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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왜 ‘스노우맨’이 되었나, 무난한 블록버스터급 스릴러지만 아쉬움[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11.08 19:21

[미디어스=이정희] 채널A <금쪽같은 내 새끼>에는 이른바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상담사례자로 등장한다. 하지만 정작 이 예능의 호스트인 정신과 의사 오은영 쌤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대상은 대부분 아이의 부모이다. 

등장하는 아이들의 상황은 심각하다. 욕하고 자해하고 심지어 5년째 구토를 하는 경우까지, 자신의 분노와 아픔을 소화해내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렇게 스스로를 괴롭힌다. 하지만 그래도 오은영 쌤을 만나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싶다. 

<금쪽같은 내 새끼>의 인기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서만이 아니다. 외려 젊은이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다 컸는데도 새삼 육아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 어디 청년들뿐인가. 저마다 살아가며 쉬이 넘어서지 못한 트라우마, 그 근원에는 '부모'가 있는 경우가 많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자아를 구성하는 한 영역으로 '초자아'를 상정했다. 아이들은 성장하며 부모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부모의 모습을 통해 도덕적 기준을 내재화하고, 그 기준에 맞춰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거나 벌을 주거나 한다는 것이다. 이때 부모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혹은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아이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로 자리잡게 된다.

영화 <스노우맨> 포스터

여기 한 소년이 있다. 가끔 찾아오는 '삼촌'이라는 사람은 엄마와 소년을 나란히 앉혀두고 소년에게 역사에 관한 질문을 한다. 소년의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어렵고도 사소한 질문들. 하지만 소년이 그중 하나라도 틀리면 그 대가는 어머니가 치른다. 바닥으로 쓰러질 정도로 강하게 후려치는 삼촌의 구타, 생계를 쥔 삼촌의 횡포에 모자는 무기력하다.

예정되지 않은 날에 삼촌이 온 날, 소년은 어머니의 침대에 든 그 남자가 사실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 그리고 그가 가정이 있는 현직 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떠나는 삼촌, 아니 아버지의 차에 울부짖으며 매달리다 쓰러진 소년. 그런 소년을 본 어머니는 소년을 앞에 두고 얼음이 깨진 호수에 자신을 수장시킨다. 

상처 입은 소년에겐 하지만 '오은영' 쌤이 없었다. 자신의 상흔을 안은 채 성장한 소년은 '스노우맨'이 되었다. 자신의 고통이 부정한 어머니 때문이었다고 생각한 어른이 된 소년은 그 트라우마로 '부정'한 여자들을 살해했다. 십수 년이 넘는 동안, 자신의 범죄에 방해되는 형사들도 ‘처형’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과 함께 살던 라켈의 애인, 해리 홀레 형사에 의해 처단되기 전까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7번째 시리즈 

영화 <스노우맨> 스틸 이미지

요 네스뵈는 스웨덴의 국민 작가이자 스웨덴을 넘어 유럽과 영미권에서도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밀레니엄 시리즈로 유명한 스티그 라르손에 필적하달까. 하지만 3부까지 내고 아깝게 세상을 떠난 스티그 라르손과 달리, <스노우맨>의 주인공 해리 홀레 시리즈를 11편이나 내고 최근 <킹덤>으로 돌아온 요 네스뵈가 한 수 위가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요 네스뵈의 작품이 영화화된 건 뒤늦은 일이다 싶다. 마이클 패스벤더가 주인공 해리 홀레로 분한 넷플릭스 영화 <스노우맨>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렛미인>의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 작품으로 찾아왔다.

늦은 밤 돌아온 엄마, 딸은 엄마를 반기지만 아빠는 늦은 엄마를 힐난하며 집을 비운다. 돌아온 엄마는 딸에게 집 앞에 만들어 놓은 눈사람(스노우맨)을 칭찬하지만 정작 딸은 자신이 만든 게 아니란다. 그런데 보통 눈사람과 달리, 집 앞의 눈사람은 집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감시'하듯이. 그날 밤 집을 휘감는 한기에 잠이 깬 딸은 엄마를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엄마는 사라졌다. 해리의 동료 형사인 카트린이 냉동고 안에서 그녀의 시체를 찾아낼 때까지. 

영화 <스노우맨> 스틸 이미지

눈사람이 자연스러운 정경의 일부가 되는, 눈으로 뒤덥인 광활한 스웨덴이라는 배경을 한껏 드러내 보이며 스릴러 <스노우맨>은 시작된다. 영국, 스웨덴, 미국의 합작 영화답게 마이클 패스벤더 등 익숙한 영국 배우들과 조화를 이룬 스웨덴 배우들, 모처럼 반가운 발 킬머의 등장으로 요 네스뵈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스노우맨은 협연된다. 

주인공을 캐릭터로 앞세운 스릴러물이 그렇듯, 주인공 캐릭터의 '개성'이 먼저다. 하늘 아래 셜록 홈즈나 루팡만 한 인물이 있을까 싶지만 스릴러의 시리즈만큼이나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해리 홀레는 '형사'이지만, 알콜에 취해 범인에게 자신을 고스란히 노출한 채 거리에 쓰러져 잠든 모습을 보이듯이 그다지 멀쩡한 인물이 아니다. 당연히 동료는 물론, 상부의 지시 따위가 그에게 통할 리 없다. 그런데도 그가 여전히 '형사'인 이유는 귀신같이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청바지가 여전히 잘 어울리는 40대 남자 해리 홀레, 마이클 패스벤더가 분한 외양은 가장 해리 홀레스러웠다. 하지만, 요 네스뵈가 구현한 해리 홀레 시리즈의 매력을 <스노우맨>이 십분  발휘했는가에 있어서는 이견이 오간다. 원작을 보지 않은 이는 무난했다고 평가를 내린 반면, 원작을 본 기자의 입장에서는 원작의 개성이 탈색된 ‘무난한 블록버스터급 스릴러’ 한 편을 본 기분이 들었다.

영화 <스노우맨> 스틸 이미지

영화가 범인 스노우맨의 ‘전사’를 장황하게 보여주듯이, <스노우맨>은 해리 홀레와 스노우맨의 대결 구도로 진행된다. 현실적 삶에 있어서는 무기력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적인 해리와, 냉철하게 범죄를 거듭하며 해리를 옥죄어오는 스노우맨의 지적이고 심리적인 구도의 대결이 원작의 묘미이다. 

하지만 영화는 눈 덥인 스웨덴의 풍광을 배경으로 스노우맨이라는 엽기적 살인마가 벌이는 갖가지 살인 사건의 '전시'에 치중한 반면, 해리 홀레가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으로서의 스릴러적 긴장감은 느슨해 보인다. 외려 해리보다 자신을 던져 사건 해결에 나서던 캐트린(레베파 퍼거슨 분)이 시선을 끈다. 그러기에 그녀의 도발적이고도 무모한, 소모적인 죽음에 분노가 앞선다. 

무엇보다 스노우맨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내걸고 정죄하는 과정에 대한 도덕적 질문과 회의를 통한 인간적인 삶에 대한 관조가, 영화에서는 그저 평범한 스릴러적 결말로 대체된다. 애초 소년의 분노는 방향이 잘못되었었다. 그는 자신과 어머니를 폭력적으로 대했던 '삼촌'이라던 아버지에 대해 분노했어야 했다. 하지만 폭력적인 아버지를 자기 정체성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간 어머니로 인해 버림받은 상흔을 대체하려 했던 소년은 결국 스노우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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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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