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80년대를 살아가는 낙후된 족속들

투표 안한지 꽤 됐습니다. 투표권이 생기기 이전에 ‘운동’이란 것에 관심을 갖게 된 요즘 20대 중엔 선거 자체에 무감한 이들이 꽤 있습니다. 한총련 의장 선거 무산과 같이 학생운동이 조직적으로 붕괴하는 모습에는 언론이 꽤 관심을 갖지만, 조직운동 이외의 진보적 학생들의 정치적 선택은 언제나 언론의 관심 밖입니다. 그러니 대개의 경우 아예 없는 사람들이 됩니다. 2002년 대선 때 권영길 후보 찍었던 것이 유일한 선거 참여였습니다.

사회운동을 시작하기 이전에 왠지 조금 더 진보적인 것 같아지는 기분에, 스스로 으쓱하는 마음에 민주노동당 당원이 됐습니다. 진짜로 잘 몰랐지만, ‘부유세’, ‘무상의료․무상교육’의 구호는 왠지 가슴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 사회단체 활동을 시작한 것이 2002년 이었습니다. 제가 진짜 민주노동당의 실체를 알게 된 것 아마 그때부터일 겁니다.

학생운동 조직을 경험하지 않았던 저는 ‘정파’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설프게 읽었던 몇 권의 책 덕분에 간신히 NL과 PD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구분할 정도였습니다. 제가 사회단체 활동을 하며 만난 민주노동당은 ‘정치운동’이란 것에 환멸을 가질 정도로 후졌습니다. 국가보안법 반대 투쟁을 담당했던 민주노동당 당직자는 언제나 ‘사상과 양심의 자유’보다 먼저 ‘한미동맹 해체와 냉전적 남북 대결 구도 해소’를 말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615 선언’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짜증났었습니다.

▲ 경향신문 2월13일자 8면.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의 태도는 한결 같았습니다. 언제나 집회는 미대사관 앞에서 끝나야 힘있게 정리되는 것이라고 우겼고, 송두율 ‘교수’가 간첩이면 어떠냐는 어느 술자리의 농담에는 송두율 ‘선생님’은 절대 간첩이 아니라고 정색하여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었습니다. 평택 미군기지 반대 투쟁의 이유도 ‘한미동맹 해체’였고, 한미FTA 반대 투쟁의 구호도 ‘한미동맹 해체’였습니다. 그들에겐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과 ‘자본의 세계화 반대’는 언제나 그 다음 구호였고, 구색을 맞추는 당위 이상이 못되었습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차이가 샛강이라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는 한강이라고 스스로를 개혁과 진보로 구분하긴 했지만 제가 보기엔 민주노동당은 80년대를 살아가는 낙후된 족속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봄이 되기 전 민주노동당을 떠났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선배들 활동가들이 민주노동당을 떠나 진보신당을 창당했습니다. 여러 가지 주장과 입장이 엇갈렸지만, 전 진보신당을 창당했던 이들의 주장이 거의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을 상징했던 심상정, 노회찬 의원이 그리고 민주노동당 역사의 산증인과 같던 주대환 전 전 정책위원장 마저 민주노동당을 떠난 것이 오늘의 민주노동당을 고스란히 설명해줍니다. ‘종북주의’ 있습니다. ‘NL의 패권주의’있습니다. 문화적으로 완전히 후집니다. 한 마디로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정책운동은 평가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7대 국회기간 동안 정세 인식과 현안 투쟁이 아닌 이른바 정책 운동을 평가한다면 민주노동당의 역할은 분명하게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17대 국회에서 미력하나마 문화정책 운동을 했던 현장 활동가 입장에서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실은 문화관광위에서 유일하고 일관되게 입장을 같이했던 동지였습니다. 열린우리당 정청래 의원실, 이광철 의원실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천영세 의원실은 보좌관들의 이름은 물론 보좌관들이 드나들었던 시기까지 기억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제가 심각한 편향일 수 있습니다. 열린우리당 싫어합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샛강만큼의 차이도 없이 완전히 같은 물이었습니다. 상류냐 하류냐의 차이겠지요. 저보다 더 많이 그리고 잘 아시는 분들이 너무 많겠지만, 정책운동이란 것이 하면 할수록 잦은 회의와 무기력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자문을 견뎌야 하는 일입니다. “근본적 사회 변혁을 꿈꾼다고 운동하는 건데,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내가 오늘 성명서 쓴다고 세상이 바뀌나”, ‘이 법에 ’할 수 있다‘를 ’해야 한다‘로 바꾸는 게 의미가 있는 건가“ 등등 매순간 간단치 않은 일 투성입니다. 그런 와중에 믿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정치‘라는 장난질을 합니다. 한나라당 간사랑 협의가 된다는 둥 안 된다는 둥. 미칠 노릇입니다. 최소한 민주노동당은 그러진 않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진보 정치의 생존 이유겠지요.

지금종 후보의 계면쩍은 인사

지금종 전 문화연대 사무총장이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4번을 받았습니다.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종 선배는 대선 한참 전에 <창조한국미래구상>이 만들어질 때, 문화연대를 떠났습니다. 그때, 많이 비웃었습니다. ‘전선을 떠나, 열린우리당 2중대가 되려는 구나.’ 지금종 선배가 결심을 밝히던 자리에서 면전에 대고 ‘깔끔하게 비웃어 주겠다’고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종 선배는 열린우리당 2중대는 되지 않을 거라며, ‘진보대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었습니다. <창조한국미래구상>은 예상대로 ‘열린우리당 2중대’가 되었습니다. 역시나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종 선배의 행보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열린우리당 2중대가 된 <창조한국미래구상>을 거세게 비판하며 여전히 ‘진보대연합’을 주창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잊고 있었는데, 이미 난파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4번을 달고 나왔습니다. 여전히 그는 ‘진보대연합’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별 쓸모는 없겠지만, 문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니 듣고 싶었습니다. 왜, 운동적으로는 사실상 평가가 끝난 민주노동당에 왜 들어갔냐고, ‘진보대연합’ 핑계를 대고 있지만 실은 국회의원 되고 싶은 거 아니냐고 한번 진하게 놀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제 심보를 우연찮게 지금종 선배가 알았고, 어느 자리에서 만나게 됐습니다. 미디어 공공성 구축의 긴 싸움을 위한 자리였습니다. 미디어 운동가들, 현업인들이 많은 자리였습니다. 판에서도 강성으로 알려진 이들을 향해 지금종 선배는 ‘민주노동당을 찍으라고는 못하지만,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절대 버리지는 않겠다’는 계면쩍은 인사를 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가?

그 자리에는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10번을 단 최문순 전 MBC 사장도 왔었습니다. 최문순 사장이 통합민주당 비례대표를 신청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지만 솔직히 시큰둥합니다. 공중파 사장으로서 별다른 진보적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던 이, 이제 거대 미디어 사장 출신으로 기억하는 것이 마땅하지, 언제까지 전 노조위원장이었던 옛날 얘기만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지 못하면 그 사람 아닌 겁니다. 최문순 사장이 한나라당에 공천 신청해도 이상할 것 별로 없습니다. 아니면 좋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국회의원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못됩니다. 정책이나 잘하면 다행이지요.

중요한 것은 아마 국회의원으로써 최문순이 앞으로 보여줄 역량과 개혁성이겠지요. 최문순이 잘할 수 있을까요? 것도 별로 기대가 안 됩니다. 17대 국회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랍시고 영입되어 국회의원 빼지 달았던 이들은 전형적인 놈현스러움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도 알만큼 안다’는 태도로 뒷구멍에서 앞으로 뒤로 로비나 하는 협잡꾼들이었습니다. 아마도 그쪽 문화가 그런 모양입니다.

최문순과 지금종, 누가 미디어 정책을 잘 할 것인가?

최문순 사장과 지금종 선배 중에서 누가 미디어 정책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지금종 선배가 몇 배는 날거라 확신합니다. 최문순 사장이 당장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계획 말고, 18대 국회에서 미디어 정책을 어떻게 하겠다는 공약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기론 지금종 선배는 그걸 최소한 고민은 하고 있습니다. 언론노조를 살피고 언론연대와 협의하고 그간의 미디어 운동 진영이 주장했던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태도의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17대 국회가 보여줍니다. 방통위원 추천 과정에서 보여준 통합민주당의 행태가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역시나 투표는 안 할 생각입니다. 아쉽게도 개인적으로는 지금종 선배가 절 투표장에 이끌 만큼 매혹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투표 하실 분 가운데서 특히 언론 정책과 관련해서 선거가 관심 있으신 분들 중에서, 선거 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 한미FTA로 인한 미디어 시장의 완전 개방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퍼블릭엑세스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신문방송의 겸용은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 지역 언론이 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KBS2, MBC의 공영 방송 체제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투표장에 가서 지금종 후보를 위해 투표하는 것이 이해관계에 따른 계급적 정파성에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최문순 후보는 그걸 하지 못합니다. 너무 안타깝지만 진보신당에는 이 부분에 관심 있는 사람이 별로 안 보입니다.

막 돼먹은 편파적 글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혹시, 막상 지금종 후보가 의원이 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쩌겠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지금종 의원을 물어뜯겠습니다. 제가 힘이 부족하니 주변에 힘 있는 사람들까지 물고 늘어지겠습니다. 정히, 그래도 안 되면... 뭐, 어쩔 수 없지요. 투표 잘 못한 것이 어디 한두 번 아니잖습니까. 다음엔 더 잘 하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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