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8대 총선에서 사상 최저의 투표율이 나온 것과 관련해 선관위쪽이 밝힌 나름의 분석은 이렇다.

"지난 17대 총선에서의 대통령 탄핵과 같은 큰 이슈나 뚜렷한 쟁점이 없어, 이번 총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적었던 데다 날씨마저 좋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면 맞는 말이다. 오늘자(10일) 대다수 아침신문들의 분석처럼 "이번 총선에선 여당의 '안정론'과 야당의 '견제론'만 난무했을 뿐 구체적인 정책 대결은 눈에 띄지" 않았던 데다, 여기에 여야 가릴 것 없이 후보공천 파동까지 겹쳐 무관심을 더 부채질한 측면이 있다.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이 투표대열에서 이탈한 점 역시 낮은 투표율의 원인이 됐다.

선관위, 인터넷 실명제 ‘강요’하더니 이제 와서 쟁점이 없다고?

▲ 한국일보 4월10일자 1면.
여기까지가 사상 최저 투표율과 관련해 대다수 신문방송들이 대략적으로 분석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여기엔 한 가지가 빠져 있다. 주로 네티즌과 블로거들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내용인데 이른바 ‘선관위 책임론’이다.

'선관위 책임론'은 특히 "큰 이슈나 뚜렷한 쟁점이 없어 투표율이 하락했다"는 선관위 쪽의 해명 때문에 확산된 측면이 있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꼴인데, 결론부터 간단히 요약하면 "큰 이슈나 뚜렷한 쟁점이 없도록 한 당사자 가운데 하나가 선관위인데 이제 와서 엉뚱한 소리 하고 있냐"는 것이다.

인터넷실명제 실시가 대표적인 경우다. 선관위는 이번 18대 총선에서 주민등록번호로 신원이 확인된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도록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선관위의 이 같은 방침은 일부 언론과 인권시민단체들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이들은 "인터넷 선거실명제가 모든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침해하는 명백한 사전검열"이라고 반발했다. 이들 단체들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누구나 익명으로 의견개진을 할 수 있는 '열린공간'임에도 몇 년 전 도입된 선거실명제로 인해 토론문화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면서 "특히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18대 국회의원 선거 기간 동안 실시되는 인터넷실명제는 국민의 정당한 표현의 자유와 유권자로서의 권리마저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실명제, 시민의 자유로운 정치 참여 가로막는다

▲ 지난 3월25일 인터넷언론, 언론단체, 인권단체 등이 인터넷 실명제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곽상아
실제 인터넷실명제는 모든 국민을 허위정보·비방 유포자로 전제한 상태에서 시행되는 제도라는 점에서 시민의 정치 참여를 가로막고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당연히(!) 국민들의 정치참여가 제한될 수밖에 없고 선거와 관련한 쟁점은 커녕 자유로운 의사소통마저도 침해당할 수 있다.

네티즌이나 블로거들에 의해 제기되는 ‘선관위 책임론’은 이 제도를 도입한 당사자가 선관위인데 이제 와서 쟁점 실종-이슈 부재 운운하는 게 말이 되냐는 소리다.

대운하와 관련해 선관위가 내린 유권해석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선관위는 대운하 건설 반대운동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란 유권해석을 내렸는데 이때 선관위가 밝힌 내용이 이렇다.

"최근 대운하 건설이 이슈로 떠올라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슈로 떠오른 사안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선거법 위반이다? 사실 선관위의 이 같은 입장은 여러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이보다 앞선 3월29일 선관위는 대운하 반대를 위한 서명운동과 토론 및 집회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가 불과 며칠 사이에 이를 뒤집었기 때문이다. 뒤집으면서 내세운 이유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그 내용이다.

정리하자. 자신들이 직접 최저 투표율에 이르게 하는 각종 '장치'들을 마련해 놓고 '왜 투표율이 이렇게 낮은 것이냐'고 항변을 하고 있는 선관위를 보니 어이가 없다. 대운하 건설만 해도 그렇다. 대운하반대 운동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린 다음 '입도 뻥긋 못하게 해놓구선' 이제 와서 선관위가 쟁점 실종-이슈 부재 따위의 소리를 하고 있다.

정치에 대해 자유롭게 의사소통도 못하게 하고, 이슈에 대해서는 선거법 위반이라고 윽박질러(?) 놓고 '사상 최저 투표율'이 나오니 '딴소리'만 해댄다. 전형적인 이중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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