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본선 후보 6명이 확정되었다. 거의 여론조사 지지율대로다. 마지막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한 최문순 양승조 도지사와 김두관 의원의 그간 여론조사 상 지지율 격차는 크지 않았다. 이들의 지지율은 1%대로 잡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이 아니어서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았다. 그나마 인지도와 PK 조직력이 김두관 의원에 도움이 됐다고 보지만 이런 해석도 조심스럽다.

언론은 이제 이재명 대 반이재명 구도가 더욱 치열해질 거라고 보고 있다. 아마도 2, 3위 구도를 형성했을 이낙연, 정세균 후보 간 연대 또는 단일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거라는 것이다. 1위 후보를 앞지르기 위해 2, 3위 후보가 힘을 합치는 것은 선거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쟁에서 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대선을 지배하는 논리는 이런 일반론적 선거공학을 넘어선다.

현실정치에서 조직화는 무언가를 지향하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반대하는 것으로 되기 마련이다. 가령 박근혜 정권 말기의 촛불시위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반대’를 근본 논리로 하여 조직되었다. 대한민국에 뿌리 내린 양대 정파는 과거사를 기준으로 보면 반공과 반일로 조직되었다.

마찬가지 기준으로 보면 더불어민주당 경선은 크게 두 종류의 조직 논리가 충돌하고 있는 걸로 볼 수 있다. 하나의 축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반대’이다. 이것은 현재 여당의 핵심 정체성이 되어 있다. 이낙연 전 대표 지지층이 크게 흔들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성 정치의 논리로 봤을 때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은 중도 확장을 위해서도, 통치의 명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여당 지지층 입장에서 이는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에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한 축은 ‘이재명 반대’이다. 이것은 단순한 후보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차원을 넘어선다. 지난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이재명을 찍느니 남경필을 찍겠다”고 주장한 지지층의 존재를 떠올려 보자. 이들은 ‘이재명 당선’과 ‘권력을 상대에게 넘겨주는 것’은 차이가 없다고 보고 있다. 이들 시각에 이재명 지사는 ‘내부의 적’인 셈인데, 2007년 대선의 정동영 후보가 이후 ‘배신자’ 취급을 받았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이 점에서 ‘이재명 반대’는 앞서 ‘이명박-박근혜 정권 반대’를 넘는 독립적 조직 논리로 볼 수 있다.

현재 국면에서 이재명 지사는 여당의 가장 유력한 주자이다. 여당 지지층의 상당수는 이재명 지사가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반대’라는 조직 논리를 우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는 이기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이 현실을 인정할 수 없는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총리 등은 앞서 ‘이재명 반대’의 조직 논리에서 동력을 찾으려 한다. 이 두 가지 조직 논리의 대립축으로 구도가 짜여져 있기 때문에 미래지향적 쟁점이 없는 현재 상황이 그대로 유지되는 채로 경선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 판에서 그나마 대의명분에 충실한 행보를 취하고 있는 건 추미애 전 장관인데, 이재명 지사와 뭔가 개혁을 내세운다는 차원에서 공통분모를 찾으면서 이낙연 전 대표 등에게는 경선 승복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건 특별히 추미애 전 장관이 신념의 정치인이기 때문이라서라기보다는 ‘이재명 반대’로 조직돼 있는 후보 집단 내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 어려운 사정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추미애 전 장관의 지지층 조직 논리는 ‘검찰 반대’라고 볼 수 있는데,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는 지난해 이른바 ‘추윤갈등’ 국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즉, 추미애 전 장관의 원칙론은 활로가 거기밖에 없기 때문인데 뒤집어 말하면 혹시라도 여론조사상 2위를 차지해 ‘이재명 반대’의 수혜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추미애 전 장관의 태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냉정하게 보면 여당 지지층 내에 ’이재명 반대’ 논리보다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반대’ 조직 논리가 더 우세한 게 현실이다. 또,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 또한 강력한 것으로 확인되는 상황이므로 이재명 지사가 1위 지지율을 유지하는 한 이러한 상황이 뒤집히기는 어렵다고 본다. 문제는 이런 식의 경선이 무엇을 위한 정권재창출인지를 따지는 과정을 완전히 무력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지사가 기본소득을 뒷전으로 미루든 말든, 다른 후보들이 이 정권의 정체성과도 맞지 않는 정책을 주장하든 말든 오직 ‘대권주자로서 이재명을 용납할 것인가 말 것인가’만 쟁점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바람직할까? 아닐 것이다.

연합뉴스

반대편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연일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정권이 잘못한 일이 많으니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정권말이 되면 거의 모든 정권에서 대중적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정권을 바꾼 이후는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정치 참여 선언 이후 우측으로 상당히 쏠린 메시지를 내고 있다. ‘미 점령군’ 표현에 분노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것은 전략인가, 정체성인가? 전략으로 본다면 좋은 선택이 아니다. 국민의힘 입당을 미루는 것으로 호남과 중도층 지지 여론을 유지하면서 입당을 미루는 것에 불만을 가질법한 보수층 여론을 다독이며 시간을 벌겠다는 셈법일 텐데, 오히려 양쪽에서 지지가 유실될 수 있다. 차라리 국민의힘에 입당하고 변화를 주도하겠다고 주장하면서 중도적 메시지로 상황을 정리하는 게 나아 보인다.

전략이 아니라면 우측으로 쏠려있는 메시지는 결국 윤석열 전 총장 본인의 정체성 반영일 것이다. 언론 인터뷰 내용으로 추측건대 윤석열 전 총장은 스스로가 충실한 이념적 반공주의자라기 보다는 본인이 겪은 일련의 사태의 원인을 현 정권의 이념적 정체성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정권은 왜 적법 절차를 무시하고 윤석열 전 총장을 밀어냈는가? 그게 결국 운동권식 민주주의관 때문에 그렇다는 거다.

그러나 지난해의 사태는 운동권식 민주주의라는 특수성보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에 근거하고 있는 ‘검찰 반대’의 조직화 논리와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보편적 문제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령 권력이 목소리 큰 ‘자기 편’ 지지자의 주장을 ‘다수’로 규정하고 그것을 그대로 반영하는 게 민주주의라는 식의 주장으로 정치적 동력을 확보하는 일은 한국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도 일반적으로 관측된다.

이 문제를 과거의 틀에 박힌 반공주의의 시각으로 보는 순간 ‘정권교체’ 이후의 권력은 과거 회귀로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석열 전 총장은 ‘자유민주주의’란 말을 즐겨 쓰는데 결국 독재나 전체주의, 최근에는 이를 가능케 하는 포퓰리즘을 ‘반대’하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반대’의 대상에 ‘운동권’을 넣으면 정확히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했던 일을 그대로 반복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결국 최근의 대선 정국은 현재의 파국을 피하기 위해 고통스러웠던 과거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고통스러웠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파국의 연장을 선택하느냐라는 선택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선택할 수가 없다. 국가의 지도자를 뽑는 과정이 이래서는 안 된다. 어느 후보든 유권자가 무언가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답을 내놔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선택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될 것이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