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독서 낭독모임에 참여했었다. 각자 일주일 동안 읽은 책 중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과 좋았던 문장 등을 내용과 함께 이야기하는 모임이었다. 내가 가지고 갔던 책은 구병모의 <네 이웃의 식탁>이었다.

실험공동주택에 입주한 주민들의 이야기였다. 아파트에 입주하는 조건은 자녀를 셋 갖는 것으로,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것에 대한 정부의 실험적 대책으로 세워진 아파트였다. 열두 세대에 네 세대가 먼저 입주하였다. 책에선 여성의 돌봄 노동의 문제와 공동육아의 현실적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짜증 나고 화가 났다. 낮은 출산율과 주택공급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생각으로 아파트를 짓고, 입주하려면 아이 셋을 낳아야 한다는 비현실적이고 가혹한 조건이 내세운 것부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아이 셋을 낳는 것은 나중의 문제고 어쨌든 들어가고 보자는 생각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입주했다. 인프라가 전혀 조성되어 있지 않은 허허벌판에 달랑 아파트만 있었다. 집이 생겼다고 출산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돈이 있었다면 아무도 아이 셋 낳겠다는 결심을 하며 그곳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책 이야기에서 시작해 각자 처해 있는 상황, 이웃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혼자로 장성한 아들과 딸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 자식이 장성하였든 어리든 모두 결혼을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혼한다고 해도 굳이 아이를 낳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보다 차라리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하는 게 낫다는 말을 우스갯소리처럼 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집은 언제 사고, 아이는 어떻게 키울 수 있겠냐며 웃었다.

나는 예전의 부모처럼 서울에 신혼집 사줄 수 있는 재력이 없어, 그럼 자식들이 알아서 해야 하는데 그 애들은 돈이 있나? 없지. 애 낳고 키우는 데 또 어려움은 얼마나 많아. 그리고 돈은 또 얼마나 많이 들어. 차라리 강아지나 한 마리 키우며 사는 게 낫지.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서울지역 25평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10억에서 15억을 한다. 월급 200만 원을 받는 평범한 월급쟁이가 10억짜리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고 매달 41년을 저축해야 집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내 집 장만은 시작도 해보기 전에 포기해야 하는 꿈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2015년 취업시장에서 나온 신조어 중 N포세대라는 단어가 있다. 사회 상황 어려워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아진 세대를 말한다. N포세대는 연애도, 결혼도, 집 장만도 포기해야 할 뿐 아니라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뜻한다. 자발적 포기가 아닌 사회적 상황이 연애할 수 없고, 결혼도 할 수 없고, 집도 살 수 없는 생활로 내몬다는 말이다. 지금 젊은 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에서 내 집 마련, 인간관계까지 포기해야 하는 5포세대로, 꿈과 희망까지 포기해야 하는 7포세대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부모의 도움으로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소위 금수저라고 불리는 청년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들은 연애도, 결혼도, 집 장만도 포기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오직 나의 노동 소득으로만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청년과 출발선이 다르다. 부모는 조상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있고, 자식에게 재산 일부를 물려주고도 여유 있는 삶을 영유할 재력이 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집 한 채뿐이라서 아들, 딸에게 나눠주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부모를 둔 청년-주기도 받기도 서로 부담스러운-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다.

"노력해도 결국"…공정 묻는 청년들 (CG) [연합뉴스TV 제공]

‘돈을 좇지 말고 꿈을 좇아라.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돈은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어른들의 말은 당장 살 집이 없고,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청년에게 가슴에 와닿는 말이 아니다. 두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일을 좀 더 나을 거야, 라는 소박한 희망을 안고 고된 몸을 누이는 청년에게 연애하고, 결혼하고, 집을 사는 일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이보다 좀 나은 형편의 청년이라고 하여도 고등학생일 때 희망하던 꿈과 목표와 달리 대학에 진학하면서 모두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다. 꿈을 좇으며 살기 각박한 세상이라는 것을 주민등록증을 받아들면서 실감하게 된다.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번듯한 집에서 잘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투자에 눈을 돌리고 가장 이익률이 높다는 상품에 투자를 시작한다. 41년 동안 200만 원을 매달 저축해 집을 살 수는 없는 일이라 영끌(영혼을 끌어모아 투자)에 빚투(빚내어 투자)까지 하며 시작한 투자가 한 번에 날아가 더 큰 빚을 지는 경우도 많다. 투자는 여윳돈으로 하는 것이고 욕심부리면 망하는 것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지만 몇 년을 모아도 여윳돈이 생기지 않고, 주위에서는 투자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이 있고, 신문 기사를 보면 150만 원 받던 월급쟁이였던 이십 대, 삼십 대의 청년이 200억 이상의 자산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니 영끌, 빚투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게 된다.

단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N포세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더는 없을 것이고 부는 대물림되고, 가난 또한 대물림된다. 부모의 학력이 자녀의 학력으로 부모의 부가 자녀의 부로 대물림되기 때문에 빚을 안고 시작하는 청년은 그 격차를 극복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일자리 마련에만 집중되는 정책에서 벗어나 이젠 소득이 높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교육과 방안을 함께 고민하여 N포세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어야 할 때이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세대가 포기를 먼저 알아야 하는 N포세대가 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우울한 단면이며 어두운 미래다. 더는 포기하지 않고 꿈꿀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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