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저희들이 '공공미디어연구소'라는 이름을 갖고 보낸 고심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여러 선생님들이 그 긴 이름을 만들어내는 데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저희들보다 더 멋있습니다. 앞에 당당히 '뉴라이트'를 밝히시니 말씀이죠.

저희들은 그랬었거든요. '공공성'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가는 것까지도 괜히 부담스러워 했거든요. 혹시 또 '좌파'니 어쩌니 하면서 트집을 잡지나 않을까?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 땅에서 '미디어 공공성'을 말하면 곧 '좌파'라는 초딩적 등식이 횡횡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애매하고 모호하게 '공공미디어연구소'라고 했는데 여러분들의 이름을 보니 그렇게 당당할 수 없어 참 부럽습니다. '왓따!' 입니다.

▲ 뉴라이트 방송통신정책센터 홈페이지

또 '홧팅!'입니다. 지난 3월 중순의 보도 자료를 읽어보니 기세가 대단하던데요. 저희들은 지난 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이리저리 치이고 해서 목소리가 크게 위축되었는데 세상을 향한 '뉴라이트' 여러분의 일성은 포스가 엄청났습니다.

니체가 그랬었죠? 우왕좌왕 붕붕왕왕 시장잡배 보다 정확히 말해 파리 떼처럼 몰려다니지 말고 사막의 낙타로 떠나라고요. 그래서 치열하게 자신을 연마하고, 그래서 얻은 깨달음을 울림 큰 목소리로 세계에 알리라고요. 지난 정권하에서 얼마나 갈고 닦으셨는지, 정말 단어 하나하나가 섬뜩합니다.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고 공포 그 자체입니다. 학회에서 가끔 인사 나누는 언론학자분들도 계시던데 마음 속 그렇게 깊은 원망이 쌓여 있었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사이비 시민단체? 구질서의 추종자? 실례하신 겁니다"

다 알고 있다고 하셨죠? "소위 방송귀족으로 일컫는 일부 기득권 세력과 결탁한 사이비 시민단체 인사들은 방송의 주인인 시청자들을 불모로 방송개혁의 전도사인 양 행세하면서 방송요직을 탐하고 자신들의 영달들을 꾀하였다"라고 지르셨습니다.

▲ 서울신문 4월 1일자

겸손하게 되돌아봅니다. 저도 기득권 세력과 결탁한 '사이비 시민단체 인사'로 분류되나요? 지난 10년 대체 얼마나 많은 영달을 얻었는지, 이렇게 욕먹어도 싼지요? 그렇게 미우셨나요? 제 주위에서 함께 움직이는 학생과 교수들도요? 언론연대이든 문화연대이든 저랑 함께 언론운동, 미디어운동, 문화운동하시는 분들 치고 나이나 직위와 상관없이 '사이비'라 매도되어야 할 분이 그렇게 많았나요? 아무리 운동권이 썩었다 해도 말입니다.

아닙니다. 복잡한 시민사회, 다면적인 미디어·언론 운동진영 전체를 그렇게 일방적으로 매도하시면 안 됩니다. 국가권력과 자본권력, 미디어권력과 치열하게 교전해 온 저희에 대한 명백한 모독입니다. 저희는 이거 하나 확신한 철학, 자존심을 갖고 있습니다. 권력에 반한다! 특히 저는 기본 체질 자체가 반체계적이고 반질서적이고, 비권위적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변태'라고 커밍아웃했고, 아나키스트라고 밝혔으며, 학계에서도 '딴따라'라 불리지 않습니까? 그런 저에게 '구질서의 추종자'라는 오명을 덧씌우시니 여간 섭섭하지 않습니다. 실례하신 겁니다. 자타가 인정하는 '좌파'인 저와 이론적, 철학적, 이념적으로 교제해 보지 않고, '홍위병'이니 '광대' 같은 마구잡이 수식어를 흉측하게 붙이시면 참 곤란합니다.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는 우리"는 "향후 좌파세력의 일방적인 주장과 탈법적인 압력에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반성'과 '퇴진', '중지'를 요구하셨습니다. 지난 10년의 '파행적 행위'를 반성하고, 지금의 기관장 자리에서 물러나며 특히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에 대한 공작과 음해를 중단하라"고 목청을 높이셨습니다. "방송통신정책을 정치공세와 정쟁의 수단으로 삼는 일체의 기도를 중지하라"고 했습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김진홍씨의 이름으로 난 보도자료의 결론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읽어봐도 감동적이고 스스로 흐뭇하신가요? 이성적이라 당당하고, 합리적이라 자랑스러우며, 상식적이라 거리낌이 없으신가요?

"미디어 공공성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참여인사 1차 명단을 밝힌 그 다음 보도자료도 읽어봤습니다. 내용이 짧지만, 그래도 분명하더군요. "방송통신융합시대를 맞이하여 이론 중심의 정책을 지양하고 정책당국 및 산업계와 함께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밝히셨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한 정부 관련부처에 대한 정책대안 마련에 일익을 담당할 것" 그리고 "갓 출범한 방송통신위원회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방송통신산업의 국가경쟁력 제고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문화연구자의 특기를 발휘해 봅니다. 그래서 앞선 보도 자료와 연결시켜 '상호텍스트적'으로 읽어보니 여러분들께서 '센터'에 모여 뭘 하시고자 하는지 척하니 알 수 있었습니다.

방송의 공영성·미디어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잘 못 본건가요? 방송통신위원장을 옹위하면서 그에 대한 비판을 '정치공세'적 '기도'로 규탄하시더군요. 절반을 훨씬 넘은 반대 여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우중의 저질스러운 판단이기에 뭉개버리는 게 맞나요? 그렇게 하는 게 정권의 실용주의에 보답하는 견제와 균형의 역할인가요?

우파이든 보수이든 상관없습니다. 인정하겠습니다. '뉴라이트'로서 KBS 사장을 비판하고 지상파TV를 공격하는 것도 좋습니다. 어찌 여러분들에게 독점미디어기업이 아닌 다중의 자유언론을 수호하라 하겠습니까? 공영방송과 지역방송의 보호를 통해 문화다양성을 유지하고, 미디어 공공성의 강화를 통해 민주주의 존속하자고 제안할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 조선일보 4월 3일자

그렇지만 일반 다중이 납득하고 수긍할만한 원칙 정도는 좀더 분명하게 밝혀주심이 어떨까요? 센터라 설립되었다는데 그게 대체 어떻게 사회에 유용하고 시민에게 유리하며 공익에 부합하는지 친절하게 소개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가권력과 자본권력, 매체권력을 위한 센터가 아니라면 표현의 자유와 검열·선전의 문제 등에 관해서도 어떤 입장을 보여주셔야죠.

"일반 다중이 납득하고 수긍할만한 원칙 정도는 밝혀주심이 어떨까요?"

혹시 미디어재벌의 사익을 위해 언론자유는 희생되어야 한다거나, 독점권력의 축적을 위해 미디어 공공성를 포기해야 한다는 논리는 아니시죠? 너무 거칠게 지르지만 마시고, 시민과 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어떤 원칙에 따라 할 것인지 좀 더 확실히 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자유'와 '민주', '시장'은 결코 여러분의 독점물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혹 여러분의 대화 상대로 어울리지 않나요? 저까지도 보기 싫은 건가요? 그렇더라도 완전히 배제하고 제낄 수 있을까요? 어차피 '전문가'들로 진용을 짜셨다면 밀실에서 따로 놀지 않는 한 저희들과 공개적이고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각자 일리 있는 논리와 타당한 철학, 합리적 대안을 생성코자 노력하고, 이를 기초로 치열하게 담론·이론적으로 교전하는 그런 민주적 게임을 펼쳐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희들이 그렇게 할 의사가 없다거나, 있어도 내공이 모자란다고 하시지는 마십시오.

<미디어스>의 제 인터뷰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저나 공공미디어연구소는 누구와도 만날 용의가 있습니다. 국가와 자본, 그리고 여러분 '뉴라이트'에게도 대화는 개방되어 있습니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주변에서 괜히 여러분을 띄어주는 게 아닌가 우스개 소리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몇몇 지면에서 우리를 매치시켜주는데 좀더 열심히 교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멋지게 이론과 철학, 담론과 대안의 다툼을 펼쳐 봅시다. 승패는 인·민 다중이 판단할거고, 우리는 전문가와 지식인의 책무에 걸맞게 씩씩한 선수로 나서면 되겠죠. 더티 플레이나 파울은 피하고, 양식·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임하며, 사회적 공익의 판정에 따른다는 게임 규칙을 분명히 하고 말이죠.

토론회 준비에 바쁘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다음에는 저희도 꼭 초대해 주십시오. 저희도 좋은 자리 곧 마련하겠습니다. 그럼 만남 때까지 서로 정진하기로 하고, 멋진 조우를 기대합니다. 평등·평화·평온.

지금처럼 '비평의 무기'를 예리하게 연마하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할 때가 있을까? 벼락같은 이성의 도끼질, 결을 거스른 감수성의 대패질에 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래디컬’한 저널리스트로의 변신. 자본권력과 국가권력, 매체권력, 지식권력이 나의 상대다. 가끔 참패당하고 때로는 붙잡고 버티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왼손펀치 한방을 가진 선수로 남고 싶다. 인민은 착하고 또 무섭다. 이들과 함께하는 비평 말고 그 어떤 것이 후기근대, 후기자본의 불모지대를 넘어갈 수 있겠나? 목청 낮춘 채 예의주시하는 보통사람들의 삶, 이들의 언어에 스며들어 비평의 유격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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