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일 18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8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 각 정당이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각 언론이 이를 열심히 '중계'하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나라의 장래가 정말 걱정된다.

10년만에 정권을 되찾는데 성공한 한나라당은 원내 과반수 의석 확보가 어려울 것 같다며 엄살 아닌 엄살을 떨고 있다. 대선 참패의 후유증과 패배주의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통합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마저 없어 보인다.

'원조보수'를 자처하는 이회창과 자유선진당은 원칙과 현실 사이를 왔다 갔다 하거나 혹은 원칙을 애써 외면하며 오로지 원내교섭단체 확보가 지상과제인양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뒤 '친박연대'를 결성한 한나라당 출신 후보들의 행보를 예측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하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대선에 뛰어들었다가 밑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바 있는 문국현씨와 창조한국당은 '1인 정당'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중앙일보 4월 1일자

개개인을 보면 다소 진보적인 후보들이 없지 않지만, 세력으로서 이 모든 정파를 통틀어 규정하면 보수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손학규씨가 이끄는 민주당은 국회의원 후보 공천과정과 이명박 정부의 장관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위원 등의 추천 및 청문회 과정에서 정체성을 의심받을만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이 과정을 예의주시해 온 전국언론노동조합을 비롯한 언론시민사회단체는 통합민주당의 대표를 ‘트로이의 목마(Trojan Horse)’에 비유하기도 했다. 시쳇말로 한나라당 앞잡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원내부대표인 임종석 의원은 민주당이 교육정책과 복지정책 그리고 대북한 정책 등에서 한나라당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외 정책에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거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한반도 운하 반대 외 보수정당들 차이 뚜렷하지 않아

위에서 언급한 정당들은,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계획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제외하면, 한나라당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는 보수세력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정강정책과 상관없이 그동안 정당들의 행태를 보면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국민일보 4월 1일자

남은 것은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다. 대선 패배의 원인 분석 과정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고 일부 책임있는 지도부의 오만과 뻔뻔함 때문에 둘로 쪼개진 진보세력의 모습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 이후 이명박 정부와 기존 보수정당들이 '죽을 쑤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진보 세력 지지자들은 민주노동당이 대선 직후 스스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발로 차버린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4·9 총선 이후 한국의 제도권 정치에서 노동자들과 서민들이 기대할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1948년 공화국 정부 수립 이후 유례가 없는 보수 중심의 제도권 정치가 펼쳐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정사를 정당체제의 관점에서 간략하게 돌아보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권위주의 혹은 군사독재정권으로 불린다. 형식과 상관 없이 '사실상의 일당독재'로 분류할 수 있을 듯하다. 4·19 민주혁명과 뒤 이어 출범한 민주당 정권은 단명으로 끝났다.

이후 90년대초 이른바 3당 합당으로 인해 민자당이 탄생하고 이를 바탕으로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이후까지 우리 정당체제를 아무리 좋게 봐도 '1.5정당제'로 볼 수 밖에 없다. 1.5정당제란 집권당의 규모(국회 의석 수 등)와 힘을 1로 봤을 때 나머지 정당들의 그것을 다 합쳐도 집권당의 0.5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1.5정당제 30년 이상 유지돼

개발독재를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는 나라들의 경우가 이에 해당하고, 1954년 자유당과 민주당의 통합으로 탄생한 자민당이 30년 이상 장기집권한 일본도 1.5정당제의 경우라 볼 수 있다.

유럽의 정당들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경우 진보정당이라 부를 수 있는 세력은 극히 미미했지만, 정강정책과 상관없이 형식적이지만 양당제의 모습을 보인 기간은 김대중과 노무현 집권 10년 정도에 불과하다.

이제 열흘 뒤 총선이 끝나면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나라의 제도권 정치는 수구보수인 한나라당, 박근혜를 추종하는 친박연대, 원조 수구보수인 자유선진당, 그리고 보수적인 민주당과 출신 국회의원들이 지배하는 하나의 거대한 보수정당과 이의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진보세력을 가진 '1.1정당체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상황과 선거 판세로 볼 때, 한나라당이 모든 상임위위원회에서 과반을 확보하는 170석 안팎의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악의 경우 한나라당이 과반인 150석을 차지하지 못한다하더라도, 친박연대 소속 당선자들을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 바람을 등에 업고 친박연대 소속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면, 박근혜 대표는 총선 후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한나라당 수뇌부와 당권 등을 둘러싼 협상에서 파격적인 양보를 받아내려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친박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도 있다.

이회창의 자유선진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만약 자유선진당까지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한다면, 손학규의 민주당을 포함하여 한 뿌리(한나라당)에서 갈라져 나온 네 보수정당이 의회와 제도권 정치를 지배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질 것이다. 한마디로 완벽한 '수구 보수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결과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과 빈부격차 해소 등은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고 노동자들과 가난한 서민들은 도탄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래저래 노동자들과 가난한 서민들만 고생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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