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울면서 사립대학교 원서를 쓴 기억이 있다. 생각보다 낮아진 수능 점수를 보면서 스스로 할 말을 잃기도 했지만 "등록금이 비싸니 사립대는 안 된다"는 부모님의 말씀이 참 매정하게 느껴졌었다. 어쨌든 결국 사립대를 갔고, 그 후 나는 내 선택에 대한 몫을 책임져야 했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누구보다 장학금이 절실했던 나는 장학금을 타기 위해 참 많이도 노력했었다. 그래서일까. 3월 28일 오후 4시부터 '등록금 문제 해결' '등록금 상한제 실현' 등을 요구하며 서울 시청 앞에 모인 1만여 명의 절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참여연대, 전국대학생교육대책위, 전교조, 민주노총 등 전국 54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 네트워크'가 주최한 이 날의 대규모 집회에는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대학생·학부모·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1만여 명이 참가했다.

아직은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대학생 새내기들부터 이들을 챙기는 선배들까지 한 목소리로 등록금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전국의 대학생들이 등록금 문제 때문에 한날 한시에 이곳에 모였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무대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은 대학생들의 얼굴은 진지하고 단호했다. 한 학생이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를 낭독하는 순서에선 콧등이 시큰해졌다. 대학 시절, 장학금을 놓치고 300여만원이 적혀있는 등록금 고지서를 부모님께 드려야했던 죄송했던 기억이 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날 집회에는 대대적인 공권력이 배치됐다. 집회가 열리기 전 날, 서울에서 의경(의무경찰)을 하고 있는 친구를 통해 등록금 집회 때 1만5천명의 경찰 인력이 동원된다는 사실을 들었는데, 친구의 말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인력이 모자라 지방에서도 올라온다고 했다. 현장에는 정말 많은 경찰 인력이 배치돼 있었지만 집회는 평화적으로 끝났고 물리적인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

등록금 인상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을 저지하기 위해 서있는 내 또래의 전경과 의경을 보면서 "이들도 다시 사회에 돌아가면 같은 대학생일 텐데" 이렇게 선을 긋고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 자체가 씁쓸했다.

미디어스에 입사해 수습생활 2주 째에 접어든 내가 "등록금 투쟁 현장을 취재하라"는 선배의 지시를 받았을 때 마음이 복잡했다. 등록금 투쟁을 위해 모인 대학생들은 내 친구이자 후배들일테고 그들과 함께 '등록금 인상 반대'를 외쳐야 할 것 같았다.

현장에서 취재를 하면서 비싼 등록금 때문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심정'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 달 전만해도 '대학생'이었던 나였기에 그들이 외치는 주장은 꼭 내 이야기 같았고, '비싼 등록금 때문에 휴학을 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은 바로 내 친구들 이야기였다.

대학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대학생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 대학생들의 모습은 독재정권 시절, 사회와 정치를 안주 삼아 대포집에서 한 잔을 들이키던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지금 대학생들은 사회와 정치를 이야기하기 보다 취업을 위해 토익, 학점, 봉사활동, 인턴십이란 요소들을 채우기 바쁘다.

혹자는 말한다. 요즘 대학생들은 사회 문제에 너무 관심이 없고 자기 일만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나는 반문하고 싶다. 이 사회가 대학생들을 이렇게 만들지 않았느냐고. 비싼 등록금을 들여 공부해도 사회에 나오면 '88만원 세대'가 되기 십상인 지금 이 사회를 정상이라고 이해해야 하느냐고.

취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어느 덧 해가 지고 서울 도시는 어스름이 짙게 젖어들고 있었다. 오늘 서울 하늘은 맑았지만 마음만은 맑지가 않았다. 친구들의 외침이 공허한 울림이 되질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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