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7월, 덥고 습한 날씨가 지속되는 여름이다. 정수리에 꽂히는 햇살이 아프고, 살갗에 닿는 햇빛이 따가운 계절이다. 건널목 앞에 설치된 그늘막의 고마움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달력을 보니 초복이 며칠 남지 않았다. 초복, 첫 번째 복으로 여름의 시작을 의미한다. 초복은 작은 더위인 소서와 큰 더위인 대서 사이에 있으며 이때부터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절정의 더위에 장마까지 겹치면 불쾌지수가 급상승하게 된다. 별일 아닌 일에도 불쾌하고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진다. 찐득한 바람이 목에, 팔에, 다리에 감기고 선풍기도 제구실을 못하고 후덥지근한 바람을 토해낸다. 이런 날엔 서로 조심해야 한다. 별일 아닌 일에 화를 내고 싸우게 될 수 있어서 가만히 앉아 가만히 숨 쉬어야 한다.

무더위의 불쾌감은 온도와 습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공간에 있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공간에 따라 불쾌감 정도를 넘어 미칠 것 같고, 죽을 것 같은 느낌으로 바뀔 수 있다. 이 점에서 아파트라는 공간은 주거 공간으로 적합하지 않다. 특히 여름을 보내기에 적합한 공간이 아니다. 공간에 따른 인구 밀도 면에서도, 물리적 공해 면에서도 정신적으로 좋은 환경일 수 없다. 많은 사람을 아래, 위, 옆으로 빼곡하게 집어넣어 놓고 소리 없이 조용히, 움직이지 말고 조용히, 가만가만 조용히 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더구나 아이들이 있다면 가만가만 조용히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이를 단속하는 엄마도 힘들고, 조금만 뛰어도 제재를 당하는 아이도 힘들다. 공간이 좁아지면 힘듦은 배가 된다.

서울의 한 복도식 아파트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10년 전에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 임시로 들어갔던 아파트가 있었다. 주거밀집 지역으로 16단지까지 있는 대단지 아파트 밀집 지역이었다. 작은 평수 대의 아파트가 대부분이었고 지어진 지 15년이 넘었다. 우리 가족이 살기로 했던 아파트도 작은 평수의 아파트였다. 나는 이사 전에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얼마나 작은지 몰랐다. 이삿짐을 들여놓으면서 집을 처음 보게 되었다. 작다기보다 좁다는 표현이 맞는 집이었다.

복도식 아파트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 옆에 양옆으로 작은 방을 마주 보고 싱크대가 있었다. 주방과 거실의 경계가 딱히 없는 집으로 싱크대 앞에서 두 걸음만 걸으면 거실이었다. 집은 몇 걸음 걷지 않아도 될 만큼 좁았다. 물건을 집에 들이기 시작했다. 이사하기 전에 많은 물건을 버리고 왔는데도 물건이 들어갈 공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 물건을 구겨 넣고 나니 정작 사람이 쉴 공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집보다 물건이 많고, 물건의 크기도 컸다. 덩치 큰 냉장고는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텔레비전 옆에 놓이게 되었다. 집에 어울리지 않는 김치냉장고는 장식장처럼 큰방 앞에 놓였다.

방에 책상을 들이고 옷장을 놓고 나니 겨우 누울 자리만 남았다. 창문은 복도 쪽에 있어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언뜻 보였고, 발소리도 들렸다. 정리를 끝내고 방에 누웠는데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온 옆집 남자가 고등학생, 대학생인 두 아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만취 상태로 한 시간 넘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그 바람에 알고 싶지 않은 가정사를 알게 되었다. 그래도 겨울은 괜찮다. 숨 막히도록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름은 다르다. 좁은 공간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어 답답한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더위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집에서 요리해서 먹는 것을 포기했다. 가스 불을 켜는 순간 집안은 지옥으로 변했다. 수은주가 40도를 훌쩍 뛰어넘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허벅지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에어컨으로도, 선풍기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온도였다. 현관문을 열어놓고 살 수밖에 없었다. 집안이 그대로 노출되어 싫었지만, 더위는 더 싫었다.

서울의 한 복도식 아파트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여름이 시작되면서 복도 끝에 사는 젊은 엄마가 우리 집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는 날이 선 칼처럼 이틀에 한 번씩 우리 집을 찾아와 화를 냈다. 아이들이 우리 집 개를 무서워하니 문을 열어놓지 말라는 것이었다. 물론 개가 뛰어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현관 앞에 울타리를 쳤다. 게다가 노견이라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니 일부러 집 앞에서 발을 세게 구르거나 문을 두드리지 않는 이상 뛰어나가 짖을 일이 없었다. 그런데 젊은 엄마는 핏대를 올리며 화를 냈다. 공동주택에서는 개를 키울 수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어찌 되었건 개를 키우는 입장에서 미안하다고 주의하겠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름 내내 복도 끝 집에서는 형제 울음소리와 야단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느닷없이 찾아와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젊은 엄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해는 되지 않아도 이유는 알 것 같았다. 가만히 있어도 덥고 짜증 나는 여름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두 아이와 엄마가 좁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은 미칠 일이었을 것이다.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상대가 누구이든.

국토교통부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 공간으로 정한 최저주거기준은 4.24평, 즉 14㎡라고 한다. 1평은 1.8182 x 1.8182=3.3058㎡로 성인 남자가 가로와 세로로 누웠을 때 공간을 생각하면 된다. 5평 정도라면 좀 불편하고 답답하여도 혼자 살기에는 아주 나쁘진 않을 것이다. 이는 온전히 혼자만의 공간일 때이다. 최저주거기준을 조건으로 18평에 세 식구 혹은 네 식구가 산다면, 식구 중 한 명 혹은 두 명이 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게다가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이라면. 완전한 혼자만의 공간으로 최저주거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라고 할 수 없다. 젊은 엄마가 화가 났던 이유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좁은 집에서 끔찍한 더위를 견뎌야 했기 때문 아닐까.

나는 가끔, 딱 누울 자리밖에 없던 방에서 여름을 보내던 일이 떠오르면 아직도 끔찍하다. 올해 여름 유난히 덥고, 장마도 길다고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좁은 방에서만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그래도 지치지 않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여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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