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이 신년 기자간담회를 통해 선거연합을 강하게 주장한 게 화제가 되고 있다. FTA 반대 투쟁 이후 국회에 등원한 민주당을 비난하던 통합진보당이 나름의 중요한 한 발을 내딛은 것이기에 더 그런 것 같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이 주장한 선거연합의 방식이 실제 실현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일부 존재하는 것 같다. 통합진보당이 주장하고 있는 선거연합의 방식은 정치제도 개혁의 방향에 대해 독일식정당명부비례대표제에 대한 합의를 우선하고 2012년 총선에서의 선거연합도 이 제도를 고려한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17일 오후 국회 통합진보당을 방문해 이정희 공동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독일식정당명부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을 합산해 전체 정당득표에 따라 비례의석을 배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며 지역구에서 원하는 인물을 국회로 보내는 동시에 정당이 받는 지지 만큼의 의석수 배분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오래 전부터 진보정당에서 주장해온 선거제도이다. 이 제도에 담겨있는 정신으로 선거연합을 하려면 진보정당이 받는 정당지지율 만큼 지역구 의석을 배려해줘야 한다는 게 통합진보당 측의 주장이다.

한 발을 내딛은 진보통합당, 민주당은 화답할 수 있을까?

통합진보당의 제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중앙당 수준에서 강제력을 발휘하는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대전제일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대부분 양보를 받는 입장일 것이므로 아무래도 주목해야 할 것은 민주통합당이 이러한 강제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일 텐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것은 불가능한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우선 민주통합당의 지도부 선거를 통해 드러난 당 내 역학구도를 보자. 민주통합당의 내부 정치는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 지지 세력과 호남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세력으로 나뉘어 갈등을 빚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번 지도부 선거는 이 두 세력이 사실상 다시 맞부딪친 것으로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 지지층보다 친노와 같은 새로운 세력이 우위를 점하게 된 상황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총선을 준비하려면 이긴 쪽에서 일종의 탕평책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만에 하나 총선 전에 실시될 공천 작업에서 다수파가 소수파를 배제하고 호남지역에 대한 전면적인 물갈이를 시도하려고 하면 2003년 열린우리당 처럼 당이 쪼개지거나 심각한 내홍에 휩싸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들이 그렇게 염원하던 정권교체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 되기 때문에 지도부로서는 더더욱 조심스러운 행보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공천 물갈이도 쉽지 않아 보이는 민주당 새 지도부 구성

한명숙 대표의 취임 일성이 '나는 친DJ'라고 선언하는 것이었으며 문성근 최고위원이 '친노의 부활이라고 말하는 것은 언론의 편가르기'라고 새삼스럽게 언급하는 것 등은 이제 당의 실질적인 키를 잡게 된 친노그룹이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 지지층을 포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호남에서의 소위 공천 물갈이는 시늉에 그칠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공천 물갈이도 못할 판인데 통합진보당에 지역구를 할양해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호남이 안 되면 영남이라도 배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는 것 같은데, 그것도 어려운 일일 수 있다. 2012년 총선에서 영남에서 내는 성과에 따라 친노그룹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영남을 제패하는 것은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특히 이번 총선은 영남에서의 선전을 통해 호남 고립을 깨고 전국정당화를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이것을 해낼 수 있는 당 내의 유력한 세력은 PK에 일정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는 친노그룹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이 영남에서 할 수 있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려라는 것은 상당히 제한된 수준일 것이라고 전망하는 게 상식적이다.

그렇다면 수도권은 어떤가? 수도권은 다른 곳보다 중앙정치 이슈가 크게 작동하는 지역이다. 2012년 총선의 구도가 '반MB 대 MB'로 짜여지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공천 방식은 과거 참여정부 인사들을 수도권에 전면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참여정부 주요 인사의 공천이 예상되는 곳에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려가 작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수도권은 아무리 야권에 유리한 상황이 조성되어도 한나라당과 박빙의 싸움을 벌여야 하는 지역이다. 민주통합당이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보내는 이기는 공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여기에 답할 말이 없어진다.

통합진보당의 진짜 노림수는?

즉, 통합진보당이 주장하는 방식으로의 선거연합은 일반적인 수준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2012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실현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이것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선거연합을 강력하게 주장한 통합진보당의 노림수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통합진보당은 상당 기간 동안 1~3% 수준의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는 세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는데 통합진보당이 3자통합 이후 내부정리에 골몰하느라 국민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행보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 첫 번째이며 당명만 듣고 어떤 당인지 구분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게 두 번째이다. 세 번째 이유는 민주통합당의 지도부 선거에 사람들이 큰 관심과 기대를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세간의 관심에서 배제된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이슈를 선점해서 지지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정국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통합진보당의 입장에서는 선거연합을 제안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을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이런 정도의 수준에서 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이 추진하고 있는 정치개혁이 양당 구조의 고착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들의 제안이 굳이 '제도'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은 다시 한 번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이다. 한명숙 대표와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만난 자리에서 '개방형국민경선제'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를 이룬 것은 흥미로운 부분인데, 이는 제도 그 자체가 소수당을 배제하려는 의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한국적 상황에서는 결과적으로 야권에 일종의 '빅텐트'를 강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국회 정개특위에서 여야가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석패율제도 이러한 우려를 더욱 강하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인데, 이는 고착화된 지역주의 구도를 깨야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것이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세력은 오로지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이라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석패율제를 먼저 시행한 일본에서는 이것이 '정치계 원로 및 중진'을 구제하는 제도가 되어 계파정치를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은 이 제도가 가진 부정적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의 강력한 근거가 된다.

결국 통합진보당의 제안은 선거연합을 하자는 것보다는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대한 개입의 근거를 만드는 데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선거제도 개혁이 양당구도를 고착화 시키는 쪽으로 이루어지면 2012년의 공동전선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명숙 대표와 민주통합당 정치인들이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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