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SBS 경영진이 초유의 무단협 사태와 관련해 “경영진 임명동의제는 노조위원장이 인사권·경영권을 수시로 침해할 수 있는 제도”라며 “노조가 10.13 합의 내용(임명동의제)에만 집착한다면 그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직원들의 불이익에 대한 모든 책임은 노조에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지난 3일자로 SBS 노사 단체협약이 해지됐다. 16차례 실무교섭과 2차례 본교섭이 이뤄졌지만, 노사는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노조는 사장 임명동의제를 대체할 양보안을 제시했지만 사측은 “단협과 임명동의제 논의는 별도로 하자”며 거부했다.

(출처=SBS노보)

SBS 경영진은 5일 오후 입장문을 통해 단협 해지 경위를 설명했다. 경영진은 “전임 노조위원장이 틀어놓은 노사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라며 “10.13 합의를 근거로 단협에 들어가게 된 ‘경영진 임명동의제 조항’을 삭제해달라고 노조에 요구했지만 당시 노조 집행부는 제도를 강화하자는 주장만 되풀이해 단체협약 해지를 통고했다”고 밝혔다.

SBS 경영진은 ‘임명동의제’에 대해 “노조가 회사의 인사권, 경영권을 심대하게 침해할 뿐 아니라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한 전 세계 언론사와 국내 언론사 어디에도 ‘경영진 임명동의제’를 도입한 곳은 없다고 덧붙였다.

SBS 경영진은 앞서 두 차례 사장 임명동의제를 실시한 결과 임명동의제가 ‘노조위원장 동의제’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노조가 직원들의 임명동의를 통과한 사장을 대상으로 6개월 동안 퇴진 운동을 벌인 것이 증거라고 했다.

SBS 경영진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든 민영기업에서 경영진 인사권은 법적으로 이사회와 주주에게 있다”며 “10.13 합의는 노조의 일방적 파기로 인해 완전히 소멸됐으며, 노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10.13 합의 내용에만 집착한다면 그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직원들의 불이익에 대한 모든 책임은 노조에 있다”고 경고했다.

"부적합 인사 거부권을 제한적으로 행사하는 것일뿐"

과연 경영진의 주장처럼 ‘경영진 임명동의제’가 ‘노조위원장 동의제’였을까. 사장 임명동의제는 2017년 보수 정권 시절 대주주의 방송 사유화 논란이 불거지자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제도적 장치로 도입됐다.

SBS 사장 임명동의제는 반대표가 재적 인원 60%를 넘어야 임명을 철회하는 방식으로 과반수 투표에 과반수 찬성이라는 타사 임명동의제와 비교해 수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정훈 사장은 2017년과 2019년 두 차례 임명동의제를 통과했다. 노조는 두 번째 사장 임명동의제가 실시된 이후 임명동의제 방식을 ‘최소 40% 찬성’으로 바꾸고 ‘투표결과를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2018년 11월 이뤄진 사장 임명동의 투표결과를 두고 SBS 내에서 ‘재적 인원의 60% 반대’라는 기준 탓에 박정훈 사장의 연임이 가능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투표 결과는 비공개였다. 차기 사장은 임명동의제를 거치지 않고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 박정훈 현 사장의 임기는 내년 3월 26일 만료된다. SBS 내부에서는 박정훈 사장의 연임설이 제기되고 있다.

‘재적 60% 반대시 임명 철회’는 기권과 찬성표를 제외한 반대표가 60%를 넘어야 하는 반면, ‘최소 40% 찬성’은 찬반 비율을 4 대 6으로 유지하되 찬성 의견을 분명히 하자는 안이다. 사측은 노조의 제안에 대응하지 않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6일 노보에서 “임명동의제는 구성원들이 대표이사를 직접 선출하는 방식도 아니다”라며 “부적합한 인사를 임명할 경우 거부권을 제한적으로 행사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투표 미참여자는 동의로 간주하고, 재적 인원의 60%가 반대해야 임명 철회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는 것이다.

또한 “임명동의제는 SBS가 대주주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을 막고, 대주주의 사익 추구를 경계하는 경영진의 방어 장치”라며 “임명동의제는 사장 등 경영진에게도 대주주의 부당한 개입이 있을 때나 내부의 부적절한 행위가 감지될 때 공정방송과 독립경영을 실현할 수 있는 명분과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로비 농성에 들어간 정형택 언론노조SBS본부장 (사진제공=SBS본부)

SBS본부는 ‘임명동의제는 인사권·경영권을 위축시키는 제도’라는 사측의 주장에 대해 “경영진에 의해 보도가 좌우됐던 부끄러운 사실은 구성원의 기억과 노보에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며 “SBS는 보도준칙, 편성위원회, 상향평가제, 본부장 중간평가제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보도 참사와 제작 자율성 침해가 이어졌고 소유경영 분리 선언도 반복됐다”고 반박했다.

SBS본부는 5일부터 본사 로비 농성에 들어갔다. 정형택 SBS본부장은 “많은 조합원들이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에 이어 노조의 존재를 부정하고 위협하는 사측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쟁취한 투쟁의 결과를 양보한 노조에 대해서도 매섭게 질타했다”며 “사측이 전체 구성원들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일 때까지 지금의 자리에서 조합원 한 분 한 분의 의견을 직접 듣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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