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대선기간에 언론이 자주 혼용해서 쓰는 단어가 있다. 대선주자와 대권주자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대권이란 말은 권한에 집중돼 있는 왕조주의적 표현”이라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대권이라는 말은 권한에 집중돼 있는 표현이다. 큰 권한을 가지려는 사람들이란 의미”라며 “대통령은 권한보다 의무에 집중돼 있어야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언론들이 '대권주자'란 표현을 사용하는 모습. (사진=네이버)

신 교수는 "1992년 이태숙 씨가 미디어 비평 잡지에서 ‘대권 주자, 대선도전’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며 "대권주자라 불리다보면 후보자들이 ‘내가 도전하는 건 큰 권한’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대통령 당선인'이란 표현도 잘못됐다고 했다. 2008년 17대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당선자 측은 본인을 당선자가 아닌 당선인으로 불러달라고 언론에 주문했다. 공직선거법에 '당선인'으로 나와있다는 게 근거였다.

신 교수는 “후보자일 때는 가만히 있다가 유권자들이 뽑아서 당선자를 만들어줬더니 갑자기 ’나를 당선인이라고 불러라‘고 말했다"며 "이는 위헌"이라고 말했다. 선거법에 기초가 되는 헌법에는 '당선자'로 표현됐다. 헌법 제67조는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에 의해 선출하며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위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68조 2항에도 마찬가지다.

또한 신 교수는 ’당선자‘의 '자'는 비칭이 아니라고 말했다. “더 놀라운 건 이러한 요구를 점검하지도 않고 바로 수용해서 언론이 당선자를 당선인으로 신속하게 바꾼 점”이라며 “언론이 누구의 심기를 살피는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신 교수는 “자가 불편하면 놈 자가 아닌 사람 자로 바꿔 부르면 된다”고 했다. 者는 ’놈, 사람, 물건‘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밖에 신 교수는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는 차별주의적 요소가 있다고 짚었다. 서비스업에서 주로 나타나는 지나친 높임 표현이 대표적이다. “이쪽으로 앉으실게요”, “손님 이리로 이동하실게요”, “아메리카노 나오십니다” 등이다.

신 교수는 “통상 우리는 상대방에게 명령문을 쓰지만 듣는 이가 불편해하니 틀린 줄 알면서도 높임을 쓰는 것”이라며 “일상의 갑질이다. 이런 표현이 많이 들린다는 건 듣는 이가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당신 몇 살이야” 등 나이를 묻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신 교수는 “언어의 기준은 우리가 만드는데 신분제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나이가 차지하게 됐다”며 “한국어는 높임말을 사용하기에 상대를 존중한다고 하지만 반대로 어린 사람에게는 반말을 한다. 나보다 아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우리는 나이로 위아래 사람을 줄세우며 ’선량한 연령차별주의자‘가 되는 게 아닐까”라며 “높임말이 좋은 문화가 되려면 다같이 서로에게 높임말을 써 야한다”고 했다.

2018년 <언어의 줄다리기>에 이어 지난달 신작 <언어의 높이뛰기>를 출간한 신 교수는 “언어에 민감해지면 언어 사용을 조심하게 된다”며 “20년 동안 ’언어의 감수성‘을 높이자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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