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국회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표결처리하자 독소조항이 담긴 법안을 강행처리했다는 언론 비판이 모아진다. 권력의 '전략적 봉쇄소송' 가능성과 이중처벌 문제를 해소하지 않은 채 사회적 숙의 없이 밀어붙였다는 지적이다.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따르면 허위·조작 보도를 한 언론사에 대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다. 손해배상액 하한선과 상한선은 언론사 매출액과 연동된다. 언론이 반복적으로 허위·조작보도를 일삼거나 취재·보도 과정에서 위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고의·중과실로 인정해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고의·중과실 입증 책임은 언론에게 있다.

대통령, 정무직 공무원, 고위공무원, 대기업 등에 대해서는 '악의를 가지고 허위·조작보도를 한 경우에 한해 (징벌적 손해배상을)적용한다'는 규정을 뒀다. 민주당은 정치·경제 권력에 대한 언론의 손배 책임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이 밖에 정정보도 크기·위치 의무화 규정, 기사 열람차단 청구권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취지에 공감했던 일부 언론에서마저 악용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권력의 '전략적 봉쇄소송' 가능성을 주관적 기준인 '악의성'이라는 단서 조항으로 불식시킬 수 없고, 형법상 명예훼손죄 등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이중처벌 소지도 그대로라는 지적이다.

7월 29일 한겨레, 경향신문 지면 갈무리

29일 한겨레는 사설에서 "언론 대항력이 취약한 이들을 위한 입법을 '언론 자유 침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면서 "그러나 이 제도가 언론의 감시와 검증을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게 하려면 악의성을 매우 구체적이고 제한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형법상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그대로 둔 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것은 '이중처벌'이라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여 한다"면서 "'기사 열람 차단권' 또한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청구기준이 추상적이면 표현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약할 수 있음을 정보통신망법에 의한 포털 게시물 '임시조치' 남용 사례로 경험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관련 기사에서 권력에 대한 '악의성' 단서규정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찬성하는 단체들조차도 '독소 조항'으로 분류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서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언론의 고의와 중과실로 ‘추정’되거나, (문제가 있는 보도라고) 청구만 들어간 상태에서도 언론 보도를 열람 차단하거나 인용을 막는 건, 시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더라도 고위 공직자나 대기업에 대해선 예외를 두자고 주장해왔는데, 이번 안을 보면 예외를 두기는커녕 공인들이 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준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사설 <구조 혁신 없이 징벌적 손해배상만 높이면 언론 개혁되나>에서 "한국 언론과 보도에 문제가 있으니 개혁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누구보다도 강하게 동의한다"면서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여러모로 악용될 소지가 많다고 지적돼왔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여당이 단독으로 통과시켰다"고 썼다.

이어 경향신문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개정안을 몰아붙이는 절차도 온당치 못하다. 문체위원장의 야당 몫 선출을 앞두고 여당이 서두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면서 "정권으로서는 다소 불편한 목소리가 나와도 용인하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여당이 이 법을 그대로 통과시키려 한다면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은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신문은 사설 <'언론재갈법' 강행 민주당, 언론중재법 개정 중단하라>에서 "'언론개혁' 명분을 내세웠지만 '언론장악' 음모나 다름없다"며 "위헌의 소지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알권리마저 크게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철회돼야 마땅하다"고 했다. 지난해 9월 사설<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언론자유 침해 없도록 신중해야>와 논조 차이가 크다.

28일 한국일보는 사설 <언론자유 훼손시킬 언론중재법 밀어붙인 민주당>에서 "개정안은 여러 독소 조항을 담고 있어 '언론 재갈 물리기' 비판을 피할 수 없다"며 "언론의 오보 책임을 강화하고 피해자 구제를 신속하게 할 필요가 있으나 개정안은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소지가 다분하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민주당이 학계·언론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행 처리에 나섬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언론 자유를 파괴한다는 국제적 비난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애초부터 반대입장을 강하게 피력해 온 주요 보수언론는 '악법' 규정에 집중했다. 29일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이상직 언론봉쇄법'으로 규정했다. 조선일보는 "이스타항공 비리로 구속된 이상직 의원이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고 주도한 법을 여당이 대선을 앞두고 밀어붙인 것"이라며 "이 언론봉쇄법이 통과되면 한국은 더 이상 언론자유국이라고 할 수 없다"고 썼다.

7월 28~29일 조선·중앙·동아일보 지면 갈무리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법안 내용과 처리절차를 두고 "모두 대단히 잘못된 입법 폭거"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야당은 대안 내용을 받지도 못했다. 야당 의원의 입법권 침해"라며 "위헌적 독소조항도 수두룩하다. 민주당은 마땅히 언론중재법 절차를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동아일보 이진영 논설위원은 칼럼 <'어용 언론' 되라고 겁박하는가>에서 "언론에 나쁜 일로 오르내리는 이들은 권력을 쥐고 약자에게 피해를 주는 자들이 대부분"이라며 "유엔이 인정한 선진국에서 왜 국회에 앉아 있는 분들 같은 힘 있는 사람들만 재미 보는 언론 악법을 밀어붙여야 하나"라고 했다.

한편, 민주당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처리에만 몰두한 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주요 언론개혁 정책은 손 놓고 있다는 비판이 이뤄진다. 한겨레는 이날 기사 <정작…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은 '공회전'>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논의와 '방송 TF' 구성이 멈춰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시민참여 강화 등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 문제의 경우 언론단체들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왔음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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