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의 "서울시 곳간, 시민단체 전용 ATM" 발언이 학술적 논의의 장을 성토장으로 바꿔 놓았다.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는 “정부(1섹터)에 있는 오세훈 시장이 민간비영리 단체(3섹터)에 있는 시민 공동체를 비난하고 공격한 것은 시민사회 영역에 대한 부정이고 폄훼”라고 지적했다.

15일 전국마을공동체미디어연대가 창립 1주년을 맞아 <커뮤니케이션권리와 마을공동체미디어, 그리고 제3섹터>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채 교수는 이 자리에서 “오늘 발제는 학술 차원에서 하려 했지만 오 시장의 발언에 대해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말해야겠다”며 “오 시장은 시민사회에 대한 폄훼 발언을 그만두라”고 촉구했다.

전국마을공동체미디어연대와 국회 과방위원장 이원욱의원실이 주최한 전국마을공동체미디어연대 창립1주년 기념 토론회 <커뮤니케이션권리와 마을공동체미디어, 그리고 제3섹터>의 발제를 맡은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 (사진=전국마을공동체미디어연대 유튜브)

오 시장은 13일 '민간위탁·민간보조 관련 서울시 바로세우기-비정상의 정상화' 브리핑에서 마을공동체, 사회투자기금, NPO 지원센터, 사회주택 등의 사업을 시행한 시민사회단체를 겨냥해 “서울시의 곳간이 시민단체 전용 ATM(현금인출기)으로 전락했다”며 “시민 혈세를 내 주머니 쌈짓돈처럼 생각하고 시민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사익을 쫓는 행태를 청산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오 시장은 서울시가 지난 10년간 민간위탁금·민간보조금 명목으로 시민사회에 1조 원에 가까운 금액을 지원했다며 시민단체를 ‘다단계 피라미드 조직’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서울시-중간지원조직-시민단체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시민단체를 서울시 예산을 낭비하는 원흉으로 지목했다. (▶관련기사 : 오세훈 '시민단체와 전쟁', 뒷받침은 역시 조선일보에서)

마을공동체미디어를 운영하고 있는 이들은 오 시장의 발언을 반박했다. 정부(1섹터)와 시장(2섹터)이 해결하지 못하는 공익의 영역을 담당해온 민간비영리단체(3섹터)가 확장되는 추세이지만 지원금은 푼돈 수준이라는 것이다.

미디어분야의 3섹터로 대표되는 마을공동체미디어는 2012년 서울시 마을미디어 시범사업 등장 이후 양적 성장을 이뤘다. 2019년 기준 전국 마을미디어는 305개다. 이 중 라디오 매체는 142개, 영상매체는 109개, 인쇄 매체는 84개다.

최성은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소장은 “마을미디어의 확산으로 공동체미디어가 대중화됐고 마을미디어에 대한 사회적 평판은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마을공동체미디어에 대한 정책적 근거가 부족하고, 조례의 실효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며 재정적인 지원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 소장은 “실질적인 마을미디어 운영을 위해서는 사업비 지원 외 인건비와 운영비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지원방식을 다각화해 직접 지원과 더불어 간접지원 영역을 확대하고 성과중심의 지원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성은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소장이 분석한 마을공동체미디어의 주요 이슈

류홍번 시민사회활성화네트워크 위원장은 “마을공동체 미디어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재원”이라며 “한국사회의 공적재원은 활용범위가 제한적이다 보니 기부금 제도 등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 운영비 명목으로는 15% 이하로만 쓸 수 있는데 미디어 분야는 거의 다 인건비로 기부금을 받아도 쓸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종호 한국마을지원센터협의회 사무국장은 “마포FM 초대 이사장을 맡았을 때 재원이 가장 고민되는 지점이었다. 출력이 적다 보니 광고 수익이 쉽지 않았다”며 “당시 마포 구청장에게 지역신문처럼 지원해달라고 해서 2500만 원 정도 지원받았는데 이는 개별 지자체가 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별도 법안을 검토해 제대로 된 지원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지연 수원마을미디어연합 정책위원장은 “3섹터 영역에서 활동하는 단체와 개인들에게 자체적으로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라고 하는 건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서 위원장은 “수원 마을미디어연합을 만들면서 가장 오래 들어온 얘기가 ‘예산 없어’, ‘너희 해주면 다 해줘야 해’, ‘형평성에 맞지않다’는 얘기였다”며 “미래를 위해 필요한 마을 미디어가 살아남기 위해선 행정과 재원 지원이 필수다. 그런 비영리 단체에게 공공영역을 수행하며 수익을 창출하라는 건 활동가에게 무상으로 희생하라는 말과 같다”고 지적했다.

채영길 교수는 “프랑스는 290억 원을, 네덜란드는 100억 원을 공동체 미디어에 지원한다. 이는 공동체 미디어를 시민의 권리로 인정하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는 20개 라디오를 신규허가 내주며 2억 원 정도를 푼돈 쥐여주듯 시혜적으로 줬다. 이를 서울시장은 ATM 기계라고 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채 교수는 “3섹터의 제도적 권리를 위해서라도 변화해야 한다”며 공동체 미디어가 확장할 수 있는 모델로 ‘공동체 미디어의 N 섹터링’을 제안했다. 섹터내 다양한 사회경제적 조직과 주체 및 기관, 단체들이 서로 연대·협력하는 방안이다. 즉 공동체 미디어를 중심으로 시민사회 활동을 전개하는 방식으로, 3섹터내 3-1, 3-2, 3-3 등 연계된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마을공동체 등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지원을 장기적 관점에서, 인프라 구축을 위해 지원하는 돈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무형의 가치 창출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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