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KBS 주말연속극 <신사와 아가씨>가 가부장제 인식과 편견을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KBS 시청자위원회에서 나왔다.

<신사와 아가씨>는 여자 주인공이 14살 차이가 나는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져,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이야기다. 9월 25일 첫 방송 다음날 KBS 시청자청원 게시판에 “주인공들의 나이 설정과 과거 연출은 지탄받아 마땅한 과도한 설정”이라며 “아동성애자 미화에 일조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으며 해당 게시글은 1430명의 동의를 얻었다.

이와 관련해 김상휘 드라마4CP는 “극 중 신사와 아가씨의 나이 차이가 크고 신분 및 재산상의 차이가 있는 것은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의지와 노력을 담은 것”이라며 “연기자들의 연기나 표현을 유쾌하고 건전하게 표현되어 우려하는 아동성애자 미화 등을 떠올리게 하는 일체의 묘사나 표현은 없다”고 답했다.

9월 25일 <신사와 아가씨> 첫 화 (사진=KBS)

하지만 방송 한 달여 지난 시점인 지난달 28일, KBS 시청자위원회에서 동일한 문제가 지적됐다. 최진협 시청자위원은 “13살 여자 주인공과 27살 남자 주인공이 처음 만난 설정이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계기라고 제작진이 설명했지만, 어린아이와 성인 간의 로맨스 코드로 해석될 수 있는 장면이라는 논란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1화에서 13살의 청소년 ‘단단’과 27살 군인 ‘영국’의 첫 만남이 그려졌다. 가족 문제로 가출한 단단을 영국이 집에 데려다주었고, 두더지 게임 등을 통해 단단을 위로했다. 제작진은 “이 설정은 향후 입주가정교사와 고용주로 다시 마주칠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계기로 극중 중요한 설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 위원은 “아동 성 착취·학대가 지금 우리 사회의 평범해 보이는 이들에게 얼마나 문제의식 없이 만연되어 있는지 알게 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오히려 아동이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설렘을 느낀다는 설정 자체가 주는 문제의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최 위원은 여 주인공이 남 주인공의 입주가정교사로 일하게 되는 설정을 지적했다. 최 위원은 “여성 주인공을 주거공간이 절실한 상황으로 밀어 넣어 남성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공간에 생활하는 입주가정교사로 일하게 되는 과정은 두 주인공이 고용에 의한 위계, 나이에 의한 권력 관계 아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위계와 권력이 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낭만적인 로맨스로 삭제한다는 것은 때로 성범죄 행위자의 판타지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염려된다”고 짚었다.

이외에 가족들이 셋째 아이를 찾기 위해 잠자고 있던 입주가정교사의 방에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장면(3화) 등은 “고용관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사생활 공간마저 언제든 침범될 수 있는 위치로 그려지는 것에 대해 제작진의 문제의식이 전혀 담기지 않아 매우 우려스럽다”는 지적을 받았다.

<신사와 아가씨> 3화에 셋째 아이를 찾기 위해 가족들이 잠자고있던 가정교사 방에 한꺼번에 들어가는 장면 (사진=KBS)

최진협 위원은 "공영방송이 가족 시청자들이 많이 보는 시간대에 이러한 설정으로 가족 간의 화해와 사랑을 재연하는 것은 문제"라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결말이라고 했지만, 차가운 재벌 남성을 성취·권위·책임 등의 방식으로 구현하고, 가난하지만 밝은 여성은 따뜻함·감정·위로·돌봄·밝음 등의 도구로써 활용해 가부장제 가족에 편입되는 매우 성차별적이고 정형화된 결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술 먹고 자빠뜨려라”, “너 마흔 살 찍고 나서 선도 안 들어온다”, “이혼남 홀아비밖에 없다” 등의 여성 비하적 발언이 다수 등장하며, 재혼 가족·입양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비하와 편견이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KBS 드라마센터 측은 주의하겠다면서도 설정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건준 드라마센터장은 “저는 1화에서 나왔던 부분에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의아하게 느꼈다”며 “그냥 인연을 보여주고 꼬맹이가 가출했다고 그래서 그냥 어떤 군인이 잘해주는 정도의 느낌이라 제가 봤을 때는 전혀 성애적 표현이나 이런 것은 없었다고 보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어떤 시선에서는 그렇게 느낀 부분이 불편함을 주는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더 조심하고 더 세밀하게 살피고 있다”고 했다. 이 센터장은 “저희 프로그램의 조연출이 여성이고 감독이 대본을 꼼꼼히 살피면서 오해를 살만한 부분이 없는지 체크한다고 하는데 문제가 한번씩 되는 것 같다. 더욱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 드라마스태프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다. 진선미 위원은 “9월 16일 드라마 스태프들이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KBS와 드라마제작사 몬스터유니온을 고발했고 드라마스태프 노동자성 확인 뒤에도 제작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노동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KBS는 방송 스태프 비정규직 문제, 장시간 노동문제, 휴식권 보장,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낮은 자세로 스태프 노동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최소한의 노동법상 법적의무를 이행하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드라마센터장은 “4자협의체의 노력이 일정 부분 반영돼 드라마 제작환경에서 장시간 근로 관행이 없어졌고 구두계약 관행도 아예 사라졌다”며 "KBS도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드라마 편성시스템을 개선해 조기 라인업이 가능하도록 했고 CP책임 하에 반 사전제작을 목표로 조기에 완성도 높은 대본을 마련하고 촬영일 수도 늘리고, 촬영팀을 2팀 체제로 운영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쪽대본 또는 밤샘 촬영의 관행을 근절했다"고 답했다. 또 "외주사와의 협력을 통해 모든 스태프들이 문체부가 제시한 표준계약서를 체결하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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