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문과였던 나는 '수학'이 어렵고 힘들었다. 내가 학교 다니던 당시만 해도 '수학의 정석'을 한 권 다 푸는 게 수학 공부의 정석이었는데, 수학 못하는 아이들이 그렇듯이 나의 정석은 언제나 앞부분만 손때가 타 있었다.

늘 다이달로스의 미궁과 같던 수학. 하지만 정작 입시 수학을 지나, 대학에 가 아르바이트로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다시 정석을 열었을 때 놀라운 경험을 했다. 가끔 스트레스를 받으면 수학 문제를 푼다 해서 놀래키는 이들이 있는데, 그 수학 문제를 풀 때의 카타르시스를 나 역시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가장 순수한 지적인 열정과 그에 따른 보상으로서의 해제에 이르렀을 때 주어지는 쾌감, 그건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쉬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게 풀리지 않았을 때이다. 모차르트, 베토벤, 고갱, 고흐, 헤밍웨이 등등 천재라 불리는 위인들 중 다수가 풀리지 않는 자기 삶의 화두로 인해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그들이 지닌 천재성만큼 풀리지 않는 문제가 그들을 깊은 우울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신경생물학자인 제임스 펄롱은 깊은 우울감은 동시에 '창조의 에너지'가 된다고 실험을 통해 밝혔다. 르네상스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의 '멜랑콜리아'는 컴퍼스를 손에 든 채 수학적 상징이 가득한 공간 안에서 고민에 빠진 작가 자신을 상징하는 듯한 인물을 그린다.

멜랑꼴리아 백승유

tvN 15주년 특별기획 수목드라마 <멜랑꼴리아>

'멜랑꼴리아'라는 단어에는 우울증에 빠진 천재라는 뜻이 있다. 11월 10일 첫선을 보인 tvN <멜랑꼴리아>는 바로 그 좌절한 천재 백승유(이도현 분)를 내세운다. 겨우 5살에 명문대 수학과 학생들도 풀지 못한 문제를 풀던 아이 백민재, 당연히 세상은 그 아이에게 열광했다. 10살에 MIT를 갔다. 그러나 천재 소년은 12살에 자퇴를 하고 세상에서 자신을 지웠다. 그리고 이제 백민재에서 백승유가 된 소년은 우울증, 공황장애 등의 진단을 받은 채 멍한 눈빛으로 전교 꼴찌 신세이다.

그런데 승유가 차마 숨기지 못한 수학에의 순수한 열망을 눈 밝게 알아본 이가 있다. 바로 아성고에 새로 부임한 수학 교사 지윤수(임수정 분)이다. 그녀가 미처 지우지 못한 문제에 흔적을 남긴 승유, 그 문제 풀이의 흔적을 보고 그녀는 알았다.

지윤수가 승유를 알아본 이유는 무얼까? 그건 바로 그녀도 '승유' 같은 사람이어서다. 교사라지만 여전히 고등학생처럼 맑은 눈빛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그녀는 수학의 난제 앞에서 가슴이 뛰는, '수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입시명문 아성고의 교사로 왔지만 아이들이 수학에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며 수학의 아름다움을 가르치고 싶다.

tvN 15주년 특별기획 수목드라마 <멜랑꼴리아>

그래서 지윤수는 자신이 발견한 백승유에게 너도 수학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밤새워 칠판을 채워가며 문제를 푼다. 그저 '푸는 과정'을 즐겼으면 한다고 했지만, 승유의 세상에는 온통 풀지 못한 문제들로 채워진다. 마치 천재들의 만들어낸 음악과 미술 등 갖가지 지적인 결과물들이 우리에게는 아름다움으로 비춰지지만 그들에게는 우울과의 지난한 싸움의 과정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정작 백승유로 하여금 온전히 수학에 빠져들지 못하게 만드는 건 그를 둘러싼 세상이다. 12살에 세상에서 사라진 천재였던 아들을 여전히 놓지 못하는 부모는 승유에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며 폭력을 불사한다. 부모는 천재 백민재를 기대하지만 그런 태도가 바로 백승유가 백민재로 살 수 없었던 이유일 수도 있다.

수학을 사랑하고, 수학의 아름다움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지만 현실은 입시명문 아성고의 교사인 지윤수. 수학을 아름다운 학문이 아니라, 올림피아드와 수포자라는 양극단을 오가는 입시의 수단에 불과하게 만든 교육 현실이 천재 백승유와 순수한 열정을 가진 지윤수에겐 헤쳐나가기 어려운 또 하나의 미궁이다.

tvN 15주년 특별기획 수목드라마 <멜랑꼴리아>

<멜랑꼴리아>는 천재성을 박제당한 백승유와 그를 알아본 열정적인 수학 선생 지윤수를 통해 입시 수단이 되어버린 교육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가는 ‘입시 스릴러’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부디 <청담동 앨리스>로부터 <의사요한>에 이르기까지 신선한 스토리를 변주해온 김지운 작가와 <여신강림>의 김상협 피디의 시너지가 제대로 이루어지길 기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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