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경영 KBS 기자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고발했던 <9시의 거짓말> 저자 최경영 KBS 기자가 KBS 새 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보도부문 간사로 돌아왔다.

최경영 기자는 KBS탐사보도팀 소속으로서 여러 차례 기자상을 받는 등 크게 활약했으나 정연주 KBS 사장이 불법적으로 해임됐던 2008년 당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사원행동'에서 활동하다 갑자기 '스포츠 중계팀'으로 발령나는 '보복인사'를 당한 바 있다.

2009년 여름, KBS를 휴직하고 미국 미주리대학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언론학을 공부하다 최근 복귀한 최경영 기자는 현재의 KBS에 대해 "중국 공산당의 기관지와 똑같은 모습"이라고 매섭게 비판했다.

최경영 기자는 17일 오후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왜 자꾸 우리나라 언론을 미국 언론과 비교하는지 모르겠다. 미국 언론들이 들으면 매우 화낼 일"이라며 "우리나라 언론이 마치 미국이나 언론자유선진국을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생각들을 하는데 이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정책에 대해 털 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비판적인 내용은 (정부 부처가 아닌) 다른 출입처 담당 기자들이 조금씩 보도하고 △정부정책으로 인한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조금씩 중심부로 진입하는 행태 등 모든 것이 중국 기관지의 모습과 똑같다는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상업주의에 물들어서 그렇지 정부 비판 보도는 정말 칼 같이 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미국판 중국 기관지인 '차이나데일리USA'도 꾸준히 읽었는데, 정말 KBS랑 똑같아요. 물론 차이나데일리USA도 경찰의 전횡, 지방 탐관오리들을 고발하기는 하죠.

하지만 결정적으로, 중앙 정부와 관련 깊은 내용은 전혀 비판하지 못합니다. (정부 정책에 대해) 토씨 하나 쉽게 건드리지 못해요. 시민단체나 야권에서 문제제기를 하면 그제서야 보도하는데, 그것도 (정부 부처가 아닌) 다른 출입처 담당 기자가 야권 발로 조금씩 보도하는 정도죠.

여당이나 대기업처럼 한국의 힘센 권력 집단을 출입하는 기자들은 회사에서 가장 똑똑한 이들인데, 과연 이들이 잘 몰라서 비판하지 않는 걸까요? 이런 식으로 '기자질'을 하는 나라가 어딨을까요? 중국, 버마, 베트남 언론과 똑같은 모습이에요. 한계가 너무나 명백합니다"

"불법도청, 언젠가 벌어질 일이었다"

최경영 기자는 미국 언론의 실제 사례를 들며, 설명을 이어갔다.

"미국의 공영방송 NPR은 전체 예산 가운데 20%를 연방정부로부터 받는데, 2011년 초 NPR을 '민주당 성향'이라고 비판하는 공화당이 20%의 예산마저 삭감하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민주당이 방어해 줘서 기존의 예산을 그대로 지원받을 수 있게 됐죠.

그즈음 민주당 출신인 오바마 대통령이 재정지출 대폭 삭감과 관련해 '미국 역사상 최대의 예산 삭감이다' '이러면 정부 일 못한다'고 말했었는데, 그때 NPR의 보도는 어땠을까요? NPR 앵커가 백악관 출입 기자와 연결해서 처음 한 질문이 뭐였는지 아세요? '오바마 대통령은 역사상 최대 삭감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인가?' 였어요. 이에 대한 백악관 출입기자의 대답은 '아니다. 요율로 따지면 이런 일이 역사상 3번 정도 있었다' 였구요. '검증'이 우선인 거죠.

이건 미국에서 이례적인 일도 아니에요. 만약 우리 같았으면 앵커가 청와대 출입기자에게 '대통령이 뭐라고 했느냐?' '대통령 발언의 의의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했을 겁니다."

최 기자는 이 사례를 설명하며, "미국 언론의 제1기능이 '검증'인데 비해 우리 언론의 제1기능은 '정부정책 선전'인 것"이라고 꼬집었다. 위의 사례는 "(수신료 인상과 관련해) 민주당이 KBS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민주통합당의 당 대표 경선 중계방송을 갑자기 취소해 버린 KBS의 행태와 매우 대조돼 더욱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사회비판 프로그램 폐지, 탐사보도팀 해체, 블랙리스트 논란, 대통령 주례연설, G20 정상회의 등 관제 홍보, 내곡동 사저 침묵 등 각종 편파 논란, 추적60분 4대강편 2주 불방, 백선엽 이승만 다큐, 그리고 불법도청 의혹까지….

최경영 기자가 자리를 비웠던 사이 KBS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불명예스러운 일들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최경영 기자는 "2008년 8월 정연주 사장을 강제로 몰아낼 당시부터 다 예상됐던 일들"이라며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고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중요한 아이템, 윗선이 막으면 전면전 벌일 것"

특히, 공영방송사 기자가 자사 이익을 위해 제1야당 회의를 불법도청했다는 의혹까지 받았던 것에 대해서는 "경영, 편집이 분리되지 않은 현재의 KBS 구조에서는 언젠가 벌어질 문제였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정치부 기자들이 대외 협력국으로 발령 나고, 대외협력부장이 다시 정치부장으로 돌아오는 현재의 인사 구조에서는 언젠가 터질 문제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 불법 도청 의혹이 제기될 때 KBS 정치부장을 맡았던 이강덕 부장은 정치부장 직전 대외협력부장으로 활동했었다. 대외협력부장으로서 KBS의 최대 현안인 수신료 인상을 위해 발 벗고 뛰었을 이가 어느날 갑자기 정치부장이 되면, KBS의 정치보도가 어느 곳을 향할지는 상식적으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정치부장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대외협력부장으로 가고, 대외협력부장이 다시 정치부장을 하는 게 말이 되나요? 왜 사장 비서실에 기자가 가있는 것일까요? 왜 기자들이 수신료 인상 걱정을 해야 할까요?

국회에서 술상무를 하는 기자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제대로 보도할 수 있을까요? 말 그대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는 거죠. 미국처럼 상업방송이 판치는 곳에서도 이런 식의 인사 발령은 내지 않아요."

최경영 기자는 "만약 어떤 은행에서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가 서로 아무런 장벽도 없이 수시로 통화하면서 주가 폭락시키고 이득을 취한 사실을 KBS 경제부가 알게 된다면 당연히 '부도덕한 모습'이라고 보도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정작 KBS는 어떤가"고 물으며 "금융기관의 부서 사이에 쳐놓은 방화벽보다 언론사의 경영 편집 방화벽이 더 못하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힘주어 말했다.

2월부터 본격적으로 공추위 간사 활동을 시작할 최경영 기자는 "매일 시민들에게 '미안하다' '부끄럽다'고만 하는 것도 좀 아니지 않느냐. 일이 다 벌어진 다음에 '사후 규탄'만 하고 싶지는 않다"며 "만약 중요한 아이템을 윗선에서 막아서 보도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전면전을 벌여서라도 보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복귀 직후 트위터(@kyung0)를 통해 KBS를 비롯한 한국 언론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최 기자는 "앞으로 1년 안에 끝장을 볼 것"이라고 강한 포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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