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이영광 객원기자] 지난 9월 여야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8인 협의체를 가동했지만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법안 처리는 무산되었고 국회는 별도의 특위를 구성해 언론중재법은 물론 정보통신망법과 신문법, 방송법 등 미디어 제도 전반에 관한 논의를 연말까지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법무법인 가로수의 김필성 변호사는 더불어민주당 추천으로 8인 협의체에 참여했다. 지난 4일 김 변호사와 전화 연결해 언론중재법에 대한 이야기와 처리 전망 등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김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여야가 국회 내 별도의 특위를 구성해 언론중재법은 물론 미디어 제도 전반에 대한 논의를 연말까지 계속하기로 합의했잖아요. 변호사님은 8인 협의체 참여하셨는데, 어떻게 보세요?

“전반적인 시스템을 두고 작업하는 것이 좋기는 합니다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언론중재법 개정은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는 국민적인 열망 때문에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선순위에 대해 다들 생각이 다릅니다. 그래서 국민의 인격권과 언론의 자유가 충돌하는 기본권 충돌 상황에 대한 법률인 언론중재법을 첫 개정 대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실효성 있는 대안이 나오면 좋겠지만, 일단은 지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필성 변호사 (사진=이영광 기자)

처음부터 그런 걸 했어야 하지 않나요?

“언론개혁에 대한 전체적인 논의가 필요한 건 분명하지만, 전체적인 아웃라인이 나와야 개혁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논의 범위가 너무 커지면 개혁을 추진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언론에 대한 국민적인 불만이 높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우선 진행할 수 있는 법안 개정작업부터 하려고 한 겁니다. 언론중재법은 언론개혁의 다른 주제들과는 조금 다른 법이라, 이 법을 먼저 처리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다른가요?

“지금 논의되는 개혁은 결국 국가가 주도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지만, 그 전에 이슈가 되었던 권력기관 개혁과는 전혀 다릅니다. 검찰 등 권력기관은 국가기관이니 국가가 결단하여 입법하고 실행하면 되지만, 언론기관은 국가기관이 아니고, 언론의 자유라는 우월한 기본권의 주체이기 때문에 국가 주도의 개혁은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언론중재법은 국가가 언론에 직접 개입하는 법이 아닙니다. 언론의 자유 기본권의 주체인 언론기관과 헌법상 인정되는 또 다른 기본권인 인격권의 주체인 국민 사이의 충돌에 대한 법입니다. 언론의 자유와 인격권이 충돌하는 경우를 규율하는 법이죠. 이렇게 두 개의 기본권이 충돌하는 경우를 기본권 충돌이라고 부릅니다

헌법 제21조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헌법 제21조 4항에서는 언론 등이 국민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없고,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에는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인격권을 침해하면 안 된다는 한계 역시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언론중재법은 이렇게 충돌하는 기본권들 사이를 조정하는 법률입니다.”

그러나 언론에서 주로 다루는 대상은 일반인이 아니잖아요. 권력자의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요.

“권력자도 기본권의 주체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자신의 인격권을 침해받았을 경우 마찬가지로 구제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지금 논의된 언론중재법 법안에서는 권력자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권력자 등의 악용 가능성에 대해 너무 염려들을 많이 해서 들어간 규정입니다. 이렇게 소 제기 자체를 막는 안전장치를 마련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입법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무고 범죄의 위험이 있으니 형사처벌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말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권력자들이 형사 고소나 고발을 많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사처벌 자체를 없애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 때 비선 실세인 최서원 씨 같은 경우 일반인이잖아요. 그럼 소 제기할 수 있죠. 그리고 대형교회 담임 목사 비리가 있어서 보도해도 소 제기할 수 있지 않나요?

“그건 지금도 형법상 고소하는 게 가능해요. 언론중재법 30조는 이미 있는 법이고 민법 750조에서 소 제기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해요. 징벌적 손배제가 도입된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요.”

언론중재법 (PG) Ⓒ연합뉴스

언론중재법에 대해 우리나라 언론 단체는 물론 유엔이나 국경없는기자회 등에서도 언론자유 침해를 우려하는 건 어떻게 보세요?

“이건 저도 이유가 좀 궁금했는데요. 아마도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사정이나 법안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가 큰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유엔 인권 이사 등이 얘기한 내용은 사실이 아닌 내용을 보도하는 것에 대해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것이 지나치다는 얘기죠. 제대로 취재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니었던 경우도 징벌적 손해배상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맞은 지적입니다. 그래서 그런 경우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안 돼요.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려면 고의 중과실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일부러 작정하고 사실이 아닌 내용을 보도했거나, 누가 봐도 믿기 어려운 사실을 아무런 검증 없이 보도했을 때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됩니다. 기자가 잘 취재하고 반론도 듣고 사실 여부도 확인해서 보도했어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틀렸어요. 이런 경우에는 아예 대상이 아닙니다. 유엔이나 언론 등도 이런 경우가 징벌적 손해배상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고의 중과실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닌가요?

“아닙니다. 고의 중과실은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가장 잘 정립되어 있는 개념입니다. 고의나 중과실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형법 체계가 다 무너져야 합니다. 우리나라 형법은 기본적으로 고의만 처벌합니다. 고의 개념이 불분명하다면 형법 체계 자체가 불분명한 것이 됩니다.

중과실과 경과실의 구분 역시 법상 명백해요. 예를 들면 중과실의 경우에만 처벌하는 중과실치상죄라는 규정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과실치상과 중과실 치상을 다르게 처벌하는 겁니다. 그런데 중과실 개념이 애매하다면 과실치상과 중과실 치상을 구분하는 것도 애매하다고 봐야 합니다. 명확성 원칙이 가장 엄격하게 적용되는 형법의 경우도 이렇습니다. 언론중재법은 민사법에 해당하는데, 민법에서도 고의‧중과실‧경과실은 정확한 개념이고, 이를 구분하는 규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의나 중과실이 애매한 개념이라면 그런 규정들이 모두 문제라는 말이 됩니다.”

예를 들어 2008년 <PD수첩> 광우병 보도가 이 법에 안 걸리나요?

“광우병 보도는 안 걸리죠. 당시에 그 보도 내용대로 믿을 만한 충분한 상황이 있었고 그런 문제를 공론화할 근거도 있었으니까요. 광우병 보도가 징벌적 손해배상 문제가 되려면 당시 <PD수첩> PD들이 광우병에 대한 내용이 전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악의적으로 허위 보도를 했어야 합니다. 그런 거 아니잖아요.”

이명박 정부라도 안 된다는 건가요?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제도라면 대통령이 누구나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언론중재법은 언론기관과 개인 사이의 문제입니다. 법원에서 민법 법리에 따라 판단합니다. 그러니 이명박 정부라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전횡할 수는 없습니다.”

언론현업단체는 언론중재법이 통과될 경우 언론사가 징벌적 손배 대상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한다는 건데.

“언론중재법이 규율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면 됩니다. 언론중재법만이 아니라 모든 법률은 그 법률이 금지하는 일을 하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살인죄 처벌 규정이 있으니 사람을 죽이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효과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언론중재법의 징벌적 손해배상은 고의나 중과실로 허위보도를 하는 경우에 적용됩니다. 일부러 허위보도를 하거나, 그러니까 ‘이걸 몰랐을 리가 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하게 무책임한 보도를 한 경우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자가 어떤 정부 정책을 입수해서 보도했어요. 그런데 정부는 반발이 크니 그런 정책 검토한 적 없다고 하고 그 정책 추진 안 하면요?

”그런 경우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문제 될 수 없습니다. 일단 정부는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 보도 때문에 피해 본 개인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한 특별한 경우를 생각해보죠. 그 보도 당시 기자는 근거가 있으니까 보도했을 겁니다. 그러니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가 들어오면, 이러저러하게 알아보고 취재한 것이라고 밝히면 됩니다. 실제로 정부가 그런 정책을 추진했던 경우이니 근거는 충분히 남아있을 겁니다. 그런 경우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문제 될 수 없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우리나라 언론 신뢰도가 세계에서 꼴찌라고 하는데, 2021년엔 미국이 최하위를 차지했습니다(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디지털뉴스 리포트 2021’). 미국은 징벌적 손배제가 없어서 꼴찌일까요? 아니잖아요.

“언론의 신뢰도 문제가 징벌적 손해배상으로만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근본적으로 언론시장이 건전한지, 언론사가 어떤 식으로 수익을 얻는지, 언론시장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등을 다 고려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지금 추진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만으로 우리나라 언론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론중재법 개정은 언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작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언론의 무책임한 허위 보도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우리 헌법 제21조 제4항이 인격권과 언론의 자유 사이의 충돌 문제에 대해서 명문으로 규정하여 이런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응할 헌법적 의미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시작된 겁니다. 앞으로 언론중재법만이 아니라 여러 제도적 개혁을 통해서 언론의 신뢰도가 올라갈 환경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오른쪽)와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재논의하는 내용의 합의문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한 달간 8인 협의체가 가동됐는데 어떤 논의가 오갔나요?

“언론중재법 관련해 크게 세 가지 문제가 논의되었습니다. 계속 이야기된 징벌적 손해배상, 배액 배상이라고도 부르는 제도에 대한 논의, 기사의 열람 차단 청구권에 대한 논의, 그리고 반론 보도나 정정 보도 등이 청구되면 그 사실을 언론사에서 표시하는 제도에 대한 논의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언론사의 표시 제도의 경우, 이미 포털에서는 청구가 들어온 사실을 표시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는데, 이런 표시를 언론사에서도 하도록 규정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 주제의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8인 협의체 논의 과정에서 아쉬운 점은?

“협상이 처음부터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협상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생각이 공통적인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민주당은 적극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반면, 국민의 힘은 징벌적 손해배상 등의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언론의 문제점 등에 대해서는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습니다만 제도 개혁에 대해서는 입장차를 전혀 좁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협의가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도의 특위를 구성해 언론중재법은 물론 미디어 제도 전반에 대한 논의를 연말까지 계속하기로 했는데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만 솔직히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정보통신망법, 신문법, 방송법 등 관련 법안을 모두 한 번에 처리하겠다는 말인데,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을 겁니다. 8인 협의체를 하면서 느꼈던 것처럼 여야의 입장차가 너무 커서 협의가 가능할지도 의문입니다. 그렇지만 언론개혁 문제에 관심을 갖고 관여하기도 했던 제 입장에서는 이번에 합의안이 잘 나와서 적절한 결론에 도달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앞으로 주목해볼 포인트는 뭘까요?

“실제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합의안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이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지도 지켜봐야 합니다. 8인 협의체의 협의 과정에서 했던 이야기인데, 만약 민주당의 개혁안에 반대한다면 다른 대안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에 반대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이 의도하는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면서 더 나은 대안이 무엇인지 제시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인격권과 언론의 자유의 충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다른 대안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후 다시 논의한다고 하니 이 과정에서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충분한 논의와 대안이 제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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