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논란은 갈수록 괴상해져 간다.

어제오늘 포털과 커뮤니티를 뒤덮은 뉴스 타이틀을 보자. “걸그룹 브레이브 걸스 멤버, 오조오억 ‘남혐’ 논란” 이런 문장들이다. 이게 무슨 성격의 논란인지, 무엇이 문제라는 건지 파악해 낼 수 있는가? 브레이브걸스 모 멤버가 인터넷 예능에서 “오조억 점”이란 말을 뱉었다가 ‘남성 혐오’ 용어를 썼다고 비난받았다는 건데, “오조오억” 같은 듣기에도 우스운 말이 왜 논란까지 부르는지, 대체 왜 남성 혐오 용어라는 건지 알아낼 도리가 없다. 저 말은 수량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이지 어디에도 멸칭으로서의 기능이 없고 특정 성별을 가리키는 의미도 없다.

2019년 7월에 방영된 동원참치 TV CF에도 '오조오억개'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그래서 등장하는 논거가 “여초 커뮤니티에서 저 말을 쓴다”이다. ‘여초 커뮤니티에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유저가 많고 ‘남성 혐오’ 용어를 쓰는 유저도 많다, 그러므로 거기서 쓰는 말을 뱉는다면 역시 남성을 혐오하는 페미니스트다, 혹은 그렇게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논법(?)이다. 어떤 집단에서 자주 쓰이는 말을 썼다고 해당 집단의 성향을 갖고 있다고 규정하는 건 억지일 뿐이다. 자의적 피아식별로 사상을 심문하는 전형적인 매카시즘인데, 이 정도로 사소한 것에 부리는 억지는 매카시즘이라 부르기도 거창하다.

“오조오억” 같은 말을 뱉은 사람이 여초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지 않을까 추측 정도는 할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런 건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고 비난할 사유도 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공적 영역에서 비판하고 퇴출하려면 반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말과 행동 같은 구체적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래서 사회에 악영향을 주는 등 실질적 문제가 일어나야 한다. 그런 종류의 ‘작용’이 있어야 사회적 평가를 통해 비난받는 등 ‘반작용’이 일어나는 게 논리적으로 성립된다. 2010년대 초반엔 일베란 커뮤니티가 반사회적 사이트로 물의를 빚었고 거기서 쓰이는 용어를 썼다고 비난받은 유명인들이 있다. 그 경우는 ‘민주화’란 단어를 부정적 의미로 쓰는 등 사회적 가치판단을 전도하는 발언이라도 있었다. “오조오억”에 어떤 사회전복 메시지가 숨겨져 있어 퇴출을 해야 한단 말인가?

논란을 몰고 가는 사람들도 실은 자신들이 논리가 빈약한 주장을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알고 있기 때문에 “오조오억은 남자의 정자가 오조오억 개라고 비웃는 말이다” 같은 기상천외한 어원을 갖다 붙인다. 정말로 그런 어원이 존재하는지, 혹은 비난받는 사람들이 그런 뜻으로 말을 뱉은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무렇게나 의혹을 키우며 논란을 교착상태로 만들고, 당사자에게 무언가를 해명해야 하는 의무를 지워 버리면 끝이다. 하지만 무엇을 해명할 수 있는가? 해명해야 하는 알맹이가 없는 말이라 "그런 게 아니다"라는 말밖엔 할 수가 없다. 해명을 해도 접수되지도 않을 거다. 그들이 원하는 건 논란을 키우는 거지, 논란을 불식할 수 있는 진실이 아니다.

이런 패턴은 이미 숱하게 발생해 왔다. 올 상반기에만 ‘남성 혐오’를 뜻하는 손 모양, 유행어 등이 용의주도하게 송출됐다는 식의 논란이 불붙듯 터졌다. 페미니즘에 반감을 가진 남성 여론이 여성 유명인을 타깃으로 공격하며 페미니즘을 곧 ‘남성 혐오’와 등치하는 구도다. 일련의 논란들은 페미니즘을 공적 영역에서 퇴출하려는 움직임이며 아주 작은 트집 하나로도 ‘남혐 세력’이라 낙인찍힐 수 있다고 겁을 주는 전례로 축적된다. 그 결과 말 그대로 어처구니없는 논란, 마녀사냥이라고 부르기도 낯 뜨거운 여론몰이가 사회 토픽으로 대접받는다. 사안에 대해 약간만 거리감을 가지고 바라보라. 누군가 “오조 오억” “허버 허버” 같은, 뜻도 모를 말을 썼다고 몇 날 며칠 동안 뉴스가 넘쳐나고 비장한 어조로 퇴출이 요구된다. 이게 무슨 애들 장난인가? 심지어 이런 일이 끝도 없이 반복된다.

최근 논란이 된 GS25 포스터와 국방부 포스터

아마도 저들이 원하는 ‘해명’이 있다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닙니다.” 나아가서 “나는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사람입니다.”라는 입장일 거다. 애당초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 때문에 일어난 논란이니 ‘깔끔한’ 해명이라 인정해 줄지도 모른다. 문제의 뿌리는 바로 거기 있다.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가 곧 죄악으로 통하는 현실. 한국뿐 아니라 서구에도 페미니즘을 비판하거나 페미니스트를 적대시하는 여론은 존재한다. 하지만 페미니즘 자체가 공적 영역에서 퇴출당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사회가 얼마나 존재할지 모르겠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을 비판하는 가부장 제도에 대한 대안적 이념이다. 민주주의 제도와 인권 개념이 일정 수준 이상 발달한 사회라면 이런 이념을 배격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은 이렇게 대꾸할 거다. ‘한국 페미’는 외국 페미니스트와 다르며 ‘남혐’으로 변질되었다고. 하지만 지금껏 누누이 말했듯이 ‘오조오억’이란 단어엔 ‘남성 혐오’를 뜻하는 뉘앙스조차 들어가 있지 않다. 한국 남자를 일반화한다는 이유로 ‘남성 혐오’를 용서받지 못할 죄악처럼 성토하면서, ‘오조오억’ 같은 말을 쓴 여성은 너무도 쉽게 ‘남성 혐오자’라고 일반화한다. 어쩌면 그들은 "그동안 페미니스트들이 여성혐오 논란을 일으키며 남자들을 공격한 걸 갚아 주고 있을 뿐이다"라고 반론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관찰해보면 이런 소리를 하는 남성 유저가 많다. 표현의 자유 보장과 양성 간 공존을 부르짖으면서 실은 그 가치에는 관심 없이 상대 진영을 공격하고 싶을 뿐이며 그 과정에서 부숴지는 개별 유명인의 삶에는 무관심하다는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저 까마득한 논리적 간극과 자가당착, 유치한 패싸움이 한국 사회 공론 수준으로 고착되어 가고 있다. 비참한 현실이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