 눈앞에 있는 건 보지 못했다”고. 로이는 아버지처럼 되기 싫다며 써지를 발생시키는 우주정거장을 핵폭탄으로 폭발시키고 그 반동력으로 지구에 돌아온다. 함께 돌아갈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우주미아가 되기로 선택한 아버지를 뒤로 한 채.

출발하기 전. 심리상태를 체크하는 컴퓨터 앞에서 전날 잘 잤냐는 질문에 로이는 8.2시간 잤다고 말한다. 8.2시간으로 계량된 그에게 우주는 과학탐사를 위한 미지의 무한한 공간(Space)이었을 거다. 하지만 돌아온 로이는 똑같은 질문에 ‘푹 잤다’며 앞으로 소중한 것에만 집중하며 살겠다고 대답한다. 이 담담한 선언 위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로이와 그를 향하는 이브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마치 우리의 우주(Universe)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커피 한 잔에 담겼다는 진실을 하고 싶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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