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소속 강용석 의원이 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트위터 글을 올려 논란이 된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 의원은 "인터넷상으로 급속히 퍼져 기사화된 글은 제가 직접 쓴 것이 맞다. 취중에 작성한 것 아니냐는 것에 대해 그것도 맞다. 몇 분 후 삭제한 거도 제가 맞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논란을 일으킨 부분에 있어 진심으로 죄송하다. 그러나 소박맞은 며느리로서 시댁 기둥뿌리 흔들리고 지붕 내려앉는 상황을 밖에서나마 바라보면서 한마디 하고 싶었다. 부적절한 표현 섞였지만, 내용은 전부 저의 진심이다."라고 부연했다.ⓒ연합뉴스
무소속 강용석 의원이 또 한 건 해낸 모양이다. 트위터를 통해 욕설이 섞인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은 것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부모를 잘 만나 쉽게 정치를 하는데 4선 국회의원하고도 고생하는 홍준표 전 대표가 불쌍하다는 취지의 내용인데, 강용석 의원은 트윗을 올린 다음 날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술에 취해 올린 것이었으며 앞으로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 트윗들은 전부 자신의 진심임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강용석은 허경영의 길을 가려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를 '황당한 일'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매스미디어에서 좀 더 개념 있고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기를 원하는 반면 강용석 의원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강용석 의원이 허경영의 길을 걷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황당한 언술을 늘어놓아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자산을 쌓으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나름 정확한 판단이지만 이러한 사건들의 뒤에 놓여있는 핵심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나는 정치인들을 그저 가볍게만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의 기준으로 정치인들이 하는 일을 보면 '뭐 저런 사람들이 있나' 싶은 것들이 많이 있지만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는 정치인은 없다. 그들이 우리가 보기에 한심한 일을 하는 것은 첫째, 우리가 미처 생각치 못한 것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거나, 둘째,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강용석 의원은 왜 저러는 것일까? 이 수수께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예를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 다소 뜬금없지만 잠시 프로레슬링에 대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자.

프로레슬링이란 '엔터테인먼트'와 강용석

프로레슬링은 독특한 엔터테인먼트다. 프로레슬링이 비록 스포츠 경기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숨겨진 각본이 존재한다는 것에 놀라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프로레슬링은 심판이 존재하는 공정한 운동 경기를 보여주려고 하지만 이것이 단지 꾸며진 것이라는 것을 동시에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 두 요소를 동시에 보아야 비로소 프로레슬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방식을 처음으로 성공시킨 사람은 미국 WWE의 회장인 빈스 맥맨이다. 그는 그 자신에 대해서도 프로레슬링적인 방식을 적용했는데 이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점은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1997년 이른바 '몬트리올 스크류잡'이라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회장인 빈스 맥맨이 자기 단체 소속 선수를 속인 사건이다.

캐나다 출신 선수들은 국가적 자존심이라는 맥락 때문에 캐나다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패배를 당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데 당시 최고 스타였던 브렛 하트라는 캐나다 출신 선수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브렛 하트가 챔피언이었고 다른 단체로 이적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빈스 맥맨은 브렛 하트가 이적하기 전에 챔피언 벨트를 내려놓길 바랐고 브렛 하트는 바로 다음 경기가 열리는 몬트리올에서는 질 수 없으니 몬트리올에서는 이기고 그 다음 자진해서 벨트를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프로레슬링은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 반드시 '서사'가 반영되고, '서사'에서 일어난 일이 반드시 '현실'에 반영된다. 전자는 상식이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즉, 브렛 하트가 몬트리올에서 이긴 후 챔피언 벨트를 가진 채로 다른 단체로 이적해버리면 빈스 맥맨의 WWE는 챔피언 벨트가 없는 격투기 단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빈스 맥맨은 브렛 하트에게는 몬트리올에서 지지 않는 각본을 만들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심판, 상대 선수와 짜고 브렛 하트를 패배시켰다. 화가 난 브렛 하트는 경기장을 때려 부수고 빈스 맥맨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프로레슬링팬들 사이에서는 동정 여론이 일고 빈스 맥맨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하지만 빈스 맥맨은 자신의 캐릭터를 '악덕 고용주'로 설정하고 프로레슬링 경기에 직접 출연해 선수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몬트리올 스크류잡' 이라는 현실에서의 악행을 서사로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빈스 맥맨의 악역 연기와 이 캐릭터를 응징하는 선한 캐릭터에 환호했다. 경악할만한 악행이 순식간에 향유의 대상이 된 것이다.

강용석은 지금 '현실'을 '서사'로 극복하려는 중이다

이쯤 되면 무언가 감이 오지 않는가? 정치 역시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 반드시 '서사'에 반영되고 '서사'에서 일어난 일이 반드시 '현실'에 반영된다. 즉, 강용석 의원은 현실에서 벌인 성희롱이라는 악행을 '고소고발집착남'이라는 서사화 된 자신의 캐릭터를 이용해 은폐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명함에 포기를 모르는 남자, 불꽃남자, 찌질이, 특권종결남, 모두까기인형 등의 서사적 캐릭터를 나열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한 증거다.

이러한 시도가 가능한 이유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정치를 서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힐링캠프 출연으로 상당한 정치적 이득을 본 문재인과 어떤 이득도 보지 못한 박근혜의 차이는 무엇인가? 대중들 사이에서 박근혜는 이미 서사화 된 캐릭터를 갖고 있는 존재인 반면 문재인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이다. 즉, 힐링캠프에 출연을 통해 문재인 이사장은 '무대'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서사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박근혜는 더 이상 자신의 캐릭터가 갖고 있는 서사를 강화할 틈이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서사에 기대지 않으면 정치인은 자신이 받아야 할 지지를 제대로 획득할 수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정치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다. 프로레슬링은 결국 빈스 맥맨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느냐만 따지면 되는 문제를 남기지만 정치는 우리의 삶 그 자체를 규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감동적인 스토리와 멋진 이미지로 정치를 판단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이든 우리가 상상한 것과 전혀 동떨어진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서사적 정치 앞에서 좀 더 현명한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더 이상 '정치를 즐기자!'라는 구호에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매우 절실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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