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돈봉투 사건이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고승덕 의원의 폭로로 시작된 이 바람은 박희태 의장의 당 대표 경선에 대한 검찰 수사로 비화되고 동시에 당 내의 친이계들이 당권을 잡기 위해 얼마나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을 남용하였는지에 대한 비난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친이계들은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친박계 의원들도 이런 돈봉투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물귀신 작전을 펴고 있고 쇄신파들은 이 사건 때문에 또 한나라당 간판으로 수도권에서 살아남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정두언, 원희룡 의원 같은 경우 상대적으로 이 사건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통합당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주장이 있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가 자신도 이러한 일을 과거에 겪은 일이 있다는 언급을 하자 지역의 모 당협위원장이 지도부 경선에서도 돈이 오간다는 내용의 주장을 한 것이다. 당사자로 특정 후보가 지목되어 지도부 선거에서 상당한 피해를 봤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나라당 돈봉투 사건과 한명숙, 정연주 무죄 판결

▲ 한명숙 민주통합당 신임 당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참배한 뒤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다ⓒ연합뉴스
검찰은 한나라당의 돈봉투 사건을 수사하면서 민주통합당도 함께 수사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이 한명숙 전 총리와 정연주 KBS 전 사장에 대한 무죄판결이다. 이 판결로 검찰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무리한 기소를 진행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때문에 검찰로서는 더 이상 대중들에게 무리한, 또는 공정하지 않은 조사로 비추어질만한 일을 경계하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검찰로서는 최대한 공정한 수사를 한 것과 같은 모양새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되면 여야의 양대 거대정당이 모두 핀치에 몰리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면 아직 정당 정치의 외곽에 존재하는 안철수 교수와 같은 사람들이 정치적 이득을 보게 될 것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런 정치적 상황은 진보정당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뼈아픈 것이기도 하다. 과거부터 검은 돈에서 자유로운 정치를 가장 진지하게 주장한 세력이 바로 진보정당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수양당의 타락에 대한 대안으로 진보정당을 사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아쉬움을 대중에 호소하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우리가 진보정치의 미래를 밝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 심도있는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테면 대중에게 진보정치는 검은 돈으로 부터 반드시 자유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모바일 투표 전면 시행은 돈 문제를 사라지게 할까?

민주통합당을 지지하는 정치개혁론자들은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모바일 투표'의 전면적인 시행을 주장하기도 한다. 돈 문제는 결국 '조직동원'이 반드시 필요한 오프라인 투표의 맹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만큼 모바일로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러한 돈 문제도 사라질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모바일 투표의 전면적 시행에 있어서도 의지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돈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이를테면 정말 '나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걸고 부정한 방법을 통해 전당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는 마음을 먹었다 치자. 그래서 자신의 조직을 동원해 1인당 전화기를 10대씩 산 후 투표에 개입하게 하거나, 혹은 명의도용과 대포폰을 이용한 조직적 선거개입을 하도록 유도한다면 모바일 투표를 이용한 지도부 선출 절차도 검은 돈 문제로 얼룩지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 민주통합당 모바일 투표 화면 ⓒ연합뉴스
물론 제도가 '나쁜 사람'을 막을 수는 없다. 어떤 제도를 운용하더라도 악의를 품은 사람이 그 제도를 악용해서 체제를 혼란스럽게 하는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은 늘 있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제도개선을 통해 이러한 악의가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을 계속해서 좁혀 나가려는 노력이 늘 필요하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진보정당에서 채택하고 있는 '진성당원제'를 보자. 진성당원제는 오랫동안 진보정당이 보수정치에 대한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의 근거로 자랑해왔던 것이다. 보수정치가 기업으로부터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후원받아 조직을 유지하면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것과는 달리 진보정당은 당원의 당비로만 운영되므로 약자를 위해 더욱 당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 진성당원제라는 제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진보정당 내에서도 보수정당의 '돈 정치'에 비견할 수 있는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특정 당원협의회의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당비를 대납하고 특정 정파의 당원들이 집단으로 입당하는 사건 등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결국 진성당원제를 채택한 정당이라 하더라도 운용을 하는 방식에 따라서 보수정치와 차별성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보수정당이 다 그렇지 뭐!" 를 넘어서는 정치의 대안은?

물론 진보정당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보수정당의 '돈 정치'와 기계적으로 비교하고 이에 대해 동일한 수준의 비난을 하는 것은 위험한 사고일 수 있다. 보수정당이 전당대회를 치를 때 20억, 30억씩 돈을 써대는 것과 비교하면 진보정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야말로 '애교'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또한 보수정당의 내부정치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는 권력을 놓고 벌어지는 혈투에 가까운 것이라고 한다면 진보정당의 내부정치는 자신이 가진 신념의 실현에 방점이 찍히는 경우가 더 많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는 것도 양비론적 태도를 경계해야 하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진보정당의 규모가 커지고 점점 권력의 핵심에 다가가면 다가갈 수록 이러한 문제는 보수정당과 동일한 수준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다. 동원해야 하는 조직원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고 결국에는 보수정당들이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을 실어 나르며 조직투표를 강요하는 것과 똑같은 행태를 벌이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때문에 진보정당은 언제나 이러한 사태를 경계하며 당 내의 올바른 민주주의가 훼손되지 않도록 할 만한 여러가지 고민을 멈추지 않고 되풀이 해야만 한다. 더 이상 '진성당원제'를 알리바이로 내세우며 내부의 권력투쟁에 골몰하는 것으로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보수정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진보정당의 당원과 지지자들은 보수정치의 '돈 봉투' 사건에 대해 그저 "보수정당이 다 그렇지 뭐!" 라며 쉽게 말하기 보다는 여기에 대한 진보정당의 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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