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권리가 있다면, 듣지 않을 권리도 있다

대선이든, 총선이든 매 선거철이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일이 있다.

각 정당들은 자신의 후보를 위해 지하철 역 근처나, 그 지역의 주요 거점에서 스피커를 통해 선거운동에 열을 올린다. 그런데 문제는 스피커의 볼륨이 높을 수록 정치에 대한 혐오지수 또한 치솟아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도심의 현대인들은 자동차 경적 소리, 공사현장에서 나오는 소음 등 각종 소음공해에 찌들어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선거철이면 각 정당의 선거공해(?)까지 시작된다. 실제로 필자의 경우, 강변역에서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 있다.

▲ 한겨레 4월2일자 12면.
정확한 데시벨을 측정해 보지는 않았지만, 선거운동원이나 각 후보들이 틀어 놓은 스피커의 소음이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수 있을 정도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 실제로 강변역은 동서울 터미널과 인접해 있어, 시외버스의 진출입이 잦은 곳이다. 그러다 보니 수시로 버스의 경적 소리가 울리는데, 이것은 베란다 창문만 잘 닫아 두어도 어느ㅈ 정도 차달할 수 있는 소음이다.

문제는 선거운동시 나는 소음인데, 이 소음의 경우 베란다 창문을 닫고, 방 창문까지 이중으로 닫아도 심한 소음이 여과없이 전달된다는 점이다. 또, 버스의 경적소리는 기껏해야 1-2분 정도 지속되다 그치는 것에 비해, 선거 운동의 소음은 '음악소리 -> 일장연설'까지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 이상, 아침 저녘은 물론 하루 온 종일 수시로 반복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런 단순 비교를 통해서도 그 소음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더 나아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지를 귀를 마루타 삼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아마도 일반인이 술을 마시고 고성방가를 하며 그 정도의 소음을 낸다면, 모르긴 몰라도 심각한 민원사항이 될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은 무슨 특권이라도 있는 양, 매 선거철이면 보란듯이 고성방가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선거운동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선거운동은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도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민원이 될 만큼 크게 들린다는 점이다. 그것도 가장 편하게 쉬어야 할 사적 공간인 자기집 안방에서.

잘나가는 정당, 스피커 소리가 높더라

한가지 특이한 것은 잘나가는 정당일수록 스피커의 볼륨을 보란 듯이 높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굳이 특정 정당을 언급하진 않겠다. 이 글의 핵심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문제제기이며 민원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군소 정당의 경우, 스피커의 볼륨도 역주변을 오가는 사람들만 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고 선거운동을 하는 데 비해, 소위 잘나가는 정당일수록 '안방을 침범(사생활침해)'할 정도로 강한 소음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서민을 배려하는 것은 역시 군소 정당이란 말인가!

이럴 때 서민의 입장인 필자는 어떤 생각을 해야할까. "목소리만 높았지, 일은 잘 안 하겠군"하며 정치에 냉소하는 것은 지나친 일일까. (혹시라도 이글을 읽는 선관위 고위 관계자가 있다면, 선거법을 개정할 때 스피커 소리도 제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추진해 주시기 바란다.)

물론 선거운동은 한철이다. 그러나 그것이 4~5년 주기로 아무런 개선없이 반복된다면 짜증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정치가 진정으로 서민들이나 민심을 배려하고 싶다면, 일단 스피커의 볼륨부터 줄이고 볼 일이다.

* 선거는 일종의 축제입니다. 하지만 국민의 일상을 침해하는 축제는 결국 '그들 만의 축제'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대학시절 딱 한번을 제외하곤 지금까지 살아오며 꾸준히 투표에 참여했던 저에게도 지금의 선거 행태는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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