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차별금지법(평등법) 토론회'에서 나온 성소수자 혐오 '가짜뉴스'를 반박하기 위해 시민사회 인사들이 국회 앞에 섰다. 이들은 십수년 간 팩트체크됐던 가짜뉴스에 민주당이 공적 자리를 내줬다며 차별금지법 입법을 위한 생산적 논의를 촉구했다.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토론회 패널로 참여했던 인사들을 비롯해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부장 등이 민주당을 규탄했다. 앞서 지난 25일 열린 토론회에서 반대측 패널들은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해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 등 질병이 확산된다거나, 성경을 '분서갱유'시킨다는 등의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성소수자 혐오·차별 민주당 차별금지법 토론회 규탄' 기자회견 (사진=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의학적 거짓 주장에 확성기, 민주주의의 수치"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부장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시민이자 의사로서, 일부 토론자가 제기한 의학적·보건학적 심각한 오류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반대패널들이 HIV(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 감염과 전환치료에 대한 가짜뉴스를 퍼뜨렸다고 비판했다.

이 정책부장은 "최신 과학적 근거에 의하면, HIV 감염에 대한 예방법과 치료법은 충분히 개발돼 HIV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HIV 바이러스 노출 이후에도 효과적인 예방법이 있으며,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하더라도 항바이러스제 복용 시 바이러스 검출이 되지 않을 정도로 질병을 조절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미 의학적 발전이 이뤄졌음에도 HIV 감염을 비참한 삶으로 연결짓는 발언은 현대의학의 부정이자 질병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부당한 낙인"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HIV 감염을 명목으로 개인의 성적지향을 교정하고자 하는 것은 부적절한 주장"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HIV와 에이즈 예방 치료에 중요한 건 누구나 성적지향과 정체성에 관계없이 콘돔 등을 사용해 안전한 성관계를 하도록 하는 것이고, 감염위험에 노출된 사람에게 적절한 의료적 자원이 보편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년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이 정책부장은 국제사회가 HIV 관련 잘못된 인식을 교정하려 노력 중인 반면 한국은 공당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HIV 감염인을 낙인찍는 데 유감을 표했다.

세계적 질병기준에서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은 삭제되어 왔다. 2018년 발표된 국제질병분류(WHO의 ICD-11)에서 기존에 정신장애로 분류되던 트랜스젠더 성정체성은 삭제됐다. 그는 "보수적인 의학계의 이런 결정은 수십년간 역학·심리학 연구결과를 종합검토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정책부장은 "2018년 이뤄진 미국 연구에 따르면, LGBT(성소수자 지칭 약어) 청소년 자살시도 비율은 부모가 성적 지향을 바꾸라고 할 때 2배 이상, 종교지도자가 성적지향을 바꾸려고 시도할 때는 더욱 높아졌다고 보고되고 있다"면서 "미국 정신의학협회와 의사협회는 공식적으로 전환치료를 반대하는 입장을 개진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한 토론자는 LGBT 인구에 정신질환자가 많기 때문에 동성애자는 필연적으로 불행해질 것이라고 규정했는데, 성소수자 정신건강 유병률이 높은 이유는 낙인과 차별경험 때문"이라며 "심지어 그 토론자가 인용한 논문에도 나와있는 내용이다. 2021년에도 성소수자를 낙인찍는 잘못된 주장에 확성기를 쥐어주는 현실은 한국민주주의의 수치"라고 말했다.

25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차별금지법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 페이스북)

의심받는 '사회적 논의'…"생산적 논의의 장 마련해야"

홍성수 교수는 입법과정에서 의견수렴은 필요하지만 이미 수차례 팩트체크된 주장들에 민주당이 자리를 마련해 준 데 대해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홍 교수는 "의견을 명목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논의가치가 없는 얘기가 오가게 한 건 당의 문제"라며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수많은 각계 논의와 언론의 팩트체크로 반박된 내용이 그대로 반복됐다. 민주당은 이제 끝난 논의들을 접고, 생산적 논의를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몇몇 발표자는 해외자료와 논문, 기사를 인용했는데 미국 질병통제관리센터나 정신의학계에서 본인들의 자료가 이렇게 인용되는 걸 보면 어떤 생각을 했을지 너무나 부끄럽다"면서 "입법과정에서 필요한 논의를 하루빨리 테이블에 올려 진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 교수는 일례로 최근 서울·부산 등 전국 각 지역에 성소수자 혐오 전광판 광고가 나붙은 사건을 법조문에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4개의 차별금지법안이 광고를 규제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법안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안은 '광고'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하고 있고,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3개 법안은 광고에 대한 개념은 있지만 광고는 일반적으로 '상업광고'를 의미하기 때문에 일반 옥외광고가 차별금지법 규제대상이 되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진평연)이 낸 성소수자 혐오 조장 전광판 광고 (진평연 페이스북)

박종운 법무법인 하민 변호사는 "사상과 이해관계가 다를지라도 그 사람이 '사람'인 이상, 인격과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게 차별금지법의 전제"라며 "그렇다면 입법찬성이 전제인 것이다. 그런 다음 법안의 내용을 따져볼 수 있는 것이지, 외국사례를 들어 가짜뉴스와 허위사실을 유포한다"고 비판했다. 박 변호사는 "민주당이 향후 토론회를 할 때 이들 주장을 변명거리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겠다 변명한다면, 용납하기 어렵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필요한 내용을 고민하는 토론회를 주관해달라고 요구했다.

자캐오 성공회 신부는 "일부 보수개신교의 근본주의적 성서해석과 교리를 근거로 과잉된 자의식과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자리를 민주당 정책위에서 여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정교분리의 원칙을 위배하는 '동성애 옹호법' 프레임을 민주당이 기계적 형평성을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유포되게 두었다"고 질타했다. 자캐오 신부는 "이런 주장은 이 땅의 모든 존재가 이방인이자 나그네라는 그리스도 성서 가르침에도 어긋난다"며 "교회 안에도 나이, 성별, 장애, 인종 등에 따라 차별받는 사람이 분명 존재하는데 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하지말라"고 강조했다.

조혜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장은 "개혁세력을 자처하는 집권여당이 노골적 차별·혐오 선동발언에 공적자리를 내주는 일은 멈춰야 한다"며 "차별하게 해달라는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 민주당이 당연한 평등의 원칙을 확인하기 싫어하는 기막힌 상황을 확인 중이다. 폭력의 자리를 더 넓히지 말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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