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ABC협회 부수공사 대안으로 제시한 ‘신문 구독자 조사’의 윤곽이 드러났다. 문체부는 10월부터 11월까지 5만 명을 대상으로 종이신문 구독률·열독률을 조사해 새로운 정부광고 집행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지역신문·소수자 관련 신문 등 영세한 신문이 통계에 잡히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영세 규모 신문을 위한 별도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체부는 지난 7월 ABC협회 부수공사의 정책적 활용 중단을 선언하면서 “종이신문 구독자 조사를 정부광고 집행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수행하고 있던 5천 명 대상 언론수용자 조사 표본을 10배 늘려 이를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언론재단은 지난달 24일 나라장터에 ‘2021 신문이용자 조사’ 입찰을 공고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7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ABC협회에 권고한 제도개선 조치사항에 대해 최종 이해 여부를 점검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입찰 안내문에 따르면 구독자 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5만 명으로 대상으로 1대 1 대인면접방식으로 진행된다. 조사원은 구독하는 종이신문이 있는지(구독률), 최근 일주일 동안 본 종이신문이 있는지(열독률) 등을 파악한다. 조사는 10월부터 11월까지 두 달간 진행되고 올해 말 결과보고서가 완성된다. 총사업예산은 7억 4천만 원이다.

하지만 5만 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로 정부광고 집행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역 일간지·주간지, 전문지, 소수자 관련 신문 등 영세한 신문사의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언론재단의 '2020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종이신문 열독률은 10.2%, 구독률은 6.3%다. 5만 명 대상 설문조사를 실시하면 종이신문 구독·열독자는 5천 명 안팎으로 집계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통해 유력 신문의 구독·열독률은 알 수 있으나, 전체적인 구독·열독률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최낙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한국지역언론학회 회장)는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서울과 지역의 종이신문 시장은 너무 큰 편차가 있다”며 “기본적인 지형이 다른데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 조사를 한다는 것은 일방적이다. 유력 일간지만 생각한다면 5만 명 대상 설문조사가 효과적일 수 있으나, 지역의 상황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최낙진 교수는 “신문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는 구독률 ·열독률이 전부가 아니다”라며 “정부광고가 지역 신문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 공산품처럼 신문을 평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구독률·열독률이 낮아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문이 있는데 이들을 단순히 통계로 평가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최 교수는 “정부광고 집행 기준을 마련할 땐 전반적인 지역 신문 생태계를 파악한 후 정밀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2008년 열린 전국 지역언론신문 모음전, 기사 본문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미디어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컨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는 “원론적으로 표본조사를 통해 정부광고 집행 기준을 마련하는 건 가능한 일”이라면서 “하지만 조사에 잡히지 않는, 구독·열독률이 낮은 신문도 독자는 있다. 영세한 규모의 신문에 어떻게 가중치를 줄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김서중 교수는 “다양한 기준을 융합해 정부광고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며 “소수자 관련 신문과 같은 작은 신문사가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정부광고 집행 기준이 특정 유력 언론에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기재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소수자 매체가 기준에서 제외된다면 정부광고의 본래 목적이 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신문 구독률·열독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구독률·열독률이 하락하면 조사 표본을 확대해야 하고, 소요 예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언론학자 A 씨는 “향후 열독률이 5%대로 하락하면 표본을 10만 명으로 늘릴 것인가”라면서 “표본을 늘린다고 정확도가 비례해서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장기화’라는 변수도 있다. ‘신문 구독자 조사’는 대인면접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조사원이 응답자를 직접 만난다면 방역 관련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찬복 입소스 상무는 지난해 10월 KIPA조사포럼 논문에서 “코로나19 위기 상황이 지금보다 심각해진다면, 조사 대상인 일반 국민의 대인 접촉에 대한 거부감이 지금보다 높아져 면접조사원의 가구방문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A 씨는 “대인 면접을 하려면 수많은 접촉이 있어야 한다”며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한다면 ‘7억 4천’이라는 예산은 너무 적게 책정됐다”고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7월 <‘사망선고’ ABC 부수 공사, 공론화로 개혁하자> 성명에서 “섣부른 개편안이 게도 구럭도 다 잃는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언론노조는 “구독자 조사 표본을 늘리겠다고 하지만 종편을 가진 신문재벌 언론사가 현재도 영향력으로 신문시장을 과점한다”며 “구독자 조사에도 이런 기울어진 지형이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가뜩이나 독자 감소에 몰린 지역 주간지·일간지가 불이익을 받을 여지가 크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언론재단 측은 “신문 구독자 조사는 광고주에게 주는 참고 자료일 뿐”이라면서 “물론 규모가 작은 언론사는 조사에 잡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부분에 대해선 별도의 정책과 대안이 필요하고,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언론재단 측은 “설문조사 표본설계를 시·군·구 단위로 내려가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재단 측은 “신문 구독자·열독자가 계속 하락하면 표본이 늘어나고, 예산이 급증할 수 있다”는 지적에 “그런 비판은 당연히 나올 수 있다. 다만 올해는 첫 조사로, 대규모 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했다. 언론재단 측은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건 없지만 조사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라며 “우선 첫 조사를 정교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재단 측은 “코로나19로 대인면접조사가 힘들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조사 방법에 대한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언론재단 측은 사업예산이 넉넉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신문을 구독·열독하지 않는 응답자가 많을 것이고, 그분들의 선물비는 아낄 수 있다. 자문 결과, 7억 4천이 많지는 않지만 적은 것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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