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투표일을 이틀 앞둔 지난 7일 방송 3사는 메인뉴스에서 저마다 관권·금권 선거 논란과 각 당의 유세장 스케치 등 치열한 유세전 관련 기사들을 빼놓지 않고 보도했다. 총선 관련 보도는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을 돕기 위해 쏟아지는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데 최대한 중점을 두어야 한다 . 그러나 일부 보도는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7일 방송 3사 메인뉴스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청래 의원의 교감 막말 의혹' 보도가 나왔다. 이는 며칠새 문화일보와 조선일보 등 일부 신문사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한창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내용이다.

관련 보도의 경과를 요약 정리해보면 이렇다.

1. 문화일보는 4월 4일자 기사에서 지난 2일 서울 마포지역 초등학교 학부모 행사에 들어가려던 정청래 의원이 해당 학교 교감에게 입장을 제지당했고, 이에 정청래 의원이 '당신을 자르겠다'는 식의 폭언을 해서 비난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2. 이에 해당 'ㅅ'초등학교는 4일 <문화일보>에 바로 '정 의원은 폭언을 한 적이 없고 김 교감은 "당신을 자르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것' 등의 내용으로 반론 정정보도 요청서를 보냈다.

3. 그러나 7일 <조선일보>는 서울 서부교육청이 작성한 경위서에서 "정 의원이 ‘건방지고 거만하다’며 큰 소리로 야단을 함'이라는 내용이 있다"면서 "ㅅ초등학교의 반론보도 요청 자료가 외압에 의해 배포된 것이 아닌지 의혹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4. 이에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7일 정청래 의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5. 같은날 정청래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인사하려다가 강력하게 제지당해서 인사는 선거법 위반이 아님을 해명한 것"이라고 밝히고 "현장에서 교감 선생님이 미안하게 됐다"고 말했다면서 <문화일보> 등의 악의적 왜곡보도라고 주장했다.

위의 경과로 정보 생산의 주체를 정리해보면 △<문화일보>와 <조선일보> 등 신문사 △반론보도를 요청한 'ㅅ 초등학교' △사퇴 요구하는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 △해명 기자회견을 연 정청래 통합민주당 의원 △경위서를 가진 서울 서부교육청 △당시 참석한 학부모 등이다.

즉 논란의 핵심은 '막말의 진위 공방'과 이후 '반론 정정보도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진실게임'의 내용을 7일자 방송3사 메인뉴스에서는 각기 다른 구성으로 처리했다.

▲ 4월7일 KBS <뉴스9>
KBS <9뉴스>는 ''막말 주장' 파문' 보도에서 초등학교 행사장에 찾아가 당시 상황을 전하며 학부모 녹취를 싣는다.

당시 참가 학부모: "막 큰 소리로 떠들었지요. 분위기가 굉장히 안좋았지요. 앞 줄에 있는 엄마들은 뭐야 뭐 저렇게 얘기를 해. 교감한테..."

이어 조선일보 자료를 인용해 서울교육청의 당시 상황을 기록한 김 교감 경위서 중 '막말' 부분을 보여주고, 정청래 의원의 "(해당 초등학교가) 문건으로 반론 즉각 내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왜 반복하나"는 기자회견 장면을 다뤘다.

이후 '논란의 당사자인 교감 선생님은 나흘째 잠적했고 파문은 교육계로 확산 되고 있다'며 학부모의 반발로 폐쇄된 초등학교 홈페이지 등을 자료화면으로 방영하고 교육단체 등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는 멘트로 마무리했다.

즉 KBS <9뉴스>는 위의 경과를 1-3-5 순서로 다루면서 한쪽 입장의 학부모 멘트를 인용했다. 반론보도를 요청한 초등학교의 입장이나 최초 논란 기사를 보도한 신문사의 입장은 전혀 없는 채로 해당 기사내용을 중심으로 전달하고 있다. 막말 진위 논란의 '현상' 전달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다.

▲ 4월 7일 SBS <8뉴스>

반면 SBS <8뉴스>는 비교적 양쪽의 입장을 골고루 전달하려는 구성을 보였다. '폭언 진실공방'에서 한나라당의 안상수 대표의 후보사태 발언을 담은 후 기자멘트로 일부 신문의 의혹보도 내용을 전달했다.

이어 기자는 "당사자인 교감이 잠적한 가운데 당시 상황에 대한 학부모들의 증언은 엇갈리고 있습니다"라며 익명의 전화인터뷰 내용을 방송했다.

학부모 : 교장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이나 더 못하게 하겠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짤라버린다 뭐 이런...
학부모 : 별일 아닌데 왜들 그러시는지 모르겠어요. 아무 일도 아닙니다. 오해 때문에 생긴일이니까.

이후 SBS는 정청래 의원의 기자회견 장면과 함께 "단순한 언쟁을 일부 언론이 악의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해명과 "해당 언론이 폭언이 없었다는 김 모 교감의 반론요청을 다루지 않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다뤘다.

그러니까 SBS 보도에서는 위의 경과가 4-1-3-2-5 순서로 담겨있고, 학부모 증언도 양쪽 입장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반론 정정 보도를 싣지 않고 정정 요청의 외압설을 보도한 신문사의 입장은 역시 취재하지 않았다. 이 뉴스도 막말 공방 증폭 전달에 무게를 실었다.

한편 MBC <뉴스데스크>는 정청래 의원 관련 뉴스를 다루지 않았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전국적으로 금권선거와 상호비방 등 갈수록 혼탁해지고 있다. 현재 서울 마포 을 지역은 정청래 통합민주당 의원과 한나라당 후보가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경합 지역이다. 상당히 민감한 시기에 나온 민감한 보도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부담스러운 시기에 KBS와 SBS가 간판급 뉴스프로그램에서 정청래 의원 관련 논란을 단독꼭지 보도로 결정했다. 그러면 적어도 논란의 당사자들 입장을 충분히 취재해 진상규명에 주력했어야 하지 않을까? '최초 보도 이후 반론 정정보도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반론보도 요청서를 보냈던 학교의 입장이나 반론보도를 실지 않아 비판받고 있는 신문사의 입장 등을 취재했다면 이 '진실 게임'의 베일이 좀더 벗겨졌을 테니 말이다.

의혹을 단순 전달하는데만 집중하면 진상 규명은 사라지게 된다. 해당 초등학교 교장과 신문사 등 이후 반론과 정정 보도가 다뤄지지 않은 경위에 대한 취재가 있었다면 궁금증이 한결 해소됐을 법하다. 그러나 이에 관한 정확 파악 보도는 미흡했다. 당했다는 피해자들은 많은데 가해자는 오리무중인 셈이다.

뉴스를 보니 막말은 '했다 vs 안 했다'가 나뉘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죽이기 식 보도'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왜 해당 신문사는 정정보도를 다루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물음표로 남는다. 오히려 의혹을 다룬 보도로 인해 의혹만 한층 더 가중된 느낌이다.

막판 유세전이 가열되면서 각종 공약과 흑색전이 쏟아지고 있다. 이 시기 언론은 유권자들이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책임감 있는 '검증 보도'에 주력해야 할 때다. 언론이 받아쓰기에 그치면 유권자들의 머릿 속은 혼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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