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장영] 희대의 역사왜곡 드라마가 나오며 조기종영했던 SBS로서는 <홍천기>를 방송하기 전부터 이 부분에 경계심을 가졌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배경이 과거 어느 시점이라고 추측만 가능할 뿐 신이 지배하는 세상이란 설정은 역사적 사실과 가치를 무의미하게 하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설정은 역사왜곡 논란에서 비껴갈 수 있는 최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왕이 등장하고 이를 통해 운명이 되어버린 남녀의 사랑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굳이 시대극이 아니어도 제작이 가능했다. 태어나자마자 마왕의 저주를 받은 아이들은 그렇게 운명이 되었다. 삼신할망으로 인해 그들의 운명은 태어나는 순간 정해졌기 때문이다.

SBS 월화드라마 <홍천기>

석척기우제를 통해 어린아이들의 운명을 다시 한번 바꾸고 그렇게 성인이 된 그들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엮여 마왕을 봉인하는 과정을 다룬 것이 드라마 <홍천기>였다. 태어나는 순간 마왕의 저주를 받은 여성 화공이 그 시대를 버텨내며 드디어 운영의 짝과 행복한 결말을 맺는 과정은 흥미로울 수 있었다.

최근 흐름이 남성 중심에서 벗어나 여성의 서사를 중심에 두는 경향이 있고 제목마저 여성 캐릭터인 <홍천기>라는 점에서 이에 부합하는 재미를 줄 것으로 기대했다. 중반까지는 홍천기의 다양한 모습들이 등장하며 제법 그 흐름을 따라가는 듯했지만, 후반부로 들어서며 진부함을 넘어 고집스러움만 가득한 이야기로 변질되었다.

남자에게 순종적인 캐릭터로 전락한 천기는 오직 하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바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사랑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작가는 문제를 만들고 그로 인해 위기를 극대화시키는 존재로 여성 캐릭터를 활용했다. 천기는 문제만 만들고 이를 뒷수습하는 하람은 많은 것들을 잃고 위기에 처하는 상황들이 반복된다.

SBS 월화드라마 <홍천기>

결과적으로 둘이 만나 결혼하고 애도 낳고 알콩달콩 잘 사니 그것으로 끝이라는 무책임한 이야기는 최악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매향이라는 인물 역시 어떤 캐릭터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부패한 권력에 맞서는 존재처럼 그려졌던 매향이 어느 순간 주향과 손을 잡고 국가 전복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황당하다.

마지막 장면에 매향과 그가 이끄는 패거리가 하나가 되어 주향을 구하고 양명과 싸우는 장면으로 마무리하는 과정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정도 시청률이 나온 것은 채널과 스타 출연진에 대한 충성도가 만든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초반 나쁘지 않은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신이 등장하고 이를 통해 보다 입체적인 이야기가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는 중반을 넘어서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문제가 생기면 신이 개입하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이야기는 구성 능력이 부족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SBS 월화드라마 <홍천기>

짜임새가 틀어지고, 이야기를 끌어갈 힘을 잃으면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삼신할망이 투신하듯 마왕의 멱살을 잡고 어용에 들어가 스스로 봉인되는 과정이나 화차가 천기와 거래를 통해 어용을 흡수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은 무의미하게 다가온다. 배우들의 역량 역시 제대로 살아날 수 없었고, 주변부의 이야기도 중구난방에 어설프게 전개되며 마무리도 제대로 하지 않는 부실함은 아쉽게 다가온다.

김은희 작가의 신작 <지리산>의 당황스러움과 함께 중국 자본에 판매된 작품들의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한국 작품들과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 <홍천기>은 K-드라마가 자칫 한순간 무너질 수도 있는 모래성 같은 존재일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불안함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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