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오늘 토론회가 의미있는 토론회임에도 불구하고, 찬성과 반대측이 따로 앉아 있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첫 토론회가 끝나면 같이 앉으실 수 있는 분위기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민주당이 찬반 동수 패널을 구성해 개최한 차별금지법(평등법) 토론회가 시민사회 우려대로 성소수자 혐오의 장이 됐다. 현장에서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는 발언이 연신 이어졌다. '인권은 찬반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비판과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민주당의 명확한 입장 표명이 요구된다.

25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차별금지법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 페이스북)

국회 한복판서 '차별행위 처벌' 가짜뉴스 전파

25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요나 탈동성애인권센터 홀리라이프 목사는 "동성애는 성추행도, 성폭행도, 성범죄도 아닌 개인의 지향이자 의지일 뿐이다. 타고난 것이 아니다"라며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저는 탈동성애 인권운동가로서 활동할 수 없다. 우리교회에도 12년 (탈동성애)상담한 아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동성애자로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부모와 함께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탄식하며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종교적 상담으로 동성애를 치유해 이성애로 바꾼다는 '전환치료'를 주장하는 인물이다.

이 목사는 현재도 법이 평등을 보장하고 있는데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하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종교, 사상, 성적지향, 성정체성 등 없었던 것을 (차별금지사유에) 넣으면서 제정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나"라며 "차별금지법 내용을 보면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내용과 같이 기존 우리법이 부족함 없이 잘 되어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변호사는 차별금지법이 국가의 사상통제, 성전환 조장, 성별갈등, 생명윤리 훼손 등을 유발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인해 국민이 전재산을 몰수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국민의 판단 권한을 국가에게 통째 넘기는, 국가는 우월하고 국민은 열등하다는 발상의 법"이라며 "이단종파,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도 차별로 볼 건지 의문"이라고 했다.

특히 이 변호사는 성소수자 권리 보장이 여성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그는 "남녀 불평등이 되풀이될 것이다. 여성비례대표, 사외이사 할당도 다시 조정되는 등 '성소수자 할당제'가 논의될 것"이라며 "성소수자라고 거짓말을 해 혜택을 받으려는 오용사례가 속출할 것이다. 제3의 성을 권장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류현모 성산생명윤리연구소 교수는 과학적으로 구분되는 성별은 남성과 여성 둘뿐이며, 동성애가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 확산의 원인이라고 했다. 류 교수는 "'젠더'라는 자의적 선택을 공적으로 인정할 경우 생길 엄청난 혼란을 생각하라. 젠더퀴어는 그냥 용어만 사용하는 것으로 성은 염색체와 생식기 형태로 결정될 뿐"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남성동성애로 에이즈가 전파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20~30대 남성 중심으로 신규 감염이 증가하고 있다"며 "질병관리청이 이걸 숨기고 있다. 에이즈 감염되면 영원히 약 먹어야 한다"고 했다.

이상원 새로남교회 목사는 "차별금지법은 동성간 성교가 죄라고 말하거나 종교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한다는 표현을 혐오의 굴레를 씌워 차단하고 있다"며 "성경에서 동성간 성교는 혐오스러운 일이다. 차별금지법은 성경을 금서로 만드는, 분서갱유 가능성이 내포된 법"이라고 했다. 그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비판이 금지될 뿐 아니라 동성애와 성전환을 적극 권장해 음란행위를 조장하는 병든 성교육이 시행된다"며 "지옥과 같은 구렁텅이로부터 동성애자들을 구해내려는 사람들을 밀쳐내버리는 잔혹한 법"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25일 주최한 차별금지법 토론회 포스터

그러나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국가인권위원회의 평등법 시안,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발의한 평등법 등에서 '차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은 '차별 피해자에게 보복성 불이익 조치'가 있을 때에만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법 적용 분야는 ▲고용 ▲재화·용역 등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직업훈련 ▲행정서비스 등의 제공이나 이용 등으로 한정된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차별을 구제받기 위해 인권위 진정 등 절차를 밟는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행위가 처벌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설교하면 잡혀간다', '표현을 차단한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상민 의원이 발의한 평등법은 아예 형사처벌 관련 조항을 들어냈다. 이 의원은 보수개신교계 반대주장이 지속되고 있어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형사처벌 조항을 제외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상민 의원 발의안에는 차별피해 손해배상제도가 담겨 있다. '악의적 차별'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고의성, 지속성, 반복성, 피해자에 대한 보복성, 차별피해의 규모 등을 고려해 '악의적 차별'이 인정될 경우 손해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의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입증책임은 원고와 피고에게 양분했다.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전형적인 가짜뉴스다. 질병관리본부 등의 공식 설명 등에 따르면 에이즈는 성정체성에 관계없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과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할 때 전파되는 질병이다.

보수 개신교계는 헌법 11조 1항이 평등권을 보장하기 때문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거나, 차별금지사유가 모호해 법체계적으로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조혜인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법' 변호사는 "헌법에 있다는 건 실행을 위한 구체적 법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헌법에 명시된 가치를 법률적으로 구체화하고 이행하는 기본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조 변호사는 "'직접차별' '간접차별'과 같은 개념이 모호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미 우리 법체계에 다 있고 문제없이 시행되고 있다"며 "예를 들어 차별금지사유 중 '인종'은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지만 인종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는 게 정당하다는 차별적 믿음이 있다. 때문에 인종이란 개념이 없어도 인종차별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사회적 합의' 대상, 성소수자 혐오선동 세력이었나"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패널들은 민주당의 토론회 패널 구성을 문제삼으며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는 "저는 44세 남성 동성애자이다. 동성애자로 살아온 시간동안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조건을 만들고자 했는데, 오늘처럼 모욕적인 순간이 또 없다"며 "우리사회 평등을 지연시키는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당이 심각한 문제가 있는 토론회를 열었다"고 비판했다.

이 공동대표는 "민주당은 14년 전 차별금지법제정 논의를 시작한 책임이 있는 정당이다. 또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는 핑계로 '사회적 합의'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한국사회에 자리잡게 한 정당이기도 하다"며 "오늘 이 토론회 안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성소수자 권리박탈 시도는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공동대표는 "반대 토론자들은 여러 현장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악의적 비방과 차별, 혐오를 선동하는 인물들로 구성됐다. 이런 방식의 토론은 혐오선동에 공적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라며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장은 민주주의 공론장에서 용납될 수 없다. 이런 선언 없이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정치는 불가능한데 민주당은 대체 어디에 서 있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2021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쟁취 농성단'은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차별금지법 토론회를 규탄했다. (사진=차별금지법제정연대)

조혜인 변호사는 "민주당의 토론회 기획의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회구성원이 법의 보호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서 토론을 시작할 수 없다"며 "인권보장의 책무가 있는 주요기관이라면 사회구성원을 죄인으로 몰아 사회활동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승인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민주당이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장 지몽 스님은 "지구상 어디에서 왔건 우리는 모두 똑같은 인간이다.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 다른 이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멈추고 보편적 인권을 위해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며 "인권은 찬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집권여당으로서 책임이 막중한 민주당은 시대적 질문에 답하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지몽 스님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성소수자의 인권을 찬반의 대상에 놓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했다"며 "카스트 제도 아래서도 부처님은 신분, 성별, 빈부에 제한을 두지 않고 함께했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기 위해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이웃종교인을 포함한 종교인 대다수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시각 국회 정문 앞에서는 민주당의 토론회 개최를 규탄하는 시민사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민사회 연대체 '2021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쟁취 농성단'은 "민주당은 차별금지의 원칙을 선언하지도,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시도는 토론의 쟁점이 될 수 없다는 점도 명확하게 표명하지 못한다"며 "민주당이 그토록 마음 써 온 '사회적 합의'의 대상은 결국 성소수자를 계속 차별하게 보장해달라고 주장해 온 보수개신교 세력이었다"고 질타했다.

이들은 "이번 토론회는 바로 혐오선동세력의 주장을 민주주의 사회에서 토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의견의 하나로, 공적인 논의의 장에서 다루어져야 할 합리적인 의제로 만들어준 정치의 결정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농성단은 지난 16일 원내 7개 정당에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입장 공개를 요구했다. 그 결과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면서 누군가를 포함시키거나 배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 동의하는 정당은 정의당, 열린민주당, 기본소득당 등 3개 정당 뿐이었다. 민주당, 국민의힘, 국민의당, 시대전환 등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