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했던 열린우리당의 과반 신화도 끝나고 선거 불패로 당당하던 한나라당의 위용도 예전 같진 않은 상태에서 보수 정당들이 전체의석 299석 가운데 291석을 가져가는 것으로 선거는 결론지어졌다.

한나라당이 승리를 했다지만 간신한 과반은 냉정한 패배이다. 통합민주당은 예상했던 최악의 KO패는 아니되 압도적으로 판정패 했다. 사실상의 양당 체제가 붕괴됐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신진 세력은 보이지 않는다. 자유선진당은 과거 자민련 만큼의 위상도 확보하지 못했고, 친박연대는 유의미한 독자 세력이라 하기에는 어정쩡한 성적을 받았다. 진보 세력은 몇몇 전투의 성과로 궤멸은 면한 채 전쟁에서 패배했다. 창조한국당은 문국현 대표를 국회에 보내는 성과를 냈지만, 여전히 민주당의 종속 변수로써 유의미할 뿐이다. 모두가 졌다. 하지만 누구도 뼈까지 발리는 패배를 당하지는 않았다.

이제, 파티(party)는 정리됐다

이번 선거는 벌써 수년째 자위적 수습만으로 연명하고 있는 한국 정치 세력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모두가 졌지만 아무도 이기지 못하는 아이러니는 아예 레파토리가 됐다. 대통령이 됐지만 박근혜를 이기지 못한 이명박, 민주당을 먹었지만 한나라당을 극복하지 못한 손학규, 명성을 확인했지만 성과를 갖지 못한 이회창, 당선은 됐지만 할 게 없는 친박연대, 가능성을 남겼지만 성장이 없는 만년 기대주에 머무는 진보 세력까지.

어쨌거나 이제 파티(party 정당)는 정리됐다. 관찰자적 입장에서 이번 선거는 파티(party 정당)들의 향연이기보다는 파티(party 정당)내에서 희열을 만끽한 절반과 괴로웠던 나머지 절반의 명암을 구경하는 재미가 분명한 선거였다. 파티를 즐거움 혹은 괴로움으로 빛낸 발군의 "파뤼피플(partypeople)~♪♬'들을 찾아봤다.

역동적 승리와 반동적 승리 : '계급투표' 강기갑, '묻지마투표' 박지원

▲ 한겨레 4월 10일자 4면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17대 비례)의 승리는 이번 선거에서 기억해야 할 가장 빛나는 희열이라 할 것이다. 날고 기는 박근혜의 일벌들을 떨구었다는 여당 최고의 실세 이방호 의원을 강기갑 의원이 꺾은 장면은 만장일치 이번 선거 최고의 장면이다. 장소가 수구보수의 안방인 경남(사천)이었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 강기갑 의원의 승리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장소성과 관련하여 굉장히 소중한 지점은 이른바 '계급투표'가 실현된 점이다.

전천후 활약을 펼쳤던 17대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심상정, 권영길 의원에 비해서 강기갑 의원은 크게 돋보였던 의원은 아니었다. 강기갑 의원은 한복 차림과 농민으로 기억되는 의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기갑 의원이 이겼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유세 기간 중 한복은 잠깐 벗었지만, 그는 17대부터 시종일관 농민 의원, 농민 후보였다.

사천시는 전체 산업의 47%가(2007년, 사천시청 통계 기준) 농수산업에 집중된 지역이다. 농민의 권리를 위해 복무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너무도 자명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은 아니었다. 한국 정치의 불치병인 묻지마 '지역주의'의 아성이 비로소 '계급' 투표를 통해 강기갑 당선자에 의해 사천에서 깨졌다. 가장 역동적인 승리이다.

이에 대조되는 가장 반동적인 승리는 박지원 당선자이다. 박지원 당선자 개인의 입장에서야 이번 승리가 역사의 순리이고 민심의 심판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영남 한나라당, 호남 민주당의 구도에서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나서는 것은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강변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지원 후보의 당선은 정말이지 바람직하지 못하다.

휠체어를 의지해 감옥에서 나왔던 그가, "호남 후보 중에 DJ 사진 안 쓴 사람 없고, 자신이 DJ의 최측근"이라는 우레성을 터뜨리는 장면은 한국 정치의 낙후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국회에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홍어 축제에 더 많은 국고를 지원할 것인가, DJ 기념사업을 정부 주관으로 격상시킬 것인가? 아님 그런 것들조차 묻지 못하게 민주당으로 직행할 것인가.

보수의 가능성과 진보의 암울함 : 홍정욱·신지호 '새로운 승리', 노회찬·심상정 '익숙한 패배'

▲ 동아일보 4월 10일자 13면
홍정욱, 신지호 당선자의 승리는 조금 특별하게 기억돼야 할 것이다. 각각 노회찬, 김근태라는 반대 진영의 거물들을 꺽은 것이 우선 그렇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의 지향성이다. 그 동안 한나라당에는 남경필, 원희룡으로 대변되는 '소장파'가 있었지만, 그들이 소장파라 불리는 이유는 단지 나이가 어렸기 때문이지 중진·노장들과 비교해 변별되는 정치적 지향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한나라당은 홍정욱, 신지호에 이르러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고 기록돼야 할 것이다.

홍정욱 당선자는 대한민국 보수의 스타일이 비로소 글로벌 스탠다드에 도달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1%를 당당함으로 하는 엘리트 출신에 세련된 외모와 유창한 화술까지 그는 나머지 99%가 어쩔 수 없이 동경할 수밖에 없는 어떤 장점들을 두루 갖췄다. 진보정치의 명장을 꺾은 그는 원하던 바대로 18대 국회의 블루칩이 되었다.

신지호 당선자는 깃발을 든 행위 하나만으로 완전히 이념의 전선을 재편성한 뉴라이트의 대표 선수였다. '보수=낡고 진부한 것'의 등식을 한 방에 보냈던 전술의 창시자였다. 2MB의 선진화와 실용주의 노선 역시 상당 부분 그의 슬로건에서 차용된 것이다. 그런 그가 개혁세력 모두가 머리를 숙인다는 김근태 의원을 꺽은 것은 정말이지 시간이 어디론가 지나가고 있음을 분명히 하는 '새로움'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이고, 익숙한 패배이지만 너무 뼈아프다. 노회찬, 심상정 의원이 18대 국회에 입성하지 못한 채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남겼다고 위로하기엔 너무나 암울하다. 17대 국회에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했던 사건이 2012년 진보정권 집권의 애드벌룬을 띄었던 환호작약의 설레발이었다면, 18대 국회에 진보신당이 1석도 얻지 못한 것은 도저히 기상을 예상하기 힘든 깊은 숙면의 시작으로 적막하다.

성공한 상징과 실패한 실체 : '안락한 그늘' 정몽준·최철국, '냉혹한 땅에 선' 임종인·박형준

지지난 대선의 최대 패배자였던 정몽준 의원이 다음 대선의 강력한 승리자로 부활했다. 그는 이제 그늘에 누워 행복한 내일을 고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속단은 이르다. 안락한 그늘은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한나라당과 정동영 후보가 제공해준 것이다. 그의 승리는 상징적이지만 안락한 그늘의 기막힌 역설이다. 이재오, 이방호, 강재섭 등 경쟁자들이 야인이 된 상황에서 당권은 가시권이고 박근혜 의원의 행보가 벼랑 끝일 수밖에 없는 것에 비해 대권 도전까지는 안정권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공조 파기의 불우한 기억과 최하위권이었던 지난 의정 활동, 축구협회 사유화와 성희롱 사건 등 그에 대한 자질 논란은 여전하다. 비록 상징적 승리를 거뒀지만 뉴타운 건설 확약 등 공약의 부실함이 당장 그를 따라다니게 됐다. 그의 당선은 오히려 2MB의 적수이자 상대방의 상징이었던 정동영 후보의 정치적 생명력이 끝났다는 판단이자, 어디서든 이길 수 있는 한나라당의 힘을 본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경남에서 민주당은 2석을 얻었다. 민주당의 영남 승리는 안락함과는 전혀 상관없는 기적이다. 최철국(김해) 당선자의 승리 역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했다는 표현이 적합한 기적이다. 17대 국회에서는 이른바 탄핵의 여파로 국회에 입성한 이른바 '탄돌이'로 이해되었던 최철국 의원은 18대 국회에도 역시 입성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국회에 입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17대 때에 이어 이번에도 '노무현'이었다는 점이다.

▲ 동아일보 4월 10일자 6면
귀향 이후 공과를 떠나 '우리도 저런 퇴직 대통령 하나쯤 가질 때가 됐다'는 낭만적 만족감을 극대화하고 있는 시민 노무현의 상징적 행보는 결국, 자신의 지역구에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는 나비효과를 낳았다.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겠지만, 이 정도 안락한 그늘은 그나마 합리적인 지역주의라고 보는 것이 '낭만적'일 것이다.

임종인 의원은 평균 이하의 17대 국회에서 가장 양질의 정치를 했던 의원이었고, 박형준 의원은 갖은 악재를 극복하고 2MB 정권을 만든 핵심이었다. 소신의 무소속임에도 박빙의 승리를 예상했던 임종인 의원과 2MB의 브레인으로 무난한 승리를 점쳤던 박형준 의원 모두 패했다. 입장과 정파를 떠나서 이렇게 실체가 패배하는 정치는 결코 좋은 정치가 아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이겨야 하는 자들의 패배에 무감하고, 이기면 곤란한 자들의 승리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기억해야할 승리와 패배 : 김일윤, '기억상실 예고' 아니길...유시민, '기억극복 징후' 되길

공천에 불복해 탈당하고 급조된 정당에서조차 금품 살포로 제명당했던 후보가 있었다. 경주에서 당선 된 친박연대 김일윤 후보이다. 일단은 금배지를 달긴 하겠지만 그의 승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의 승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한국정치가 집단 기억상실에 걸려있는지의 여부가 확인될 것이다. 우선 그를 제적했던 친박연대가 다시 그를 품는다면 일단 친박연대의 기억상실은 분명해진다. 나아가 그를 품은 친박연대를 한나라당이 또 받아들인다면 한국정치의 기억상실은 중증으로 외과적 수술이 필요한 지경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김일윤 당선자가 기억상실의 대표적 증상인 '정치탄압', '화해와 관용'을 자극하는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 조선일보 4월 10일자 A4면
유시민 의원은 17대 국회에서 가장 '끔찍한'(!) 이름이었다. 한나라당에게는 '끔찍한' 싸가지의 대명사였고, 진보 세력에겐 '끔찍한' 신자유주의자의 대명사였고, 친노 세력에겐 '끔직한' 계승자였다. 그런 그가 대구행을 택했을 때의 반응도 끔찍하게 갈렸었다. '바보 노무현'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긴 승리의 시작이었고, 그의 노타이 퍼포먼스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역겨운 쇼였다.

그는 예정대로 패배했고, 바보 노무현만큼 대중적 감동을 주는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의 패배는 기억될 필요가 있다. 긴 승리를 예감하기 때문도 아니고, 쇼의 선정성 때문도 아니다. 그의 득표율은 유의미하다. 숙적이었던 전여옥의 지적처럼 대중적 정치인으로서의 유시민의 가능성은 또 다른 의미에서 노무현에 못지않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정확할 것이다.

17대에 이어 18대에도 '바람'과 '지역주의'의 선거는 계속되었다. 유시민 의원은 경위와 욕심, 조건과 상황이 어떠하든 기꺼이 '바람'과 '지역주의'에 도전한 돈키호테이자 유일한 대중 정치인이었다. 물론 그가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정책, 그때그때 다른 원칙, 오기의 정치의 굴레에 갇혀있다는 것은 분명히 지적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람'과 '지역주의'의 기억을 극복하려는 그의 노력을 우선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그를 포함해 스스로를 '개혁 세력'이라 칭하는 이들이 '비정책, 무원칙, 불정치'의 기억들을 극복하는 '상식'의 놀라운 회복을 기대한다.

심히 비겁하다고? 어쩌겠는가, 나는 97%의 다수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3%의 소수에도 불만이 많은 미생물이다. 그들만의 파티(party)는 끝났다. 새벽은 너무 길어 문득, 언제까지 몽중몽(夢中夢)에서 살 순 없다는 자각에 몸서리가 쳐진다. 궁극적으로는 3%가 좀 더 강해지길 간절히 염원한다. 그리고 상대적인 27%가 나의 상식을 배반하지 않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51%가 극악무도 해지지는 않도록 저항한다. 18대 총선이 웅변하지 않는가, 비루한 것 그것이 '정치'다.

학교라고 믿었던 사회운동을 휴학하고 몸을 더듬어보니 라이타 한 개밖에 없더라는 싸구려 열정에 여전히 감격하는 청년 백수. 을용타에 열광하는 청년 백수들이여,라이타(right-打)하라! 오른쪽을 때려라!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