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방송통신발전기금(이하 방발기금)의 징수와 사용이 미디어 환경 변화와 본래 취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장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방발기금의 사용을 바로잡는 것이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아리랑TV·언론중재위원회·국악방송 등 문화체육관광부 소관기관에 연 400억 원 규모의 방발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방송통신발전기금 제도 합리화 방안 정책세미나'가 열렸다. (사진=한국방송협회)

24일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 한국언론학회가 공동주최한 '방발기금 제도 합리화 방안 정책세미나'에서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단기적으로 방발기금이 가지고 있는 핵심 문제는 용처"라고 지적했다.

이 전문위원은 "우리는 공적재원인 KBS 수신료를 얘기할 때 KBS가 어떤 자구노력을 기울였는지 입증해야 수신료 납부에 동의할 수 있다고 한다"며 "그렇다면, 방발기금의 용처가 과연 납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쓰여지고 있는가"라고 물음을 던졌다.

이 전문위원은 "아리랑TV 230억 원, 국악방송 64억 원, 언론중재위 127억 원을 합치면 420억 원이다. 지상파와 케이블이 내는 것보다 많은 액수"라며 "단기적으로 이걸 현실화하는 게 어떠냐는 것이다. 방발기금의 운영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향의 모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방발기금은 '방송통신발전기본법'상 방송통신진흥을 목적으로 한 일종의 '특별 부담금'이다. 정부가 주파수라는 제한된 공적자원을 허가 사업자에게 사용하게 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독점적 이윤을 공적으로 환원하는 의미를 갖는다. 징수 대상은 지상파, 종편·보도PP, SO, 위성방송, IPTV, 홈쇼핑, 이동통신3사 등이다.

문체부 소관 기관에 대한 방발기금 지원 논란은 2016년부터 매년 지역방송 지원과 맞물려 국회 안팎에서 불거졌다. 단적인 예로 지역방송 40여개사에 대한 방발기금 지원예산은 40억 원 수준으로, 1사당 1억 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종관 전문위원은 장기적으로 방발기금 부과 대상을 확대하거나 방발기금의 성격을 '면허료'가 아닌 '세금' 개념으로 변경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있다. 큰 영향력 발휘는 생태계와 공존에 대한 책임도 크다는 의미"라며 "장기적으로 방발기금 체계가 전체 미디어생태계와 콘텐츠를 진흥하는 방향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 전문위원은 방송·통신융합환경에 따라 미디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2000년 통합방송법에 머물러 있는 방송법 체계의 전면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전문위원은 "OTT, 포털, PP 등까지 (방발기금 징수 범위를)확장한다면 결국 '미디어'인가 판단해야 한다"며 "미디어라면 기금을 운영하는데 있어 공적책임이 필요한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영향력을 기준으로 혹은 미디어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보고 공적책무를 판단할 것인가 등의 큰 담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전기통신사업법상 부가통신사업자로 규정되는 OTT를 방송법 체계상 미디어로 규정할 것인지, OTT의 공적책무는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왼쪽), 최우정 계명대 교수 (사진=한국언론학회 유튜브 중계 갈무리)

발제를 맡은 최우정 계명대 교수는 OTT, 포털, MPP 사업자 등에 방발기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현행 법제가 방송과 통신을 분리한 사업자 중심 규율 체계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간 이 사업자들은 미디어 시장에서 경제적·저널리즘적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면서도 정작 기금은 부담하지 않고 있다는 모순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 역시 방발기금 사용의 문제점으로 아리랑TV·언론중재위원회 지원을 꼽았다. 최 교수는 국가 홍보 목적의 아리랑 TV와 언론매체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언론중재위 운용에 필요한 비용을 방발기금 지원으로 충당하는 것은 목적을 일탈한 것이라며 정부 일반회계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최 교수는 방발기금의 적절한 사용을 위해 독립적 운용기구인 가칭 '기금운용관리위원회'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최 교수는 방발기금과 정보통신진흥기금(이하 정진기금)을 통합해 '통합미디어 발전기금'을 조성하고 기금을 출연하는 사업자들이 기금운용에 참여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최우정 계명대 교수가 제시한 '미래지향적인 미디어발전기금의 방향성을 고려한 가상적 도표'

이 같은 비판에 이성훈 방통위 재정팀장은 "아리랑TV·언론중재위·국악방송 지원 문제에 대해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다"며 "국회에서도 지난 2016년 결산부터 방발기금 용처에 대한 비판이 있어 지속적으로 노력해 감액하고 있다. 계속 안고가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방통위는 올해 초 방송재원 구조개편의 일환으로 방발기금의 효율적 사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방발기금과 정진기금을 통합해 기금 운용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문체부·기획재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재원 성격에 맞지 않는 지원은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지난 1일 발표된 방통위 내년도 예산안에서 아리랑TV와 언론중재위 지원 예산은 증액됐다.

이 팀장은 "산업체계가 변화했기 때문에 기금 대상 확대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경쟁력 평가와 실제 영향력 확대 등을 인지하고 있다"며 "공적책무 부여와 사업자 형평성 제고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방발기금 징수율과 관련해 이 팀장은 3년마다 고시가 개정되는 만큼 내년도 상반기에 변경된 고시안을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세미나 인사말을 통해 민주당 한준호 의원은 "방발기금은 국민이 필수적인 방송·통신서비스를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방송통신의 진흥'을 위해서만 쓰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은 "방송사업자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는 기금 부과 기준이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되고 시장 영향력을 고려해 기금의 대상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제 MBC 사장은 "이번 예산편성 역시 방송협회장으로서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며 "지상파 공익 콘텐츠에 대한 지원은 줄고, 지역방송 예산은 동결됐다. 불합리한 용처 문제가 계속되는 이 상황을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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