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전직 방송작가가 자신의 노동 분투기를 책으로 냈다. 출판사 ‘꿈꾸는인생’이 발간한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으로 저자는 이은혜 방송작가다. 부제는 ‘방송가의 불공정함과 비정함에 대해서’이다.

이은혜 작가는 서른한 살에 라디오 방송작가의 꿈을 이뤘다. 지역 방송사를 시작으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TV 뉴스,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일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집필 노동자로 사보, 기고 등을 쓰고 있다.

‘라디오 키드’였던 이 작가는 출근 일주일 만에 방송작가가 “작가보다 방송에 방점이 찍힌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작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작가에게 맡겨진 업무는 끝도 없이 늘어났다. 자료 조사와 섭외, 취재, 원고 작성 외에 무급으로 생활문화 정보 코너 리포터 목소리로 출연하고, 상품 대장 관리 같은 잔업을 맡았다. 그리고 받은 첫 급여는 125만 원이었다.

열악한 건 급여뿐이 아니었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병가와 산재보상은 없었다. 하루아침에 해직 통보를 받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뉴스 리포트에서 작가들의 이름은 수시로 제외됐고 표준계약서 작성을 요구했더니 변종계약서를 받았다. 저자는 “찬란하게 반짝이는 방송계의 이면을 말하고 싶었다”며 “정의를 말하는 곳에서 이뤄지는 부당함을, 다정을 말하는 곳에서 이뤄지는 비정을 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저자는 자신이 목도한 방송사 내 부조리로 떠나거나 대항해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저자는 “공정을 외치는 방송사 안에서 이뤄지는 불공정은 대체 어디에 고해야하냐”며 연대를 강조했다. 저자는 구두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아 방송국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한 작가를 직접 찾았다. 또 2000년대 초 대구, 마산 방송작가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다 전원 해고 당한 사건, 고강도 노동현장에 자괴감을 느껴 목숨을 끊은 이한빛 PD, 14년간 근무해온 방송사에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죽음을 택한 이재학 PD 사건을 새겨 넣었다.

'약자들이 경험한 최초의 성취'로 중앙노동위원회의 MBC 방송작가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 사례를 꼽는다. 저자는 “방송작가들은 노동은 하지만 노동자는 아닌 채로, 프리랜서 이긴 하지만 ‘프리’하지 않은 채로 오래 살아왔다”며 “방송업계의 공고한 관행을 한 번에 깰 순 없겠지만 이 작은 성취는 마음에 오래 남아 먼 길을 가는 연료로 쓰일 것”(239쪽) 이라고 했다.

저자는 책 말미에 “온갖 것을 쓸 수 있었지만 방송 현장만큼은 쓰지 않았던 비겁한 시사 라디오 작가, 나에 대해, 나도 보고 느꼈던 방송 현장의 부조리에 대해. 그리고 오늘도 그 부조리에 맞서는 사람들에 대해. 이건 내 방식의 참회”라며 “내가 했어야 했던 문제 제기를 대신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부끄러운 응원”(255쪽)이라고 밝혔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