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낮 12시 서울 목동 SBS 사옥 1층. 세밑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화려하게 반짝이는 트리 사이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삭막한 노래가 울려 퍼진다. 화려한 SBS 사옥과는 어울리지 않는, 생경한 풍경이다.

그 풍경 한 가운데, 최상재 전 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앉아 있다. ‘언론악법 투쟁’ ‘조중동 방송 저지 투쟁’ 등 때문에 투쟁이 지긋지긋할 법도 하지만, 최 전 위원장은 최근 또 다른 투쟁을 시작했다. 그는 얼마 전, SBS가 최 전 위원장에게 대린 ‘대기발령’ 징계에 항의하기 위해 26일부터 점심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 최상재 전 언론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SBS 구성원들이 27일 낮 서울 목동 SBS사옥 1층에서 점심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미디어스
최상재 전 위원장이 농성을 시작하게 된 데에는 대기발령도 있지만, 그 보다는 최근 SBS의 인사, 경영 형태가 더 큰 영향을 줬다. 지난 2006년, 노동조합이 SBS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동의한 배경에는 윤세영 SBS 회장이 자회사 간 거래 투명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SBS의 제작역량을 집중, 전문화 하겠다는 약속이 있었지만, 지금 SBS 경영진은 오직 방송의 공공성 보다는 이윤만을 위해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최근 내려진 대기발령 징계 이면에는 이번 징계를 바탕으로 그 동안 지주회사 체제, 미디어렙 등 사안에 대해 SBS의 행보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노동조합의 활동을 약화시키려는 배경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기발령 징계, 개인에 대한 문제 아니다”

다음은 최상재 전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위원장을 그만 두고도 투쟁을 하고 있다. 예상했었나?
= (웃음) 예상은 못했고, ‘(회사가) 좀 무리수를 두나보다’ 나태한 생각을 했는데, 대기발령을 통해 회사가 나태하지 말라고 각성시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SBS 노동조합을 약화, 위축시키려는 회사의 시도가 계속 있어 왔고, 그게 전 노조 간부들에 대한 인사 불이익, 연수 탈락, 승진 배제, 부당한 부서 배치 등으로 나타났다. 나에 대해서도 그런 맥락에서 무리한 조치를 했다고 생각한다.

▲ 최상재 전 언론노조 위원장 ⓒ미디어스
점심 단식 농성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SBS가 윤석민 대표 체제로 승계가 되면서 보다 상업적이면서 자본 위주의 방송을 만들려고 하는 그런 상황이 배경에 깔려있다. 그래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고, 지금이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해 다시 로비에 왔다.

공영방송 못지않게 민간 상업방송을 우리가 잘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그래야 KBS와 MBC도 더 건강해 질 수 있다. 그게 SBS노조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농성은 제 개인에 대한 대기발령 문제를 지적한다기보다 SBS가 지난 MB정권 아래에서, MB 정권을 방패삼아서 과거로 크게 회귀한 데 대한 문제 제기다. 내년부터 다시 SBS를 바로 잡는 운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방아쇠를 당기는 심정으로 시작하게 됐다.

대기발령을 통해 SBS가 노리는 효과는 뭐라고 생각하나?
= 사원들에게 확실한 본보기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인사 원칙’이라는 말을 활용해서 ‘회사는 반드시 불이익을 줄 수 있다’ ‘불이익을 줄 힘이 있다’ 각인 시킨다고 본다. 노조원들이 노조 활동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하고, 집행부와 노조원의 거리가 벌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과거부터 그런 행태들이 보였고, 특히 윤석민 대표 체제에서 그런 현상이 더 짙어 졌다. 윤석민 대표의 측근들이 그런 것들을 부추기고 있다고 본다.

이번 일을 시작으로, 앞으로 노조 활동에 대한 회사 쪽의 징계, 견제 움직임이 강해지지 않을까?
= <PD저널>에 이근행 전 MBC 노조위원장이 재밌는 글을 썼던데 ‘사주가 있는 회사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제대로 하려고 마음먹는 것은 인생 전체를 거는 것이다’라고 하더라.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이고, 요즘처럼 방송과 미디어 생태계가 위협 받고 있고 혼란한 상태에는 (회사 쪽의) 그런 영향력이 더 강해질 수 있다. 실제로 생존이라는 문제를 갖고 사원들을 위협하고 노조를 압박하고 이런 일들을 앞으로도 비일비재 벌어질 것이라고 본다.

대기발령 등 SBS 조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 회사의 경영과 인사가 본래 지주회사 체제에 대한 취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오히려 이윤만 추구하는 행태로 되고 있기 때문에 SBS 윤세영 회장과 윤석민 대표가 과거 국민을 상대로 했던 대국민 시청자 약속을 지키게 만들어야 한다. 대기발령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는 고려하지 않고 있고, 이런 문제와 상황들을 시청자, 국민, 정치권, 시민사회에 알리는 방식으로 농성을 진행할 것이다.

노조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노조원들에게 드리는 편지를 통해 얘기를 했는데, 재밌게 세 글자로 짧게 이야기 하면 ‘쫄지마’라고 할 수 있고, 다섯 글자로 하면 ‘쫄지바씨바’라고 할 수 있다.(웃음) 우리가 마음먹고 힘을 합치면 바꿀 수 있다. 그것이 경영진이 되었건 지배 주주가 되었던 우리의 결단이 중요한 거다. 회사가 잘못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오히려 냉소하고 체념하고 있지만 그럴 필요 없다. 우리의 열심과 결단이 훨씬 더 중요하다.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언론노조 노조원들, 언론 운동을 하는 시민분들한테 말하고 싶다. 사실 지금은 서로 싸움의 선봉에 서겠다고 해야 되는 시점이라고 본다. 서울시장 선거가 끝나고 MB정권의 뿌리가 흔들리는 여러 일들, 디도스 공격 등 엄청난 사건 발생하고 있음에도 언론인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기대만큼 언론인들이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고, 나를 포함해서 KBS, MBC, 신문사에서 깃발을 들고 나왔으면 좋겠다. 더 이상 위축될 필요 없고, 더 이상 시기를 저울질할 필요가 없는 거 같다. 싸움에 들어가자. 그게 지난 시기 우리가 언론악법 막기 위해서 했던 싸움, MB정권의 반민주적 행태에 대해 저항한 것을 연결하는 것이다.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대기발령 갖고 농성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를 계기로 해서 민간 상업방송의 틀을 다시 한 번 바꾸는 싸움을 시작하고자 한다. 부산일보는 부산일보 대로, KBS는 KBS대로, MBC는 MBC대로, 보도와 소유 문제, 언론 정책 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싸우자. 이강택 위원장과 언론노조가 힘을 얻어서 힘차게 싸우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자.

▲ 최상재 전 언론노조 위원장의 요구 사항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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