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지난달 26일 서울대 청소노동자 이모씨(59)가 학생 기숙사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청소노동자 유족은 사망 원인이 ‘관리자의 인격 모독적 갑질’에 있다며 “사람을 인격체로 보고 관리한다면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관리자의 갑질에 매주 건물의 명칭을 영어와 한자로 써야 하는 필기시험이 포함된다.

사망한 이 씨의 남편은 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학교 내 근무 시간에 발생한 일이기에 산재가 승인될 줄 알았지만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청소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매주 치러진 필기시험에 대해 “노동자들이 상처를 받는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7일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 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청소 노동자가 본 시험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족에 따르면 숨진 이 씨는 평소 늘어난 업무 강도와 매주 필기시험에 대한 피로를 호소했다. 지난달 1일 기숙사 안전관리팀장이 새로 부임한 이후 모욕적인 갑질이 시작됐다. 직무교육이라는 명분으로 매주 필기시험을 치렀고, 건물 준공 연도와 건물 내 학생 수 등 청소 업무와 관계없는 내용을 물었다. ‘건물의 명칭을 영어와 한자로 써라’, ‘건물의 준공 연도가 어떻게 되는지 외워라’, ‘이 건물에 들어갈 수 있는 정원이 몇 명이 되냐’는 등의 문제였다고 한다. 시험 후에는 청소노동자들을 모아두고 공개적으로 점수를 발표해 망신을 줬다.

유족은 “필기시험은 ‘너희들은 우리 말에 따라야 된다’는 사람을 장악하기 위한 일이 아니었나란 생각까지 든다”며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시험을 보기 시작했고, 동료들 앞에서 (성적이)다 공개됐으며 이로 인해 동료들이 마음 아파하는 것을 보고 힘들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말했다.

유족은 “6월 1일 새로운 관리자가 들어온 다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예고 없이 시험을 봤는데, 이중에는 어려운 형편으로 글을 모르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 분들이 들었을 자괴감을 생각했을 때, 동료들도 모두 같이 마음 아파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유족은 “학교 측은 점수는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확인해보니 직장 동료들은 모두를 불러서 공개했다고 말하더라”며 “학교 측은 자긍심을 심어주고 우수 사원들을 칭찬하기 위해 그랬다던데 그런 분위기에서 우수 사원을 격려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상상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유족은 “인사권을 가진 이들에게 잘못 보이면 일하기 조금 어려운 건물로 배치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분명히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군 출신의 관리자는 무언가 지시 사항이 잘 이루어지도록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며 “볼펜을 안 가지고 오면 감점을 한다든가, 관리자가 원하는 옷을 입지 않으면 무안을 주는 등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8일 서울대 민주화 교수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지난 1년 6개월간 평소 100L 쓰레기봉투를 매일 6~7개씩 날라야 하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며 “노동자의 안전, 업무와 무관한 단정한 복장 요구 및 불필요한 시험 실시 등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행태”라고 했다. 민교협은 서울대 측에 직장 내 괴롭힘 및 산재 여부를 판정할 공동 진상조사단 구성, 현장관리자에 대한 노동권·인권 교육 강화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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