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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 비로소 'Deux'로 함께 춤을, 그것이면 족하다[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08.09 12:58

[미디어스=이정희] 진화 심리학자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동성애'의 진화론적 논거를 찾기 위해 여전히 고심 중이라 한다. '종족번식'은 생물종의 존재에 있어 제 1원칙과도 같은 것인데, 그러한 종족번식의 원칙을 이반하는 동성끼리의 사랑이 인류 역사 이래 유구하게 존재해 왔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설명하기에 난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7월 28일 개봉한 영화 <우리, 둘>을 보고 있노라니, 과학자들이 그 방향 자체에 대해 고민을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인류에게 종족을 보존하는 것만큼이나, 공감하고 연대하며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삶의 기본 원리라는 믿음을 영화 <우리, 둘>은 보여준다. 서로 기대어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우리, 그 대상이 이성이건 동성이건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영화 <우리, 둘> 스틸 이미지

영화가 시작되면 일흔 줄로 보이는 니나와 마도가 사랑을 나눈다. 스피노자는 철학자로서 드물게 인간의 감정에 대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사상을 풀어주는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성애'를 인간과 인간의 실존이 만나는 순간이라 말한다. 몸과 몸이 만나는 순간, 인간은 본능적으로 깨닫는다는 것이다.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 그게 아니면 순간적 연민에 불과한 것인지. 영화는 만난 지 20여 년이 흘렀건만 여전히 상대에 '매료'되는 두 사람의 성애를 통해 두 사람의 '사랑'을 전제한다. 

그러나 이십여 년을 이어 온 사랑이지만, 두 사람의 집 사이 복도처럼 두 사람이 함께하는 데는 여전히 '세상'이라는 간극이 존재한다. 

복도를 마주한 두 사람의 사랑 

<우리, 둘>의 원제는 ‘Deux’, 영어로 ‘Two of Us’이다. 영화는 Two of us로 시작된다. 먼저 마도(마틴 슈발리에 분)의 시점이다. 그녀는 남편과 사별하고 장성한 세 명의 자녀를 둔 여성이다. 그녀와 니나(바바라 수코바 분)는 이제 복도를 마주한 '별거'를 정리하고 함께 로마로 떠나 그곳에서 함께 남은 인생을 보내려 한다. 로마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이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살아왔던 터전을 정리하려 하니 쉽지 않다. 자식들도 각자 독립해서 살아가고 있건만 '모성'이라는 사회적 존재의 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평생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은 남편 때문에 맘고생을 하며 살아왔건만, 아들은 외려 아버지의 죽음 앞에 냉랭했다며 마도에 대한 유감을 숨기지 않는다. 독거노인이지만 마도는 여전히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니나와의 로마행을 주저한다. 

영화 <우리, 둘> 스틸 이미지

이런 마도로 인해 갈등이 극에 달한 와중에 그만 마도가 쓰러지고 만다. 뇌졸중이다. 반신불수에 언어까지 마비된 마도. 자신의 육체조차 컨트롤할 수 없는 그녀에게 사랑에의 의지란 불가항력이다. 그녀에 대한 권한은 자식들에게 일임되었으며 일상은 간병인에게 맡겨진다.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그런 그녀를 니나가 발견하면서부터 영화는 이제 '니나'의 시점으로 옮겨진다.

마도의 병원에서 겨우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니나.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온 집은 마도와 똑같은 구조의 아파트이지만 황량하기 그지없다. 말이 니나의 집이지 말 그대로 집이라는 '틀'만 있을 뿐, 니나의 삶은 마도의 집에서 마도와 함께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마도 딸과의 대화에서 드러나듯, 독일에서 태어난 니나는 여행 가이드로 각국을 자유롭게 오가다 마도를 만나 이곳에 20여 년째 머무르고 있었다. 낯선 국가, 가구 하나 변변치 않은 공간. 그곳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던진 마도에 대한 '니나'의 열정적인 사랑이 읽힌다. 그리고 왜 니나가 자신의 근거지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마도에게 분노했는지도. 

주저하던 마도의 사랑은 이제 병으로 인해 '자유'를 잃었다. 니나는 여전히 마도에 대한 사랑을 깨닫지만 말조차 할 수 없는 반신불수 마도와의 사랑은 이미 놓친 열차와도 같은 처지가 되어 버린다. 그저 복도를 사이에 둔 친절한 이웃집 여인 니나가 자식들에게 결정권이 있는 반신불수 마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사랑의 듀엣, Deux

영화 <우리, 둘> 스틸 이미지

하지만 집을 보러왔던 부동산 업자에게 니나가 자조적으로 소리치듯 '다 늙은 레즈비언의 사랑 이야기'는 '스릴러'적 긴장감을 통해 변치 않는 사랑의 듀엣 'Deux'를 향해 달려간다. 

평범하게 복도를 마주한 아파트의 두 집이라는 공간은 이제 마도와 니나의 은밀한 사랑의 아지트가 아닌, 니나가 간병인과 아들 딸이라는 마도의 보호자를 넘어 마도를 향해 자신의 사랑을 전하는 데 '장애물'이 되고 만다. 

하지만 사랑에의 용기는 니나로 하여금 마도를 둘러싼 갖은 제약을 허들처럼 거침없이 뛰어넘도록 만든다. 늦은 밤 니나는 당연히 가지고 있던 마도네 집 열쇠로 마도의 집 문을 연다. 얼굴을 쓰다듬고 볼을 맞대며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는 것. 그리고 그녀의 등을 감싼 채 함께 눕는 것. 니나는 그저 그걸 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마도를 돌보고 싶을 뿐이다. 

심지어 간병인을 쫓아내는 무모함을 마다하지 않는 니나. 이런 니나의 무모한 열정에 마도가 응답한다. 말을 잃고 육체의 자유를 잃었던 마도가 '사랑에의 의지'만으로 니나를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마도의 자녀들은 차라리 엄마를 요양병원에 가둬둘망정 두 늙은 레즈비언의 사랑을 용납할 수 없다. 해고된 간병인은 두 사람이 애써 모은 로마행 경비를 털어가 버린다. 

영화 <우리, 둘> 포스터

하지만 뇌졸중도 요양원도 두 사람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미 떠나버린 자식들이건만 가족을 놓지 못하던 마도의 애착이 무색하게, 자식들은 마도가 그토록 원하는 사랑을 끝내 인정하지 못한다. 말을 잃고 육체적 자유를 잃고서야 비로소 '사랑을 향한 자유'를 택한 마도는 니나와 떠난다. 

그들은 로마에 가지 못한다. 건강하던 시절 두 사람이 함께 맞춰 춤을 추던, 우리에게는 영화 <시스터 액트>의 주제곡으로 잘 알려진 'I will follow' 원곡이 울려 퍼지는 곳은 로마행 경비마저 털려버린 니나의 집이다. 안락했던 자신의 집을 버린 마도는 니나와 함께 스텝을 밟는다. 비로소 'Deux'가 된 두 사람, 그것이면 족하다. 영화는 묻는다. 당신 인생에서 지금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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